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5월,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를 하던 하청노동자 수리공 ‘김 군’이 사망했다. 사고가 일어나고 1년 9개월 뒤,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 김 군의 동료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고, 이후 다시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되었다.
단지 ‘은성PSD’ 소속에서 교통공사 소속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김 군의 동료들은 자신들이 감내했던 위험이 현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김 군의 사망사고 당시 원청인 ‘서울메트로’와 ‘은성PSD’가 맺었던 계약사항인 ‘고장 접수 1시간 이내 현장출동 하지 않을 경우 패널티 부과’ 조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무리하게 열차 운행 중에 스크린도어를 열고 수리업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안전해진 일터에서 승강장 안전문 분야(PSD) 노동자들이 일터괴롭힘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노동환경건강연구소·녹색병원이 2020년 9월 발간한 [서울교통공사 승강장 안전문 분야 종사자 직무스트레스 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47%가 정신건강의학 분야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고도 우울’과 ‘중등도 우울’ 집단으로 나타났다. 설문대상은 교통공사 소속 PSD 노동자 전체였고, 응답율이 98%임을 감안하면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심각한 수준의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다.
응답자들이 일터괴롭힘 중 가장 큰 문제로 꼽은 것은 ‘직장내에서 주체할 수 없이 업무량이 많은 적이 있다’ 였다. 서울교통공사 PSD분야 종사자의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의 비율은 20% 수준으로,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두 배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5~8호선에 비해 1~4호선 그룹의 경험률은 무려 4배에 이른다.
노동 현장에서 일터괴롭힘은 노동을 매개로 이뤄진다. ‘주체할 수 없다’는 표현은 단순히 높은 노동강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청업체 출신’이라는 무시와 비난이 노동의 지시와 협업의 고리를 타고 노동자들의 신체와 정신을 차별적으로 소진시키고 있다.
애초에 정규직이 수행하던 일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스크린도어 수리업무는 스크린도어 수리업무를 하던 하청노동자 출신들에게만 맡겨졌다. 공사는 적자운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 전환 이후 단 한 명의 인원도 충원하지 않았다. 자연퇴사자가 나오는 자리도 채워지지 않았다. 관리자들, 타 부서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협업’에는 폭언과 폭행, 무시와 조롱이 있었다. 스크린도어 고장발생 후 1시간내 출동하라는 계약서는 사라졌지만 더 많은 독촉이 그 자리를 채웠다.

‘위험의 외주화’의 가장 큰 해악은 차별의 합리화이다. 비핵심업무이기 때문에, 공채시험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 업무이기 때문에 수많은 차별들이 법과 계약의 절차를 따라 합리화된다. 구의역 김 군 동료들에게 가해지던 직접 차별이 사라진 자리를 ‘간접차별’이 대신한다.
특정 인구를 차별하려면 먼저 이들을 ‘집단’으로 만들어야 한다. ‘은성PSD 소속’ 노동자들은 ‘PSD직군’으로 분리, 유지되고 있다. 일터에서 직군분리와 직무분리는 차별받는지 비교할 집단을 아예 없애면서, 이들 집단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된다. 간접차별이 하청노동자 출신에게 가해지는 차별이 아니라 PSD 직군의 특성으로 합리화되기 때문에 외관상 차별의 표식은 지워진다.
김 군의 동료들은 직접고용이 된 후 “작업을 하는 도중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면 작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 ‘위험하면 하지마’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터괴롭힘’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의 노동자들이 ‘그냥 참는다’고 응답했다. ‘위험하면 하지마’와 ‘그냥 참는다’는 응답 사이에서 외주화된 위험이 내부화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한 지 깊이 고민하게 된다.
‘정규직 전환’과 ‘안전조치의 강화’라는 두 해법 모두, 이제 너무 익숙해져버린 차별의 감각을 어떻게 평등의 정치로 바꾸어낼 것인가의 문제로 새로 틀 지워져야 한다. 평등이라니! 일터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모두 다 엉망이라고, 서둘러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규직 전환과정에서 공사측이 의도적으로 연 익명게시판은 여전히 ‘무기충 새끼들’이라는 욕설로 도배되고 있다. 이 악의적인 익명게시판부터 없애자.
일터괴롭힘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묻는 문항의 답변에는 여러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야유회 등 소통의 강화”. 적어도 얼굴 맞대고 욕설하고 조롱하는 문화가 사라질 때까지 야유회 가자. 많이 가자. “역지사지. 상호교차 발령으로 힘든 것을 느끼게 되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독립직군 없애고 섞자. ‘하청출신’이라는 낙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고립된 채로 표적이 되지는 않게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김 군 동료들 곁에 정규직 출신 동료 몇몇은 생기지 않을까. 차별에 맞서 안전보호구가 되어줄 ‘동료’ 말이다.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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