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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자라는 아빠] 자전거로 20km를 완주한 후에 알게 된 것

여섯 살짜리의 삶에는 처음 해보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한글과 숫자 배우기, 젓가락질, 양치질, 옷 찾아서 입기, 심지어 큰 볼일 후 뒤처리까지도요. 온통 서툰 것 투성이니 마음 같지 않은 게 많은 일상입니다. 이럴 때 다시 시도하기보다는 부모가 대신해주길 바라죠. 괜찮아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나 양치질을 대신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어설퍼도 아이 스스로 하고자 하는 태도와 노력이 눈에 보이면 놓치지 않고 칭찬해주려 합니다. 아이 마음속에 '자기효능감'이라는 나무가 잘 자라길 바라면서요.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건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낙담하기보다 끈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반대로 자기효능감이 시들해졌을 땐 자기 능력을 과소평가하며 "난 못해, 아빠가 다 해줘"라며 하기 싫어합니다.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지레 포기하거나, 실패가 두려운 나머지 시도조차 피하고 맙니다. 아이로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때로는 혹시 너무 의존적인 건 아닌지 괜한 걱정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들 수현이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필자
아들 수현이와 함께 나란히 달리는 필자ⓒ사진 = 오창열

우리는 날씨 좋은 주말이면 자전거 타기 좋은 곳으로 떠납니다. 주행 거리도 점점 늘어나는 중입니다. 김포 한강야생조류생태공원에서 5km를 탔을 땐 놀라웠고, 영종도 씨사이드파크에서 6km를 달렸을 땐 감격스러웠습니다. 이 세상에 근거 없는 자신감은 있을지 몰라도, 근거 없는 자기효능감은 없습니다. 운동을 해야 근력이 생기듯, 시도와 노력이 성공으로 이어져야 자기효능감도 튼튼해지는 법이죠. 아이는 주행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자전거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고, 의욕이 차올랐습니다.

성취 경험을 쌓아가던 우리는 급기야, 국토종주 자전거길인 아라 자전거길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쉬운 일이라면 도전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은 서해와 한강을 잇는 아라뱃길의 양쪽에 조성된 자전거길인데, 편도 거리가 무려 20km입니다. 아이의 16인치 자전거는 지면에서 높지 않아 안정감을 느끼며 타기엔 좋지만, 멀리 가기에는 바퀴가 너무 작습니다. 아이가 중도 포기를 할 경우, 나는 아이뿐 아니라 2대의 자전거를 목적지까지 옮겨야 하는 곤란한 상황이 생기겠지요.

위기가 예상되지만, 걱정하는 대신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아이의 몸과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20km는 정말 정말 먼 거리야. 그래서 밥을 잘 먹고 힘을 길러야 해"라고 신신당부 했습니다.

그리고는 당일 아침, 마지막 결의를 다졌습니다. 아이에게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 대답을 아이가 자신과의 약속으로 새기길 바랐습니다.

- 수현아,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해. 할 수 있겠어?
- 물론이지! 포기는 없다!

'포기는 없다'라니! 즐겨보는 로봇 만화의 대사가 여기서 튀어나오네요. 만화의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씩씩한 대답을 들으니 나의 마음도 준비가 되었습니다. 가깝게 지내는 한 가족과 함께 집결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라 자전거길을 달리는 수현이와 이웃 가족. 가장 앞장서고 싶어서 엉엉 울었던 건 비밀이다.
아라 자전거길을 달리는 수현이와 이웃 가족. 가장 앞장서고 싶어서 엉엉 울었던 건 비밀이다.ⓒ사진 = 오창열


두 명의 아빠는 각각 선두와 후미를 맡고, 두 꼬마는 아빠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달렸습니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놀며 쉬며 서쪽 끝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아라뱃길 수면 위로 빛나는 윤슬, 울긋불긋 단풍잎, 시원하게 쏟아지는 아라폭포 등 구경할 것이 많았습니다. 자전거 코스는 대부분이 평지인데다, 간혹 매점과 화장실이 있어 아이와 함께 즐기기에 무척 좋았습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아이의 체력이 떨어져 더 자주 쉬어야 했고, 나 역시 아이의 안전한 주행을 위해 끊임없이 큰소리로 주의를 주느라 많이 지친 상태였습니다. 출발 4시간 만에 우리는 결국 해냈습니다. "정말 대단해! 진짜 해냈어!"라며 나는 떠들썩하게 아이의 노력과 성취를 축하해줬습니다. 손뼉으로는 모자라 내 품에 꽉 끌어안아 줬습니다. 차가운 바닷바람에 한기를 느끼며 바라본 정서진의 붉은 낙조는 아름다웠습니다.

몸을 녹이러 들어간 근처 건물에 커다란 전신 거울이 있었습니다. 거울 속 아이까지 대견해 보입니다. 아빠의 축하는 이미 충분했지만, 아이가 자신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경험을 시켜주기로 했습니다. 아이에게 "자, 아빠 말을 따라 해보자!"라며, 인사를 거울 속 자신에게 건네도록 선창했습니다.

- 수현아, 너는 멋지게 해냈어!
- 수현아, 너는 멋지게 해냈어!
-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다니 정말 대단해!
- 힘들었을 텐데 포기하지 않다니 정말 대단해!

아이는 칭찬을 만끽하며 액션 만화 주인공 같은 포즈를 취합니다. 가슴은 활짝 펴지고, 한껏 솟아오른 어깨 위에는 '20km 완주'라는 빛나는 훈장이 내려와 앉습니다. 이후 종종 아이에게 '네 자전거 기록은 점점 늘어나는 중이고, 그것을 오로지 너 혼자만의 힘으로 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 주었습니다.

수현이는 필자와 함께 자전거로 20Km를 달렸다. 우리 두 사람이 달린 거리.
수현이는 필자와 함께 자전거로 20Km를 달렸다. 우리 두 사람이 달린 거리.ⓒ사진 = 오창열

자전거길 완주라는 성취 경험은 여러 도전 상황에서 유용했습니다. 아이가 뭔가를 피하거나 주저할 때면 "20km 달린 사람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럴때마다 아이는 스스로 움직였습니다. 먹기 싫어서 지난 1년 동안 도망쳐다녔던 비염약을 먹으며 "조금 먹을 만하네"라고 허세(?)를 부리거나, 물이 쏟아지는 수도꼭지 아래에 고개를 숙여 순순히 머리를 감습니다. 머리 감는 걸 그렇게 싫어하던 아이는 어디론가 가고 없습니다.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노력하는 수많은 순간을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야말로 아빠가 할 수 있는 정말 중요하고 멋진 일이라는 것을요. 여섯 살 아이의 세계는 새로운 시도와 연습거리로 가득 차 있으니, 그만큼 아빠가 칭찬과 격려를 해줄 기회도 많습니다. 그것들을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자기효능감을 키워주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아이가 외칩니다.

- 아빠! 우리 다음에 100km에 도전해보자! 할 수 있을 것 같아!

자신감 넘치는 제안에 동공이 흔들립니다. 수현아, 그때는 엄마랑 둘이 가면 어떨까?

오창열 정신건강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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