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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저에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이 씨는 키가 크고 허리가 꼿꼿했다. 머리가 살짝 벗겨지긴 했으나 피부탄력이나 서 있는 모습이 매우 건강해보였다. 요즘은 70대 초반의 노인들에게 “어르신”이라고 부르기가 어색하다. 그들 중 다수는 일도 하고 사회활동도 왕성하다. 등산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활발한 편이라 그렇다.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쩐지 뒷방 늙은이 같은 느낌이 난다. 이 씨는 더욱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코로나19 때문에 16명이 두 시간 연속으로 만나기로 했던 강좌는 8명으로 쪼개 1시간씩 같은 수업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수업은 강당만한 크기의 널찍한 강의실을 사용했고, 2인용 책상에 한쪽에만 앉게 했다. 책상마다 아크릴 칸막이를 설치했고, 쉬는 시간마다 방역복을 입은 사람이 들어와 소독을 했다. 담당 복지사는 소독액이 묻은 물티슈를 가지고 책상과 의자를 닦았다. 노인들은 코로나에 더욱 취약하다는 게 널리 알려진 터라, 올 봄에 개관한 복지관이지만 가을이 다 되어 첫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었다.

16명의 수강생 중 남성은 네 명이었다. 그중 눈에 띌 정도로 자세가 곧던 사람은 젊은 날 직업군인이었다. 이번 강좌는 총 8강이었지만, 매 회마다 한 시간씩 밖에 주어지지 않았고, 참가자들이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복지관의 요청도 있어서, 정해진 교재를 가지고 간단한 메모를 하고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했다. 근현대사 속에 숨겨진 나의 삶을 찾아보는 시간에 68년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과 그로 인한 주민등록제도의 탄생을 이야기했는데, 이 씨가 손을 들고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라고 정중하게 물었다. 나는 알고 계신 게 있으면 말씀을 해주십사 부탁했다.

그는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직업군인이었습니다. 지금 강사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를 들으니 제가 근무했던 지역이 생각나는데요. 그때 김신조가 내려왔던 경로가 제 근무지역은 아니었고, 저는 당시 다른 지역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이전에 근무했던 곳이라 제가 그 경로를 잘 압니다.”

그는 당시 장교였는데, 파평산부터 삼봉산을 따라 파주 법원리 초리골까지 내려왔던 김신조 무리들의 경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저런 지형지물까지 한참을 설명했다.

과거 고교야구는 지금의 프로야구 못지 않은 인기를 끌며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과거 고교야구는 지금의 프로야구 못지 않은 인기를 끌며 국민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다큐멘터리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 캡처

“내 어릴 적 꿈”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이 씨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재에 열심히 까만 사인펜으로 메모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준비하는 걸 주의깊게 봤다. 그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그에게 발표를 부탁했다.

“에, 제 어릴 적 꿈은 아나운서였습니다. 그래서 연습도 꽤 많이 했습니다. 불행히도 아나운서가 되진 못했습니다만.” 그는 발표할 때나 나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 문어체로 말을 했다. 일부러 그렇게 애쓰는 것 같았다. 군 출신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가 정중한 태도로 조리있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매번 애쓰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그는 메모해 놓은 것을 순서대로 읽으며 청룡기 야구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4번 타자 들어섰습니다. 4번 타자, 4번 타자, 최◌◌ 선수, 배트를 힘껏 움켜쥡니다. 볼 배트 맞았습니다. 쭉쭉 날아갑니다. 넘어갑니다. 넘어갑니다. 호옴러언. 담장 넘어갑니다. 자 3루 뛰기 시작합니다!!” 그의 야구중계는 1분이 못 되어 끝났고 정확한 상황을 상상해내기엔 지나치게 정중해서 집중해서 들어야 했지만, 마스크의 가운데부분을 손으로 잡아 끌어 살짝 든 채로 정확한 발음을 토해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다.

