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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정지아 작가의 소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정지아 작가의 소설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기타

지난 3월 ‘삶과 문학’에 소개했던 소설 <행복>의 작가 정지아가 올해 ‘김유정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작품들이 수록된 <2020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강출판사>에서 다시 그의 소설을 본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공부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혁명가가 되었던’, 지금은 아흔다섯이 된 작가의 어머니는 그의 수상 소식에 밥이 넘어가질 않을 만큼 행복해 하셨다고. 그런 어머니가 그의 문학의 근원이자 오늘을 사는 원동력이라는 수상 소감을 증명하듯, 정지아 작가의 김유정문학상 대상 수상작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의 중심에는 ‘근원’ 같은 존재, 어머니가 있다.

‘지지난해 세상을 떠난 사촌동생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소설에는 위암 수술을 받고도 술을 끊지 못해 처자식을 타지에 두고 혼자 낙향한 큰집 동생 기택과, 그가 ‘먼일만 생기면 달레와 펑펑 움시로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놓는 짝은어매’, 나의 어머니가 ‘서로 기대어’ 있다.

‘큰아배, 머슬 보요?’
‘보긴 머슬 봐. 사방이 시커먼 허방인디.’
‘우리 택이는 멋이 그리 잊고자프까?’
-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기택의 아버지이자 나의 큰아버지는 아홉 살 때 당신의 아버지와 동네 장정 스무 명이 국군 총에 맞아 죽는 걸 목격한 후 평생을 악몽과 경기에 시달리고, 그것을 가라앉히려고 마시기 시작한 술 때문에 끝내 죽음에 이른다. 기택 역시 병든 몸을 방치하여 피를 토하며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술을 포기하지 못한다. ‘술이 술술 들어가먼 잊고자픈 것이 술술 날아가붕게라.’ 술로 죽어가는 기택과 술을 찾아 온 동네를 다니던 기택의 아버지에게 술상을 차려준 유일한 사람, 나의 어머니에게 기택이 그렇게 말한다.

정지아의 소설에서처럼, 그리고 여느 집안을 들여다 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듯이, 나에게도 평생을 술을 찾아 헤매던 사람이 있었다. ‘잊고자픈’ 것이 있어서였는지, 위안 삼아 마셔온 것이 독이 되어 그 몸과 영혼을 지배한 것인지, 그는 평생 술을 좇았고, 그러는 동안 우리 가족은 몇 가지 비극을 겪었다. ‘술 하나를 맘대로 못해? 그게 사람이야?’ 나는 소설 속 화자가 사촌동생 기택에게 그랬듯이 그를 피하고 술을 빼앗고 원망했다. 그에게도 술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그것은 그의 말을 ‘미주알고주알’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뒤늦게 그런 ‘나의 아버지’에게도 술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있었다. 결혼해 살고 있는 내 집에 무작정 쳐들어오곤 했던 아버지에게 그이는 싫은 기색도 없이 손수 술상을 차려내고, 마주 앉아 취한 말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그런다고 그 삶이 달라질 리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은 세상에 없지만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대접받은 적이 있던 아버지를 가슴 시큰하게 떠올릴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시어머니’가 나에게 주었던 모든 인정 중에 그 일을 가장 오래 기억한다.

‘사는 거이 다 맘대로 된다디야? 니는 살아봉게 다 니 맘대로 되디야?’
<우리는 어디까지 갈까>

눈만 감으면 있잖애. 온 시상이 시커먼디, 시커먼 것이 똑 목을 조르는 것맹키여. 무서서 눈을 못 감겄어. 술을 마시먼 나도 모리게 잠을 장게, 무서서, 잘라고 마시는 것이여. 술이 그렇게 좋냐는 ‘나’의 물음에 기택이 그렇게 말한다.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것이 있어서, 삶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사방이 시커먼 허방’이라 무엇이 아니고는 잠들 수 없는 어떤 생에게, 가끔 나에게도 그 어두운 허방이 찾아올 때,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디까지 알까.

‘짝은어매 땜시 이때꺼정’ 살았다는 ‘소설 속’ 기택의 마음도, 정작 자신의 딸과는 ‘제 몫의 고통은 알아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어머니가 큰집 조카 기택을 감싸는 마음도 알 것 같다. 술이 아니고는 악몽과 경기를 가라앉히지 못했던 기택 아버지의 생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다만 알 수 없었던 것은 ‘현실’의 아버지,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당신이어서, 나는 ‘허청허청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짙어지는 숲 쪽을 바라보며 소설을 쓰는 친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뭘 써도 좋은 작가가 된 것 같아.’

정지아

1990년 장편 <빨치산의 딸> 출간.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행복> <봄빛> 등이 있으며, 이효석문학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 수상.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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