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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매일 등교길에 기후변화 피켓시위한 17세 활동가가 ‘지금’을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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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이 많은 고등학교 1학년 윤해영 학생은 11일 새벽 집을 나서 오전 5시 30분 울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KTX 첫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가 의원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윤 양은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는 문구가 정치적 수사로 흔히 쓰이지만, 정책 책임자들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오후 3시 광화문 인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실에서 윤 활동가를 만났다. 그는 또래 동료 활동가들과 얘기할 때는 점심시간 수다를 나누는 고등학생이었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낼 땐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을 했다. 그가 중학생 때부터 해온 피켓시위 등 활동을 되짚어 보면 학생보다는 활동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렸다.

청소년기후행동이 국회의원들에게 전한 서한에는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지 않거나, 동료 의원 3명을 기후 대응에 동참시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2000년대 초반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 컨셉이다.

윤 활동가는 “지난 9월에도 기후위기 대응 관련 위원회에서 주요 의원 15명을 뽑아 서한을 보냈는데 4명만 답을 해왔다”며 “다시 경고하기 위해 두 번째 서한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전반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에 소극적이다”라며 “남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대로 가다 간 2030년 태풍이 덮쳐 국회는 물에 잠기고 의원들은 물에 젖은 생쥐 꼴로 퇴근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한은 잘 전했는지 묻자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편지를 전달하려고 했는데, 실물 편지를 좀 크게 만들었더니 피켓처럼 보여서 국회 안에 들여보낼 수 없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결국 활동가들이 며칠간 막차를 타가며 손수 만든 서한은 직접 전하지 못했고, 1차 서한 때와 마찬가지로 메일을 통해 보내야 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은 윤해영 활동가가 서한을 들고 있는 모습.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은 윤해영 활동가가 서한을 들고 있는 모습.ⓒ윤해영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평일엔 학교, 주말엔 시청…“피켓 든 모습 아니라 문제의식에 공감해주길”

윤 활동가의 주된 활동 지역은 거주지인 울산이다.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 가을부터 피켓시위를 했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친구들에게 넌지시 얘기했는데 반응이 즉각적으로 안 돌아왔다. 관심 없다고 느꼈다. 학교에서 혼자 얘기하는 것 같아 고립감을 느꼈다. 뭘 해야 할까 찾아보니, 국내외 여러 단체가 피케팅을 하더라. 3명만 모아서 학교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자고 결심했다. 근데 3명이 안 모였다. 부모님이 반대한다거나, 시위 형식은 부담된다고 얘기했다. 혼자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옆 반 (윤)현정이와 마음이 맞아 같이 하게 됐다.”

윤해영·윤현정 두 활동가는 평일에는 학교, 주말에는 울산대공원, 방학 때는 시내에서 피켓을 들었다. 둘은 목에 ‘10년 후 멸종위기종’이라는 푯말을 걸었다. 청소년 세대가 직면한 위협을 표현한 것이다. 양손에는 ‘우리의 생존권 침해하는 기성세대는 각성하라’, ‘기후위기는 생존권, 정의와 평등의 위기다’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이 들렸다.

“등교 시간이 8시 40분까지다. 8시부터 30분 정도 피켓시위를 했다.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데, 원래는 아침잠이 많아서 등교 시간에 딱 맞춰서 갔다. 피켓시위하면서는 일찍 일어났다. 주말에는 (울산)대공원으로 갔다. 피켓을 세워 놓고 들고 간 책을 읽었다. 겨울에는 많이 추웠다. 처음에는 맨바닥에 앉아서 하다가, 오가며 보시는 할머니들께서 걱정하셔서 두꺼운 방석을 가져갔다. 방학에는 학교에 사람이 없으니까 일주일에 2번 정도 시내와 시청을 오갔다. 점심시간 시청에 가면 식사하러 가거나 하고 오는 공무원들이 많다.”

처음 울산대공원에 나갔던 날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인근에서 극우 정당 우리공화당 집회가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전교조가 선동했냐’, ‘학교에 들어가 있어라’, ‘어른 돼서 해라’, ‘그렇게 해도 아무 쓸모 없다’ 등 모진 말을 쏟아 냈다. 윤 활동가는 “대공원에서 첫날 시위하면서 들을 수 있는 모든 비난을 들었다”며 “신고식을 치르고 나니 이제는 안 좋은 얘기를 들어도 무덤덤하다”고 말했다.