한 번은 그가 수업 시간 전에 나에게 인사를 하며 지난 주에, 나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다고 말했다. 나는 “제가 조사가 되던가요?”라고 웃었는데 그는 대뜸 나에게 “저도 노사모 회원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 주에 그는 노인일자리 정책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 다음 주에는 두 장의 명함을 건넸다. 명함에는 노래지도사, 실버체조지도사, 뇌건강지도사라는 자격증이 적혀 있었고 노인들의 삶을 더 좋게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김신조 사건’ 또렷이 기억하는 군인 출신의 꼿꼿한 노인
어릴 적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그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매일 수십 가지를 챙기는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

8주의 강좌가 거의 끝나갈 무렵, 복지관에서는 수업 참가자들에게 간단한 영상 자서전을 만들 계획을 알려왔다. 인터뷰 질문 다섯 개 정도에 대해 대답하고 그 내용을 편집해서 이들에게 선물한다는 내용이었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 격려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수업에서 인터뷰 질문 중에 우리가 아직 얘기하지 못한 것을 말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아직 얘기하지 못한 것은 깊은 사생활의 한 구석인,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자녀에게 남길 이야기를 했다.

이 씨는 어쩐지 다른 날보다 긴장되어 보였고, 결심하는 듯한 태도로 여전히 교재에 검은 사인펜으로 메모를 해나갔다. 나는 이번에도 그에게 시간을 주고 싶어서 다른 사람의 발표를 다 듣고 난 다음에 그에게 발표를 부탁했다.

“저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그 아들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유엔에서도 가장 고통스럽다고 말한, 자폐라는 병입니다. 이 병은 하루에 스물네 번 죽고, 스물네 번 다시 살아납니다. 제 아들은 하루에 스무개가 넘는 약을 먹습니다. 저는 리스트를 만들어서 하루 70가지의 생활점검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정말, 하루도 쉬지 않고, 하루도 빼먹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가 울음을 삼키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아들의 이야기를 했다. 지난 달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12주차 생애사쓰기 수업을 마친 나는 그에게, 무슨 말이라도 해야만 했다.

“이야기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2013년부터 장애인부모회의 글쓰기 수업을 간간이 하고, 같이 악기 연주도 하는데요. 발달장애라고 하죠? 자폐와 지적장애가 있는 청년들과 생애사쓰기도 했고요. 그래서, 지금 말씀하신 이야기가 뭔지 대충은 이해합니다.” 이 씨는 고개를 떨궜다가 다시 꼿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는 먼 곳을 보고 있었다.

중증자폐를 가진 아들을 위해 그는 하루 20개 넘는 약을 챙겨야 했다.
중증자폐를 가진 아들을 위해 그는 하루 20개 넘는 약을 챙겨야 했다.ⓒpixabay

이 씨의 아들은 중증자폐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폐 외에 다른 여러 질환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설에 오래 있었고, 집에도 잠시 데리고 있기도 하고, 반복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너무 힘듭니다.”라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수업 마지막 날, 그는 교재 위에 매일 체크해야 한다는 일상점검표를 펼쳐놓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공개적으로 이게 뭐냐고 일부러 묻지 않았다. 그도 나에게 그 점검표를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자기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동안 그가 책상에 일부러 올려둔 점검표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창문 닫기, 가습기 물 채우기, 약 먹기 등. 표에는 약의 이름이 여러 개 적혀 있었다. A4용지에, 그 까만 사인펜으로 적은 글씨가 단정한 표 안에 정리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참가자들에게 칼럼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고개를 크게 끄덕였거나, 미소를 지으며 수락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8주간의 수업은 지난 주에 끝났다. 나는 그를 어떤 단체의 사무국장에게 소개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단체의 사무국장의 연락처를 알아봤고, 복지관의 복지사에게 단체의 소개가 실린 기사 링크를 보내주었다. 아직 건강한 그가, 더욱 더 건강해지길 바랄 뿐. 그 무엇이 나아질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꼿꼿한 삶을 만들어나가길 간절히 바란다.

이하나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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