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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수북통신] ‘그런 데’

광주 시내의 문학행사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우리 동네가 종점인 광주 184번 시내버스는 시골 동네를 돌고 돌아 금남로까지 승용차로 가면 30분 거리를 한 시간이 걸려 간다. 버스기사가 어디 가냐고 묻는다. 차가 없어서 버스가 내 자가용이니 기사는 나를 알고 있다. 문학행사에 간다고 하니 좋겄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을 살아도 ‘그런 데’ 한 번을 못 가보고 사요. 행사는 일요일까지니 혹시 쉬는 날 한 번 가보시라고 하니, 쉬는 날은 잠 자야지라우. 밀린 잠 자고 밀린 술 먹고이? 하면서 웃는다. 몇 년 전 비엔날레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비엔날레는 뭐하는 곳이냐고 물어서 미술행사라고 했더니, ‘그런 데 ’는 자기 같은 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곳이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시간 나면 한 번쯤 가서 구경하시라고 했더니, 시간 나면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이득이지라우. 마침 걸려온 전화에 어이, 낼 비번인가? 오랜만에 어디서 회 한 사라 놓고 소주나 한잔 하세.

녹색으로 물든 시골 논길 사이로 버스가 유유히 달리고 있다.
녹색으로 물든 시골 논길 사이로 버스가 유유히 달리고 있다.ⓒ뉴시스

농사지은 것을 시내 대인시장으로 팔러가는 아줌마가 묻는다. ‘그런 데’ 뛰면 얼마나 버냐고. 행사를 뛰러 가는 게 아니고 보러 간다고 하니, 내가 ‘그런 데’로 놀러간다고 여겼는지, 젊어서 한 닢이라도 벌어야제. 안 그러면 늙어 고생이여. 가을 해는 짧은게이. 짧은 것이 가을 해 뿐이간디, 인생이 짧제. 짧은 인생에 놀 새가 없어. 우리 같은 사람은 버는 것이 남는 것이제. 그래야 자식들이 고생을 안해. 버스기사, 호박 팔러 가는 아줌마, 토란 팔러가는 할머니가 한 마디씩 보태는 말들은 그러니까 ‘이녁 몸띵아리 안 애끼고 손이 갈퀴가 되도록’ 살아온 대한민국 보통의 ‘없이 산’ 어른들의 공통된 레파토리겠다. 대한민국의 ‘없이 산’ 집 아이들은 다 저 소리들을 듣고 자랐을 것이다. 돈 벌어야 써. 돈 애껴라. 돈돈돈돈. 돈에 허천이 나서 또 돈돈돈돈.

엄마도 그러고 할머니도 그러면 짜증을 냈다. 어른들은 돈밖에 몰라. 돈이 최고여? 아녀어! 악에 받쳐 대들기도 했던 어린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저도 이제 돈 무서운 줄 아는 어른이 되었어도, 다른 이들의 유구한 레파토리가 여직도 지겨운 바 있어 입을 다물고 창밖만 응시. 국도의 후미진 곳마다 ‘폐기물 임시 야적장’들이 부쩍 많아졌다. 창고를 임대하고는 건설폐기물을 쌓아놓고 도주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뉴스도 생각나고 양철로 사방을 둘러놔서 안에 무엇들이 폐기, 야적되고 있는지 심히 불안하고 시선은 어지러운데.

할머니 틀니 어디서 하셨소? 말바우시장 허센한테서 했제. 병원 가면 쓸데없이 비싸기만 해. 치과 가면 비싸다고 ‘야매집’서 한 틀니가 새하얀 토란할머니는 버스에서 내릴 때 마누라한테 갖다줘, 가을토란이 영 맛나. 처음부터 따로 챙긴 것이 틀림없는 검은 봉지를 기사에게 건넨다. 돈 없는 사람들이 정만 많구나, 정만 많아.

추석 연휴를 앞두고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한 생선가게에서 상인이 손님에게 판매할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2020.09.24.
추석 연휴를 앞두고 광주 북구 말바우시장 한 생선가게에서 상인이 손님에게 판매할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2020.09.24.ⓒ뉴시스

코로나의 시대, 비대면의 시대라 그런가 행사장엔 행사 관계자와 초대된 작가들과 통역하는 사람들 외 관객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빈약한 관객을 앞에 두고 외국작가들을 화면으로 보며 이야기하는 문학행사가 내용은 없이 형식만 갖춘 것 같아 영 허전하다. 그래도 또 한편으로 이렇게라도 문학행사가 열리는 것이 참으로 눈물겹기도 하다. 50명 정원의 관객이라는데 순수관객은 어림잡아 열댓명 정도 되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코로나 시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행사장에 사람이 많이 모인 적이 있었나 싶다. 서울 아닌 광주 같은 지방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이런 데를 ‘그런 데’라고 한다. 택시기사도, 버스기사도, 호박 팔러가는 아줌마도, 토란 팔러가는 할머니도, 돌아가신 우리 엄마도 틀림없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런 데’는 양복쟁이들 가는데 아녀어? 우리 같은 사람은 누가 오라고 해도 손이 부끄롸서 당최 이...?

없는 사람들은 가을 해 남아 있을 때 한 톨이라도 거둬야 해서도 ‘그런 데’는 못가고 거친 손이 부끄러워서도 ‘그런 데’는 못 간다. ‘그런 데’서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 호박 아줌마가 풀이 죽어 앉아있다. 오늘 많이 파셨어요? 코로나 손님 땜에 장에 사람 손님이 없어 못 팔고 온다고, 안 팔린 호박을 내게 안긴다.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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