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주변에 조중동이 꼬이면, 뭔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인간은 이기적인가, 협동적인가? 사실 이것처럼 어리석은 질문이 없다. 인간은 당연히 이기적이기도 하고 협동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이 말하듯 인간이 이기적이기만 하다면 안중근 열사는 왜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테레사 수녀는 왜 평생을 빈민들을 위해 헌신했겠나?

반면 인간이 선천적으로 협동적이라면 이명박 같은 인간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협동이 인간의 천성이라면 내가 ‘협동의 경제학’ 같은 칼럼을 쓸 이유도 없다. 나 따위가 안 떠들어도 연대와 협동은 잘 이뤄질 테니 말이다.

물론 나는 협동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보다 조금 더 많다고 믿는 쪽이긴 하다.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 교수는 “수백 건의 실험을 보면 대략 30%는 이기적으로 행동하지만 통제된 조건 하에서 조사한 어떠한 인간 사회에서도 과반수의 사람들은 시종일관 이타적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이타적인 사람이 50% 가량, 이기적인 사람이 30% 정도라는 이야기인데 나도 경험상 이 견해를 지지한다.

분명한 것은 협동 경제학이 “인간은 무조건 협동적이다”라는 명제를 믿는 순진한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간은 이기적일 수도, 협동적일 수도 있는데(협동적인 사람이 조금 더 많지만)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협동적으로 살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협동을 확산시키는 다양한 조건 가운데 유유상종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과 몰려다니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더 협동이 잘 된다는 주장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떻게 끼리끼리 모이나?

그렇다면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끼리끼리 모이는 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협동 경제학에서는 유유상종을 위해 ①나와 다른 사람을 징계하거나 배제하고 ②평판에 근거해 나와 비슷한 상대를 찾는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보자. A와 B 두 몰이꾼이 산기슭에서부터 사슴을 모는 방식으로 사냥을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이 약속을 지켜 끝까지 사슴을 몰면 그들은 정상에서 사슴을 잡게 된다. 둘은 사슴 반 마리씩 나눠 갖는다. 엄청난 소득이다!

문제는 각자 자리에서 사슴을 몰다가 토끼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발생한다. A와 B 중 한 명이라도 눈앞에 토끼를 쫓으면 사슴은 잡을 수 없다. 토끼를 쫓은 사람은 토끼라도 얻지만, 약속대로 정상까지 사슴을 몬 사냥꾼은 허탕을 친다.

이 게임의 핵심은 A와 B가 서로를 얼마나 믿느냐에 달려있다. 만약 두 사람이 100% 서로를 믿을 수 있다면 당연히 눈앞에 토끼가 나타나도 무시하고 사슴을 몰아야 한다. 토끼 한 마리보다 사슴 반마리가 훨씬 이익이기 때문이다.

반면 서로를 조금이라도 믿을 수 없다면 A건 B건 눈앞에 토끼가 발견됐을 때 잽싸게 토끼를 쫓아야 한다. 선한 마음으로 사슴을 몰았다가 상대가 토끼를 쫓으면 나는 허탕을 치기 때문이다. 사슴사냥 게임이라는 유명한 게임이론 모델이다.

이 게임을 한 판이 아니라 여러 판 한다고 가정해보자. 여기서 유유상종의 과정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협동이와 얍실이 두 사람이 사슴 사냥을 했는데, 얍실이가 눈앞의 토끼를 쫓는 바람에 협동이가 허탕을 쳤다.

다음날 얍실이가 “협동아. 어제는 미안했어. 오늘은 꼭 약속을 지키고 사슴을 쫓을게. 같이 사냥 나가자”라고 말하면 협동이는 어떻게 할까? “그래, 넌 비록 얍실하지만 난 착하니까 너를 또 믿을 거야” 이러면서 동행할까? 그럴 리가 있나? 협동이는 협동을 잘 해서 붙은 이름이지 멍청해서 붙은 이름이 아니다.

당연히 협동이는 얍실이를 걷어 찬 뒤 새로운 동료를 구할 것이다. 이게 바로 ①나와 다른 사람을 징계하거나 배제하는 유유상종의 과정이다.

이제 협동이는 새 사냥 파트너를 구해야 한다. 이때 얍실이와 성향이 비슷한 얍삽이가 “협동아, 나랑 사냥 나가자”라고 구애를 펼쳤다. 한번 당한 경험이 있는 협동이는 새 후보 얍삽이가 평소 사냥에서 어떤 성향을 보였는지 평판을 살피게 된다. 소문을 듣자하니 얍삽이는 얍실이 못지않은 뒤통수 전문가다. 이러면 협동이는 당연히 얍삽이의 제안을 거절한다.

다음 후보는 협력이다. 협력이는 평소 사냥에서 약속을 잘 지키기로 소문이 짜한 사람이었다. 이런 평판을 종합한 뒤 협동이는 ‘협력이라면 믿을 수 있어’라는 생각을 갖는다. 결국 두 사람은 사냥 연대를 결성하고 사슴 사냥에 성공한다. 이게 바로 ②평판에 근거해 나와 비슷한 상대를 찾는 유유상종의 두 번째 과정이다.

진보가 지켜야 할 선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진보정부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다. 잘못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해야 하고, 투쟁해야 한다면 당연히 투쟁해야 한다. 진보는 다양성 속에서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일치된 단결보다 건강한 충돌이 진보적 역사 발전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이때 주의할 점이 있다. 진보정부에 비판적 의견을 갖는 것과, 조중동이나 국민의짐, 아니 참, 국민의힘 같은 무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진보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주변에 조중동이 꼬이고 국민의힘이 꼬이면 여기서부터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의견을 크게 실어준다고 인터뷰도 하고, 기고도 하고, 강연 요청도 받아들이고…, 이러면 많이 곤란하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에서 강연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이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의힘 초선의원 모임에서 강연하고 있다.ⓒ정의철 기자

그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그들이 이미 ①나와 다른 사람을 징계하거나 배제하고 ②평판에 근거해 나와 비슷한 상대를 찾는 과정을 거쳐 나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조중동이나 국민의힘이 자기와 다른 사람을 미쳤다고 간택하겠나? 그런 사람들은 이미 배제된 지 오래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평판에 근거해 자기편을 찾는다. 주변에 조중동이나 국민의힘이 꼬이는 순간 그들은 이미 그 사람을 평판에 의해 믿을만한 멤버로 생각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인터뷰로 이름도 크게 실어주고, 원고료나 강연료도 주는 것이다.

이런 평판이 형성되면 언젠가 다시 진보를 위해 싸울 때 우리는 정말 그들과 동료가 되기 어렵다. 견해가 다른 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다. 진보는 얼마든지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평판이 다른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조중동이나 국민의힘과 몰려다녔다는 평판, ‘저 사람은 언제든지 조중동이나 국민의힘과 손을 잡을 수 있어’라는 잔영은 다음 사냥 때 절대 그를 동료로 택할 수 없게 만든다.

그들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선 적이 없었던 자들이다. 역사적으로 항상 민중을 탄압하고 노동자들의 죽음을 부추겼던 자들이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진보는 단언컨대 단 한 개도 없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진보는 조중동이나 국민의힘이 내미는 손을 뿌리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최소한 서로를 경청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안 된다면 우리는 영영 갈라서야 한다.

이완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