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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의 마음산책] 피곤한 인간관계 - 친구가 꼭 필요한가요?

특성화고를 졸업하고 일하다 쉬다가 일하다 쉬다가를 반복하며 이번 달부터 다시 취준생이 된 27살 여자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전공이 디자인 쪽이긴 했지만 능력도 그저 그렇다 보니 진입장벽이 낮은 곳을 몇 군데 다니게 되었는데 그때마다 이유가 생겨 한 군데를 오래 다니지 못하게 되네요.

벌써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8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사람들 속에 묻어들어가 어울려야 하는 일이 왜 이리 피곤하게 느껴질까요. 필요한 기술들은 독학도 하고 학원도 다니면서 익힐 수 있지만 솔직히 사람과의 관계는 어디서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고 아직도 왜 그렇게 부담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가정형편도 안 좋고 공부도 별로 못하고 애들한테 인기 끌 만한 재주가 없는 아이로 초등부터 학교 다니는 내내 좀 기가 죽어 지내왔습니다. ‘왕따’는 아니지만 가끔 ‘은따’도 곧 잘 당하곤 했었습니다. 그게 지금 사회생활하면서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데에 영향이 있을까요?

너무 혼자만 있으면 외롭기도 하고 타인의 시선, 또는 정보교류에서 배제되는 것은 원치 않기에 마음에서 내키지 않아도 최소한의 사람들과 최소한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만 관리하면서 가고 있습니다.

친구가 꼭 필요한가요?
친구가 꼭 필요한가요?ⓒpixabay

그래서 그런지 올해 불어 닥친 ‘코로나세상’은 제게 골칫거리이던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초반에 재택근무 하거나 모임을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로 인해 다 같이 뚝뚝 떨어져 격리되는 시간이 많아지니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와 함께 내가 사람들 속에서 사느라 얼마나 피곤했는지를 아는 기회가 되었네요.

대인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먹고사는 일도 힘든데 인생에서 친밀한 관계가 꼭 있어야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에 공을 들여야 하는 걸까요?

어떤 퇴직한 철학교수가 자기가 노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인문학 강의 시간에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다. 별달리 기억나는 것은 없지만 한 가지 마음에 남았던 건 ‘인생에서 남는 것은 관계라며 아름다운 관계를 많이 만들라’는 제안이었습니다. 관계를 많은 인맥 만들기가 아닌 ‘아름다운 관계’로 가꿔나갈 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정신건강 측면에서도 관계는 중요하고 관계 역량을 키워야할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익히 알기에 노교수의 이런 주장에 귀가 더 솔깃해졌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살기 팍팍한 때 특히 가난한 세대인 청년들은 먹고살기도 전쟁 같은 상황에서 아름다운 관계 혹은 관계의 아름다움을 체험해볼 새도 없이 오히려 관계의 피곤함부터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는 성격, 체험, 학습, 환경 등 개인적 차원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도 있기에 말입니다.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 발전시키는 데에 있어 보고 배울 관찰 대상이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심리적으로 지지해주면서 이런저런 실질적 도움이나 안내를 줄 수 있는 자원이 있는지, 개인을 둘러싼 문화 수준이 어떤지 등의 환경적 요소는 한 사람의 관계 역량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관계에서 단순히 성격적 접근이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하기 힘든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는 건 중요합니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만 강조하는 것은 자칫 자책이나 자괴감 더 나아가서는 절망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부작용이 있거니와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미는 기만이 될 수 있기에 개인의 노력은 사회적 차원의 노력과 균형 있게 다뤄져야 하겠지요.

최근 네이트판에 ‘요즘 흙수저 집안에서 애 낳으면 생기는 일’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 폭발적 추천수를 자랑하며 SNS상에서 퍼지고 있는데 글쓴이는 다름 아닌 20대 초반 흙수저 청년으로 자신을 ‘가난한 집 생존자’라고 밝힙니다. 경험을 토대로 나름대로 가난의 영향을 분석한 글인데 무엇보다 체험자가 아니고서 포착할 수 없는 날카로운 관찰과 리얼한 묘사에 놀라고, 열광적으로 공감하는 또 다른 수많은 흙수저들의 반응에 더 놀랐습니다. 경제적 수준이 어떻게 문화수준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결국 관계 형성과 개인의 심리 상태 및 행동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지 어느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보다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사실 경제적 풍요로움을 기초로 많은 경험과 실질적 도움을 주는 지지 자원을 활용하여 ‘인싸’가 되기 쉬운 부잣집 애들과 다르게 ‘가난한 집 생존자’들은 ‘인생을 통틀어 가난한 부모’의 가난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경험과 시도가 부족하다보니 관계에서 자신감보다는 위축감, 받아들여질 것에 대한 기대보다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더 많이 경험하는 등의 차별되는 관계 특성을 드러내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두 어린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고 있다.
두 어린이가 어깨동무를 하고 걸어가고 있다.ⓒpixabay

돈이 없는 것이 학습과 경험할 수 있는 기회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자신감과 여유 같은 심리적 자원의 부족으로 이어져 대인관계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건 흔한 일입니다. 또한 먹고사는 게 빡빡하면 그 자체로 삶의 피로감이 높아져 관계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어지고 관계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직·간접 학습기회를 놓치기도 쉬워지죠.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물질과 정신뿐만 아니라 관계적인 면에서도 빈곤해지게 되니, 많은 심리학자들이 인간 성숙의 척도로 꼽는 것 중에 하나가 대인관계 역량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가난해서 일부 영역에서는 성숙하기도 힘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사회적인 존재인 인간은 대립하고 경쟁하기보다 힘을 모으고 도우려 할 때 힘이 덜 들고 사람이 좋아지게 마련입니다. 가난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듯 거꾸로 서로를 돌보고 보살피는 연대는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행복하길 바라듯이 타인도 그런 존재라는 믿음을 갖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는 자세를 갖고 마음을 연다면 사는 게 훨씬 덜 피곤하고 따뜻해지지요. 흙수저들끼리라도 가난으로 닫히기 쉬운 마음을 열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가난을 박살내기 위한 연대의 관계를 만들어보지 않으시렵니까!

신미영 열린학교상담아카데미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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