이곳저곳에서 피켓시위를 하면서 칭찬과 격려도 받았다. 그러나 윤 활동가는 어른들의 그런 시선이 달갑지만은 않다.

“지나가면서 ‘기특하다’는 얘기를 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했다.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대응을 요구하는데, 요구받는 사람들이 기특하다고만 하니까. 특히 공직자들. 책임 있는 분들이 ‘우리가 잘할게’라고, 뭔가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면 좋을 텐데, 그런 게 느껴지지 않는다. 피켓을 들고 있는 상황에만 주목하고, 내용과 책임 문제는 생각을 안 한다. 남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보람도 있다. 미지근하던 친구들 반응이 달라졌다. 윤 활동가는 “친구 몇몇이 찾아와서 원래 관심도 없던 기후변화 관련 기사가 스마트폰 팝업으로 뜨면 클릭해서 보게 됐다”며 “더 알아보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물어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윤 활동가는 피켓시위를 시작하던 시점부터 청소년기후행동에 참여했다. 윤현정 활동가도 함께했다. 윤 활동가는 “우리가 내는 목소리가 정책 변화에 닿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둘이서는 부족하다고 느꼈다”며 “단체는 구글링으로 찾았는데, 활동이 마음에 들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30여개 지역, 120여명의 활동가가 활동하고 있다. 청년 활동가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청소년이다. 스웨덴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의 활동을 계기로 촉발된 국제 연대 조직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 Fridays For Future)’의 한국지부로 등록돼 있다.

윤 활동가는 지난해 11월 29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에 동참했다. 윤 활동가에게는 첫 결석시위였고, 청소년기후행동이 진행한 4번째 결석시위이기도 했다. 그는 “한 학기에 1번 쓸 수 있는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다녀 왔다”며 “현정이는 선생님이 반대하셔서 교감실까지도 불려 갔었다”고 했다.

구체적인 성과도 있었다. 울산시교육청은 지난 8월 석탄 관련 산업에 투자하지 않는 은행을 금고로 지정하기로 했다. ‘탈석탄 금고 지정’은 청소년기후행동에서 지속적으로 촉구해온 과제다.

윤 활동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 3월경부터 피켓시위를 중단했지만, 청소년기후행동에서의 활동은 활발하게 이어가고 했다.

윤해영·윤현정 활동가가 울산 소재 신정중학교 정문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윤해영·윤현정 활동가가 울산 소재 신정중학교 정문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윤해영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윤해영·윤현정 활동가가 울산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
윤해영·윤현정 활동가가 울산시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윤해영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교육의 기후변화 외면에 배신감, 세계 최하위 수준 한국 대응에 또 배신감

기후변화에 대한 윤 활동가의 관심은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다. ‘동물들의 소송’과 같은 책들을 읽으면서 기후변화로 관심이 확장됐다. 그리고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소년인 자신도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서식지를 잃어가는 동물들이 눈에 밟혔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은 연민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내가 멸종위기 당사자더라. 둘러보니 기후재난은 이미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폭우와 태풍이 들이닥쳤고, 호주에서는 작년에 난 산불이 올해까지 이어졌다. 기후변화로 생존을 위협당한다는 공포가 들었다.”

윤 활동가의 비판 지점은 교육으로 향했다.

“사회 과목에서는 ‘북극곰이 죽으니까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는 서약서를 쓰는 식으로 기후변화 문제 책임을 개인에 돌린다. 도덕 과목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 과목에서는 기후변화 문제를 과학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한다.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상황인데 행복한 수업이 된다.”

“학교에서는 북극곰 얘기만 하지, 청소년이 기후변화 피해자라는 얘기는 해주지 않는다. 청소년 세대는 스스로 저지른 것도 아닌데 태어나자마자 기후변화 시대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내가 직접 찾아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거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 배신감도 느꼈다.”

