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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주권 침해에 반대한다”, 대사직 내던진 아르헨티나 외교관
아르헨티나 외교관 알리시아 카스트로
아르헨티나 외교관 알리시아 카스트로ⓒ영국 외무·영연방부

편집자주/미국은 베네수엘라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전방위적인 공세를 취해 왔다. 유엔 등을 통한 ‘인권’ 문제 제기도 그 일환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지난달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베네수엘라의 인권 침해 상황을 2년 더 조사한다는 결의안에 찬성하며 미국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자 러시아 주재 대사에 임명됐던 아르헨티아 베테랑 외교관 알리시아 카스트로는 강력 반발하며 대사직을 내던졌다. 그는 미 제국주의에 맞서 라틴아메리카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다. 카스트로의 얘기를 다룬 미국 독립언론 카운터펀치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Argentina’s Veteran Ambassador Makes a Stand for the Sovereignty of Latin America

알리시아 카스트로는 자기 속내를 감추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카스트로는 외교관이 되기 전 아르헨티나 항공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며 노동운동 지도자로 활약했고 8년간 국회의원으로 아르헨티나의 노동자를 위해 싸웠다. 그러다가 영국과 베네수엘라 주재 대사를 거쳐 올해 초 러시아 주재 대사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런데 발령대기 중 사건이 터졌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지난 10월 6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베네수엘라에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분개한 카스트로는 이내 신임 러시아 주재 대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사직서를 공개했다. 그녀는 “현재의 외교정책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대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그녀에게는 사임이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녀는 자국의 주권과 라틴아메리카, 그러니까 위대한 고향, “파트리아 그란데(Patria Grande)”의 주권에 대한 아르헨티나 정권의 전반적인 입장이 자기와 다르다면 자신이 정권을 위해 복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악용되는 ‘인권’

2019년 7월, 전 칠레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은 베네수엘라의 소위 ‘인권침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큰 허점이 많았다. 보고서는 미국의 제재를 경시한다. 2017년부터가 아니라 2008년부터 가해진 미국의 일방적인 제재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야권의 선동으로 일어난 2014년과 2017년, 2019년의 폭력 사태들 얘기도 쏙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첼레트는 자기 입장을 밀고 나가며 2019년 12월 베네수엘라에 인권 침해 사례를 보고할 인권 사무소들을 세우기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인권”이 법적인 의미대로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했다. 인권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을 음해하는 미국과 그 동맹세력이 펼치는 가짜뉴스 캠페인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2020년 9월 바첼레트는 베네수엘라의 인권침해 사례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 위해 유엔 인권이사회에 참석했다. 이때는 마침 베네수엘라가 12월 6일 총선을 앞두고 있을 때였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총선 과정에 개입해 베네수엘라 정치를 흔들어놓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밝힌 바 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 총선에 개입할 수단으로는 리마그룹이 있다. 리마그룹은 캐나다와 몇몇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2017년 설립한 단체로 미국의 베네수엘라 체제 전복 전략을 보조하고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2019년 9월에는 리마그룹과 미국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압력을 가해 베네수엘라에 독립적인 국제 인권 조사단을 파견하게 했다. 이 조사단은 한번도 “독립적”인 적이 없었다. 조사단의 5백만 달러 (약 55억 7천만 원)예산의 대부분을 리마그룹이 대줬고 조사단의 최종 보고서는 주로 베네수엘라 외부의 SNS 계정들이 올린 검증되지 않는 주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우파 정권 당시의 아르헨티나는 리마 그룹의 핵심 멤버였다. 그런데 중도좌파 정부가 들어선 2019년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당선 이전에 외무부 장관으로 내정한 펠리페 솔라는 아르헨티나는 리마그룹에서 탈퇴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리마그룹이 베네수엘라의 체제 전복이라는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2020년 10월 6일 아르헨티나는 리마그룹의 결정을 따르며 베네수엘라의 인권 침해 상황을 2년 더 조사하겠다는 유엔 인권이사회의 L.43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바로 이 결정이 알리시아 카스트로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침식되는 주권

카스트로는 아르헨티나의 결정에 대해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걸려 있다”고 강조했다. 첫째, 라틴아메리카 제반의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 이 인터뷰는 볼리비아 선거를 며칠 앞두고 이뤄졌다. 이번 볼리비아 선거에서 좌파 사회주의운동(MAS)이 승리, 지난 2019년 11월 MAS 정권을 무너뜨렸던 쿠데타 세력을 몰아냈다.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좌파 정치 세력을 상대로 사법전쟁(lawfare)이나 혼합전쟁 등 각종 형태의 쿠데타가 활용되고 있다. 페루나 브라질 정부는 콜롬비아에서 좌파 지도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암살당하거나 협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공분하지 않는다. 이들 우파 정권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확대경의 도움을 받아 온통 베네수엘라만 신경을 쓰고 있다.

카스트로는 “용납할 수 없을 정도의 빈부격차”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정권들은 제거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했다. 브라질의 룰라,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그리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 아르헨티나 부통령이 그랬듯 말이다. 카스트로는 “인기있는 지도자들을 악마로 그려내고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데에는 수많은 트롤과 봇을 거느리고 있는 소셜 미디어와 상업적 뉴스 미디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둘째, 리마그룹은 북미와 유럽의 아젠다를 실현하는 단체다. 알리시아 카스트로는 사직서에서 드라고 독트린을 언급했다. 1902년 영국과 독일, 이탈리아가 투자 회수를 위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상봉쇄를 하려 할 때 아르헨티나의 루이스 마리아 드라고 외무장관이 반대한 바 있다. 드라고는 공공 부채의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무장 개입이 허용돼서는 안 되며 라틴아메리카의 주권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카스트로는 “말비나스 섬(포클랜드 섬)을 둘러싼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국토분쟁을 생각하면 이번 투표에서 아르헨티나가 영국이 원하는 표를 던졌다는 것이 더욱 뼈아프다”고 지적했다. 2012년 런던 주재 아르헨티나 대사였을 당시 카스트로는 영국이 말비나스 섬에 관한 대화를 거부한다며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을 비난한 바 있었다. 이번 투표에서 아르헨티나가 드라고 독트린을 거스르고 영국과 같은 표를 던진 것은 아르헨티나의 외교정책의 독립성을 규정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하지만 더 뼈아픈 측면이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채무 불이행 가능성을 놓고 주요 채권 보유자들과 협상 중인데, 이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유엔에서 베네수엘라 인권 상황 조사 기간을 연장하는 데 찬성했다는 지적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파견단이 유엔 인권이사회의 결의안 투표가 있는 날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것이 우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에게는 440억 달러(약 49조 원)의 부채 상환이 가장 큰 국정 과제이기 때문에 부채 상환 일정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국 재무부의 신경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도덕성의 문제

카스트로의 사임으로 체면을 구긴 아르헨티나 정부는 아르헨티나가 리마그룹의 일반적인 관점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반가운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면 10월 6일에 있었던 유엔 투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카스트로의 사직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반제국주의는… 도덕적인 의무다.” 강력한 표현이다. 그녀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사임한 것은 매우 용감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퇴로 많은 이들은 다시금 깨닫게 됐다. 힘있는 자들의 오만함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고개를 똑바로 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정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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