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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정치의 비정함

말 많은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거의 정리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 같습니다.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는 측이나 공정한 선거라고 말하는 측이나, 결국은 권력을 잡기 위한 몸부림인 것은 분명합니다. 누가 나쁜 짓을 덜 했느냐가 관건이라고 보면, 권력에 대한 욕구를 너무너무 폄훼하는 것일까요? 그림 속에 담긴 정치 투쟁의 비정함을 소개합니다.

1554년 런던 탑에서의 제인 그레이 처형 Paul Delaroche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in the Tower of London in the year 1554 1833 onc 246x297
1554년 런던 탑에서의 제인 그레이 처형 Paul Delaroche The execution of Lady Jane Grey in the Tower of London in the year 1554 1833 onc 246x297ⓒNational Gallery

1554년 2월 12일, 영국의 런던탑 한구석에서 기막힌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눈을 가리고 나무 받침대를 찾아 손을 내밀고 있는 여인은 ‘제인 그레이’입니다. 런던탑의 관리를 맡은 장교가 여인의 손을 잡고 자세를 잡을 수 있게 하고 있는데 남자의 표정은 지극히 사무적입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목을 내리쳐야 할 도끼를 들고 있는 도부수의 표정은 침통합니다. 그동안 제인 그레이의 시중을 들던 여인들의 넋이 나간 듯한 얼굴과 자세가 그의 죽음이 억울하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제인 그레이의 나이는 이제 열일곱 살입니다.

헨리 7세의 증손녀인 그는 원치 않은 정략 결혼을 해야 했고 시아버지의 권력욕 때문에 영국의 왕위에 올랐지만, 그 기간은 단 9일이었습니다. ‘9일의 여왕’은 그녀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지요. 그녀 뒤를 이어 왕인 된 메리 튜터는 제인 그레이와 그의 남편, 그리고 그의 아버지를 런던탑에 가둡니다. 그녀의 죄명은 반역이었고 체포된 지 7개월 뒤 남편과 함께 참수를 당합니다. 메리 튜터는 제인 그레이가 스스로 원해서 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를 살려 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신교도였던 제인 그레이가 가톨릭으로 개종한다면 풀어 주겠다고 제안을 했지만, 그는 죽음을 택합니다.

열 일곱 살의 며느리를 왕으로 내세워 죽음으로 몰고, 반역의 죄를 물어 목을 자르는 것이 정치이고 권력욕입니다. 폴 들라로슈의 이 작품은 처음 발표된 후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고 역사화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미술관의 수장고로 옮겨졌고, 한동안 분실되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1975년 다시 전시되면서 예전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제인 그레이는 그림처럼 실내가 아니라 런던탑이 위치한 마당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화가에게 완벽한 역사적인 고증까지 요구하면 무리일까요?

루브르 궁전 입구의 어느 날 아침 One morning at the gates of the Louvre onc 1880
루브르 궁전 입구의 어느 날 아침 One morning at the gates of the Louvre onc 1880ⓒ기타

루브르궁전 문 앞에 시체가 즐비합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인은 당시 프랑스 왕 찰스 9세의 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입니다. 그리고 학살당한 사람들은 신교를 믿는 위그노파입니다. 이 사건은 1572년 8월 24일 성바르톨로메오 축일 전야에 일어났습니다. ‘바르톨로메오의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의 배후 인물로 카트린이 지목되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교와 신교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욕망과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세속적 욕심까지 더해져, 이런 살육은 그해 10월까지 계속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구교의 대장 격인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이 학살의 날을 축하하여 특별한 성가를 부르게 하였고 특별 감사의 미사를 집전했다고 합니다. 아울러 이날을 기념하는 메달도 만들었습니다. 종교와 세속이 뒤섞이면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죽은 어린아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학살을 자행한 사람이나 당한 사람이나 믿는 신은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울고 있을 신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역사는 묘한 것이어서 비슷한 일들이 되풀이되곤 합니다.

1871년 파리에는 시민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파리 코뮌’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이 자치 정부는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고 ‘피의 1주일’ 간 3~4만 명이 파리 코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학살당합니다. 에두아르 베르나르 드바 퐁상은 이 사실을 그리고자 예전의 학살을 주제로 가져 왔습니다. 이런 역사가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아빠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지? William Frederick Yeames  And when did you last see your father 1878 onc 131x251.5
아빠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지? William Frederick Yeames And when did you last see your father 1878 onc 131x251.5ⓒWalker Art Gallery

작은 의자 위에 올라선 아이에게 턱을 괸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묻고 있습니다. 아빠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지? 지금 이 식구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의회파’이고 심문을 받는 가족의 아버지는 ‘왕당파’입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아이는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입니다. 말을 하면 아빠에게 위험이 있을 것 같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동안 정직하라고 배웠던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데 아이를 심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 사람들도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심문관의 얼굴은 아주 난처한 표정이고 창을 든 사내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울고 있는 소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 있습니다. 주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안타까움도 보입니다. 목적을 위해서 아이를 이용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도 있겠지요. 그래도 긴장감은 끝없이 그림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1642년부터 1651년까지 영국은 절대 권력을 추구하는 찰스 1세와 그에 맞선 의회 간의 갈등으로 긴 내전에 빠져듭니다. 1649년 1월 30일, 전쟁에서 패한 찰스 1세는 의회의 결정으로 참수됩니다. 시민의 대표가 왕의 목을 친 사건이었지요. 이후 다시 왕정으로 돌아갔지만, 영국에서 왕의 절대 권력 시대는 종말을 맞았습니다. 혹시 그대가 저 소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지금 세상에 비하면 그림 속 장면은 훨씬 인간적이지 않은가요?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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