윤 활동가가 느낀 배신감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잘하고 있는 나라인 줄 알았다. 미국과 중국의 책임을 생각했다”며 “그런데 한국이 너무 못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대응지수는 최하위권이고 석탄발전소를 계속 짓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민간 기후연구소 저먼워치와 국제환경단체연합체 기후행동네트워크(CAN)가 발표한 ‘기후변화대응지수(CCPI) 2020’ 보고서에서 한국은 61개국 중 58위로 평가됐다. 중국 30위, 미국은 꼴찌였다.

동물권에서 기후변화로 관심을 넓혀간 윤 활동가는 중학교 3학년부터 비건을 실천해오고 있다. 비건은 우유와 계란 등 유제품을 비롯해 동물에게서 나오거나 동물 실험을 거친 음식을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단계의 채식을 이른다. 급식에는 고기가 나오니 도시락을 따로 싸야 했다. 도시락은 어머니가 챙겨줬다. 어머니도 비건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은 도시락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윤 활동가가 다니는 울산여고는 지난달부터 채식을 원하는 학생에게 채식 식단을 제공하고 있다.

가족들은 윤 활동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 어머니뿐 아니라 아버지와 오빠도 집에서는 채식을 한다. 가족들은 피켓시위를 할 때, 단체에 참여할 때도 지지를 보내줬다. 윤 활동가는 “처음에는 부모님이 걱정을 하시긴 했는데 반대했다기보다는 활동을 하면서 빨리 지칠까 봐 걱정하셨다. 즉각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쉽지 않으니까”라며 “한다고 하니까 지지해준다. 부모님도 함께 기후변화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해준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오후 3시 광화문 인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실에서 만난 윤해영 활동가는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는 문구가 정치적 수사로 흔히 쓰이지만, 정책 책임자들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오후 3시 광화문 인근 청소년기후행동 사무실에서 만난 윤해영 활동가는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는 문구가 정치적 수사로 흔히 쓰이지만, 정책 책임자들의 대응은 매우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다”고 지적했다.ⓒ민중의소리

이어지는 선언, 보이지 않는 행동…“내년 계획 없인 2050 탄소중립도 공허”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국회 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배출한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실질적인 배출량을 ‘0’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앞서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200여개 국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지구 기온 상승 폭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1.5도를 넘지 않도록 하는 데 합의했다. 이후 유엔 산하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파리기후협약 이행을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한국의 탄소중립 선언을 의미가 크다. 그러나 윤 활동가는 남은 과제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탄소중립 선언으로 기분이 좋았다”면서도 “그간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말로 그친 기후변화 대응 선언을 돌이켜보니 불안이 커졌다”고 말했다.

윤 활동가는 지난 6월 전국 226개 지자체가 기후위기비상선언을 발표한 것을 언급하면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말만 앞서는 상황이 반복될까 두렵다”고 했다.

“선언이 이어진다. 그러나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 국회 지자체가 여론 눈치 보고 뭔가는 하는데, 정책·법안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2050년에 대한 얘기만 한다. 내년, 2025년, 2030년의 계획이 없으면, 2050년 탄소중립도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된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해야 한다. 아직도 기후변화를 당장의 위기로 느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윤 활동가는 기후변화 대응의 감수성을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사회 취약 계층이 권력층보다 상대적으로 먼저 영향을 받게 된다. 누군가는 기후 재난 피해로 실존적인 고통을 받지만, 영향권 밖의 사람들에게는 남 얘기가 된다.

“정책 책임자들의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다. 기후변화는 사회 가장자리부터 덮치지만, 결국 국회도 침수될 수 있다. 기후변화가 일부가 아닌 모두를 향한 위협이 될 시점이 앞당겨지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보다 적극적인 정부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3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현행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제시하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으로는 기후변화 대응으로서 실효성이 없으며, 헌법에서 보장한 생명권·행복추구권·환경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 제기다. 이 ‘기후소송’ 원고 19명 중 한 명으로 윤 활동가도 이름을 올렸다.

윤 활동가는 인터뷰 내내 ‘지금’을 말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의 기후변화 논의는 추상적이고 공허하다.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탄소 예산’ 소모 시점을 5.5~7년으로 보고 있다. 기후 재난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이상의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장래 희망을 그리는 것도 버겁다. 정부 나아가 공동체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행동이 시급하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3월 13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법령은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청소년기후행동은 지난 3월 13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소극적으로 규정한 현행법령은 청소년의 생명권과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청소년기후행동

조한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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