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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학교 도서관엔 왜 여성이, 장애인이, 한부모가정이 주인공인 책이 적을까
없음

지난해 화제가 된 광고의 한 장면. '계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유치원생 아이들은 "화내고 때린다", "구박한다", "얄밉다", "나쁘다"라고 표현했다. 동화나 TV 프로그램, 영화 등에서 계모를 단편적이고 차별적인 시선으로 그려내자 아이들 역시 계모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인식하는 현실을 꼬집은 광고였다.

서울 상천초등학교 서한솔 선생님(34)은 우연히 TV에서 이 광고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직전 해에 가르쳤던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의 답변은 어땠을까. "계모는 나쁜 엄마를 뜻하는 거 아니에요?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이요."

독서 교육을 통해 아이들과 인권과 관련된 수업을 열심히 해왔다고 자부했던 한솔 선생님은 이때의 경험에서 한 가지 답을 찾게 된다. 책 읽는 양을 늘리는 수업이 아니라 '좋은 책'을 골라낼 수 있는 수업을 해야겠다고. 그래서 고안해 낸 게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다.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란, 아이들에게 가장 가까운 공간인 학교 도서관에 어떤 책이 있는지 직접 분석해 학교 도서관에 어떤 문제점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활동이다. 도서관을 채운 수많은 책들 중 다양한 성별, 인종이 나오는 책은 얼마나 되는지, 장애가 있는 주인공이나 다양한 가족 형태를 가진 이들은 등장하는지 등을 수치로 확인해보고 내가 차별을 당하는 당사자라면 어떨지 생각하면서 소수자의 삶을 경험해보는 식이다. 국어나 사회는 물론 수학까지 여러 과목을 연계한 프로젝트 수업이다.

지난해 한솔 선생님의 기획으로 처음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올해 상천초 4학년 담임을 함께 맡게 된 고아림(30)·임영서(26) 선생님의 합류로 더 내실 있는 수업으로 발전해 갔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계획했던 학습을 다른 방식으로 대체해야 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세 선생님은 짧은 등교 수업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더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 덕분인지 아이들은 이제 차별이나 혐오 등 인권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모두의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똘똘 뭉친 세 선생님들을 지난 2일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을 통한 비대면 인터뷰로 만나봤다.

왜 장애인이나 여성이 주인공인 책은 적을까
아이들이 바라본 학교 도서관의 문제들

서울 상천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모두의 도서관'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자료사진.
서울 상천초등학교의 한 학생이 '모두의 도서관' 수업에 참여하는 모습. 자료사진.ⓒ서울 상천초등학교 서한솔 선생님 제공

한솔 선생님과 아림 선생님, 영서 선생님은 나이도, 재직 연수도 모두 다르다. 세 선생님 중 가장 고참인 한솔 선생님은 9년 차이고, 아림 선생님은 8년 차, 영서 선생님은 작년에 갓 발령돼 이제 '돌잔치'를 막 끝낸 신참 선생님이었다.

세 선생님은 어떻게 모이게 됐을까. 각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달랐지만 아이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수업을 하고 싶다는 공통된 목적이 있었다.

가령, 사회 교과서에는 아이들에게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 예시로 '주차 문제'를 제시한다. 더욱이 아이들이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회의에는 지자체장은 물론 기초의원들이 모여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설정도 포함돼 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동떨어진 소재인 데다가 사실상 현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들을 늘여놓은 것이다.

이와 달리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아이들의 생활에서 실제 겪게 되는 문제를 찾아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이를 직접 해보는 데에 중점을 뒀다.

아림 선생님은 "차별과 편견이라는 사회 문제 상황에 대해 아이들이 자기 식견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교육과정을 짜서 1학기에는 학교 도서관을 분석해보는 활동을 진행한 것"이라며 "교과서에서 예로 든 휘황찬란한 주차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실제로 바꿔 나가는 민주적 해결 과정에 참여한다는 것을 확인해보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국어, 수학, 사회 과목을 망라한 총 4단원의 수업을 엮은 것이다. ▲사회 과목에서 차별과 편견에 대해 배우는 인권 단원 ▲민주시민으로서 지역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배우는 단원 ▲수학 과목에서는 막대그래프를 그리고 해석하는 단원 ▲국어 과목에서는 제안하는 글을 쓰는 단원 등이다.

한솔 선생님은 "아이들이 먼저 차별과 편견에 대해 배운 다음, 우리 학교 도서관에 차별과 편견을 키워주는 책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책을 분석하는 작업을 했다"며 "그걸 막대그래프로 그려서 수학적으로 해석해보고,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장애인이 주인공인 책이 없네', 혹은 '남자가 주인공인 책은 이렇게 많은데 여자가 주인공인 책은 별로 없네' 이런 식으로 비판적으로 책을 바라보는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차별과 편견, 아이들에게 어렵진 않았을까?
선생님도 놀라게 한 아이들의 진지한 태도

서울 상천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도서관의 책을 분석해보고 그래프를 그린 모습.
서울 상천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도서관의 책을 분석해보고 그래프를 그린 모습.ⓒ서울 상천초등학교 서한솔 선생님 제공

가장 궁금한 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의 반응이었다. 혹 차별과 편견이라는 주제가 초등학교 4학년에게 어렵지는 않았을까. 질문이 마치기도 전에 세 선생님들은 각 자리에 모아두었던 아이들의 수업 결과물을 들어 보이며 "아이들 수준도 매우 높아요"라고 답했다.

