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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충이와 오늘날 택배기사의 삶은 달라졌을까, 장진영의 ‘민중만화’

김 반장:어이, 미안하지만 오늘도 철야야.
노동자1:또 철야야?
노동자2:벌써 며칠 째야.
(중략)
노동자3:김 반장님, 오늘은 쉽시다!
다른 노동자:몸이 엉망이에요.
(중략)
노동자4:어? 충이가 어디 아픈 거 아냐?
충이: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고 자꾸 토해요...

장진영 만화모음1 제1화 멋쟁이 우리 형

장진영 만화모음1 '민중만화' 중 제1화 '멋쟁이 우리형'.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장진영 작가는 가명을 사용해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멋쟁이 우리형'에선 '장영수'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장진영 만화모음1 '민중만화' 중 제1화 '멋쟁이 우리형'.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장진영 작가는 가명을 사용해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멋쟁이 우리형'에선 '장영수'라는 가명을 사용했다.ⓒ장진영 만화모음1 '민중만화'

어제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며칠 전부터 계속되는 철야 작업에 많은 노동자가 지쳐 있다. 하지만 김 반장의 채찍질은 멈추지 않는다. 김 반장은 '물건이 딸리니 이해하라'며 노동자들을 기계 다루듯 '돌린다'. 결국 사달이 난다. 김 반장의 폭언이 이어지던 어느 날 창백한 안색을 보이던 충이가 결국 쓰러진다.

밤낮없는 근무 환경과 비인간적인 근로조건이 담긴 이 만화는 '장진영 만화모음1-제1화 멋쟁이 우리 형'에 나오는 내용이다. 만화 속에 나오는 노동자들의 탄식과 토로는 오늘날 택배 노동자들과 닮아 있었다. 인권 위에 자본. 인간보다 돈. 이 잔혹한 패러다임이 만화와 택배 노동자의 죽음 사이를 관통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시기다. 이 만화는 1985년 노동무크지 '청춘' 창간호에 실린 작품이다.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현실을 고발한 만화인 것이다. 1985년의 현실을 담은 만화와 2020년 택배 노동자의 현실. 과연 달라진 것이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에 이 만화를 그린 장진영 작가는 "노동조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며 "여전히 잔업, 철야에 그렇지 않나"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택배 일이 특히 그런 것 같다"라면서 "밤에 물류창고에서 일하는 야간 아르바이트는 근로조건이 최악이더라. 밤 꼴딱 새우고 일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장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대 시절부터 재야 운동단체나 노동단체의 선전물에 민중 만화를 그려왔다. 또한 그는 한국농어민신문, 주간노동자신문 등에 연재물을 싣기도 했고 문화일보에선 시사·만평 기자로 일하기도 했다. 현재 그는 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랬던 그가 최근 자신의 만화들을 묶어낸 만화책을 공개했다. 장진영 만화모음1 '민중만화', 장진영 만화모음2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하지 않았네', 장진영 만화모음3 '나선' 등이다.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와 '나선'은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시대극화다.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는 구로공단 쪽방촌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쪽방촌에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꿈을 공유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 함께 연대하고 의지해서 권리를 찾아 나가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장진영 만화작가(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전공 교수)
장진영 만화작가(상명대학교 디지털만화영상 전공 교수)ⓒ민중의소리

1980년대 이름 없이 투쟁한 사람들
"묵묵히 살아갈 그들에게 만화로 위로하고파"

장 작가는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에 대해서 "식모살이를 하러 어릴 때 상경했다가 노동자가 되고, 그러다가 노동운동 지도자가 되는 성장 만화"라면서 "특히 한국 여성 노동사가 녹아 있다"고 설명했다.

'나선'의 경우 198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학생운동사와 노조결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내용이 마냥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다. 개성이 묻어나는 각각의 캐릭터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 뒤에는 휘몰아쳤던 한국 역사가 녹아 있다. 그래서 이 만화는 우리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교과서 역할도 하고 있다.

장 작가는 '나선'에 대해서 "80년대 대학 운동사를 담은 작품으로 평범한 대학생이 운동권에 합류하는 과정을 담았다"면서 "이 만화는 학생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공장에 위장 취업을 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학생 운동을 한 사람들이 현장에 가서 노동자들도 만나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알리고 노력하는 등 고군분투했다"며 "물론 그중 성공한 것은 몇 프로도 안 되고 나머진 다 실패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랬던 학생들이 오랜 시간 노동 운동하다가 (사회로) 돌아오니까 사회 초년생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단계가 없어서 취업이 안 되기도 했다"며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을 못 하고 힘들게 어렵게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고 회고했다.

장진영 작가는 '나선', '누가 나를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를 포함한 자신의 민중 만화들은 1980년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했지만, 지금은 이름 없는 50대 60대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이들을 생각해서 그린 만화라고 강조했다.

"80년대 학생운동이 대단했다. 그 학생운동가 중에 이름이 없는 민주투사들이 엄청 많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6월 항쟁 때 모든 시민이 거리로 나올 때 젊은 청년 친구들이 마스크를 딱 쓰고 하얀 띠를 두르고 일종의 지휘를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끊임없이 구호를 외쳤다. 그들이 구호를 외치면 다수 시민이 따라 했다. 이름 없는 민주투사들은 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투쟁의 대열을 흩트리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다. 당시 그런 친구들이 엄청 많았는데 지금 우리는 그 친구들이 누군지 모른다. 그 친구들이 있었기에 시민들이 질서를 이루고 군사독재 투쟁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금 50대 혹은 60대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말없이 묵묵히. 구로공단과 학생운동의 치열한 투쟁을 겪은 사람들이 말없이 묵묵히. 예전에 자신을 티 내지 않고 사는 그런 사람들, 그들에게 이 만화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만화들은 그들의 이름 없는 노력을 생각하면서 그렸다."

이 밖에 그는 '삽 한 자루 달랑 들고', '무논에 개구리 울고', '건달 농부의 집 짓는 이야기', '어절씨구! 열두 달 일과 놀이' 등 농촌 생활에 대한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1995년 귀농한 장 작가가 귀농생활을 담아낸 만화들이다.

민중·학생 운동부터 귀농생활을 담은 만화까지, 그의 만화 속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민중 만화 '나선' 속 옹접이 삼촌의 대사는 그것을 말해준다. "농민들의 문제는 꽤 심각하단다. 그리고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진리 중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란다."

장진영 작가의 '장진영 만화모음'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 교보 문고, YES24 등에서 구매 가능하다.

장진영 만화모음
장진영 만화모음ⓒ장진영 만화모음

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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