영서 선생님은 아이들이 직접 학부모들에게 쓴 가정통신문을 소개했다. 삐툴빼툴한 글씨로 16줄을 빼곡하게 채운 가정통신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4학년 보호자님들 안녕하세요. 우리 학교 도서관에 문제점이 있어 가정통신문을 보냅니다. 문제점은 우리 학교 도서관에 편견이 나오는 책들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우리 학교 인기 많은 책들을 그래프를 그려봤는데, 장애인이 나오는 책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성별 그래프도 그려봤는데 남자가 주인공이 되는 책이 많고 여자가 주인공이 되는 책이 별로 없었어요.

(중략)

성별 그래프에 나온 책을 읽으면 '남자만 주인공이 될 수 있고 여자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이 생겨요. 장애 그래프에 나온 책을 읽으면 장애인이 '나는 쓸모가 없는 걸까'라는 생각과 편견이 생깁니다. 우리의 도서관이 편견과 차별이 없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영서 선생님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아이들이 가정 통신문을 직접 만들어서 가져가는 활동이 있었다. 써야 하는 양이 상당해서 평소 같았으면 '너무 힘들어요', '팔 아파요' 이런 투정도 부릴 것 같았는데 그 활동했을 때는 진지하게 임했다. 오히려 칸이 부족했을 정도"라며 "가정 통신문 밑에는 학부모님들의 회신하는 부분도 있었는데, 학부모님들도 아이들이 편견과 차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한솔 선생님은 "학교 도서관 책을 분석하고 그래프를 그려보는 수업 때 특히 여러 반응이 나왔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책이 별로 없다는 내용의 그래프를 그리던 한 아이는 저한테 와서 '선생님, 등장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지 않아요. 엑스트라로 등장하면 무슨 의미가 있어요'라고 묻더라"라며 "그래서 그 아이는 그래프를 두 개로 그렸다. 하나는 장애인이 등장하는 수치와 다른 하나는 장애인이 어떤 역할로 등장하는지를 그렸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책이 두 권밖에 없었는데 두 권 다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다는 것을 찾아내더니 '이런 책만 가득하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다'고 적어놨다"고 일화를 전했다.

아림 선생님은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박정섭 지음, 사계절 펴냄)'로 시작한 첫 수업을 떠올렸다. 이 책은 커다란 까만색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 무리를 잡아먹기 위해 특정 색깔의 작은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이러한 소문 때문에 무리에서 쫓겨난 물고기들을 쉽게 먹어 치우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림 선생님은 "처음에 아이들이 재밌다고 '까르륵' 웃으면서 (옆 친구들에게) '너도 감기에 걸렸으니까 저리 가'라며 장난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너무 아리송한 느낌이 들었던지 나중에는 '뭔가 잘못됐구나'라는 걸 깨달았던 것 같다"며 "실제 아이들의 시점에서 차별적인 상황을 대입해 보니 쉽게 와닿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울 상천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분석해 보고 느낀 소감들.
서울 상천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통해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분석해 보고 느낀 소감들.ⓒ서울 상천초등학교 서한솔 선생님 제공

이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나니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편견과 차별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는 게 세 선생님들의 공통적인 평가다.

영서 선생님은 "코로나19 확산세가 다소 주춤해지면서 등교 수업 시간이 늘어나자 아이들이 '배고파요', '힘들어요' 말할 때도 많다.그럼 '이 정도는 4학년이니까 할 수 있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바로 '그건 편견이에요. 못 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라며 "아이들의 머릿속에 차별이랑 편견이 확실히 들어온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한솔 선생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솔 선생님은 "저희가 너무 과제를 많이 내주면 '아동 인권에 놀 권리도 있다'고 말하거나, '아직 나이가 안 돼서 몰라도 된다'는 표현을 쓰면 '나이를 기준으로 한 차별이 아니냐'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 어떻게 대답해주냐는 질문에 "맞는 말이니 맞다고 해준다. 다만 필요한 상황이면 이유를 설명해주고 협조를 구한다"며 "이번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이 점이 가장 많이 달라졌다. 인권이라는 렌즈를 가지고 상황을 분석하고, 거기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더 자연스러워진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2학기에는 1학기 때 진행된 '모두의 도서관' 프로젝트에 이어 '세상을 바꾸는 어린이 사서' 프로젝트가 이어진다. 이 프로젝트는 1학기 때 확인했던 학교 도서관의 문제를 실제 해결하는 게 골자다.

학생들 스스로 정한 기준을 가지고 인권 감수성이 담긴 책을 구매해 보는 수업과 더불어 지역 내 공공 도서관이나 다른 학교 도서관에도 '이런 기준으로 도서관 책을 구매하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의 제안서를 작성하는 활동도 이어질 예정이다.

물론 코로나19 확산세가 잠잠해져야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은 "상황이 나아져 등교 수업이 확대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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