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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기억과 공간] 서소문 밖 행형지의 변신,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 하늘광장의 모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내 하늘광장의 모습ⓒ사진 = 김명식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이곳은 지금의 모습이 되기 바로 전, 순교한 천주교인을 기리는 현양탑과 산책로가 있었던 ‘서소문 공원’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엔 서소문 밖 행형지(行刑地, 형 집행장소)로서 대표적 장소 중 하나 였습니다. 이 곳에서는 참형(斬刑, 칼로 목을 베어 죽이는 형벌) 뿐만 아니라 효수경중(梟首警衆,목을 베어 머리를 매달아 뭇사람을 경계하는 것)도 이루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종영된 드라마 ‘녹두꽃’의 등장인물이자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지도자 중 한 명인 김개남의 목이 효수됐던 곳이 이곳입니다. 그외 17~18세기 여러 죄인의 목이 효수된 기록이 있지만, 특히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9), 병인박해(1866), 기묘박해(1879) 당시 많은 천주교인이 고난 끝에 순교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곳은 이곳은 형을 집행한 사형장이자, 죽음을 본보기로 보여주던 효수 형장이었던 것입니다.

잠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주변을 둘러보겠습니다. 현재 이곳은 서울지하철 충정로역(2,5호선)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합니다. 서소문 공원 북쪽으로는 서소문고가차도가 동서를 잇고, 오른편으로는 붉은 대리석으로 된 옛 중앙일보 빌딩이 보입니다. 둘 사이 경사진 옆길 인도에 서소문 터 표지석이 세워져 있지요. 반대편으로는 마치 공원이 자기 정원인냥 주인 행세하는 듯 보이는 브라운스톤 아파트가 서 있습니다.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성당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성당ⓒ사진 = 김명식

머리를 왼쪽 대각선으로 돌리면 종영된 지 20년이 넘은 드라마 ‘왕초’에 나오는 인물들(거지)의 근거지였던 염천교가 있습니다. 그 옆으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수제화거리가 있습니다. 염천교에서 수제화거리를 지나면 언덕 하나가 나옵니다. 과거 약현동산이라고 불렀던 약현언덕 위에 약현성당이 서 있습니다.

약현성당은 서소문 순교 현장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성당은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명복을 빌었던 한국 최초의 성당(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의 절충)입니다. 1892년에 건립되어 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몇 해 후 명동성당도 설계했습니다.

약현성당은 지난 10월 소개했던 ‘서울로7017’과 ‘윤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관련기사:시월 가을을 만끽하려면 ‘윤슬’로) 서울로7017서 걸어서 10분이면 되는데, 걷다 보면 좌측 언덕 위에 성당을 보게 됩니다. 아래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올라서면, 명동성당과 다르게 친근하고 포근하며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성당을 마주하게 됩니다.

(왼쪽) 1984년에 세워진 현양탑. 현재는 약현성당에 옮겨져 있다. (오른쪽) 1999년 새로 세워진 현양탑
(왼쪽) 1984년에 세워진 현양탑. 현재는 약현성당에 옮겨져 있다. (오른쪽) 1999년 새로 세워진 현양탑ⓒ사진 = 김명식

다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돌아옵시다. 이곳은 조선 후기 많은 수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장소였다는 의미를 기려 지난 1973년 공원으로 지정됐습니다. 이후 1984년 순교자를 기리는 현양탑이 이곳에 세워집니다. 이후 1997년 서소문 공원이 한 차례 단장됐고, 1999년에 현재의 현양탑이 세워집니다.

현재의 현양탑에는 많은 의미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현양탑은 구조를 보면, 가운데 주탑이 있고 좌우 대칭으로 두 개의 탑이 서있는데, 각 탑은 조선시대 죄인에게 씌웠던 큰칼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탑 윗편의 원형 틀에서 7대 성사를 상징하는 일곱 개의 금빛 선이 흘러내립니다. 가운데 탑에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의 형상이, 오른쪽에는 27위 복자와 30위 순교자의 이름이, 왼쪽에는 순교한 44위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름 없이 순교한 많은 순교자들을 의미하는 하얀 조약돌이 탑 아래 원형 분수에 가득합니다. 탑 뒤쪽 예수와 나사로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순교자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상 공원의 모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상 공원의 모습ⓒ사진 = 김명식

2019년 이곳은 현재의 모습대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지상에는 넓은 공원이, 지하에는 박물관이 들어섰습니다. 서울 도심의 새로운 명소가 된 것이지요. 이전에는 현양탑 주변을 제외하고 산책로 일대가 정리되지 않은 듯 했으나,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조형성과 공간 구성 등을 갖춰, 도시의 훌륭한 공간과 건축물로서 시민에게 찾아왔습니다.

또 지하 박물관을 가기 전 지상 공원에 여기 저기 벤치를 두어 휴식과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우리를 앉지 못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벤치 하나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누워있는 노숙인 예수를 마주하게 됩니다. 발등에 난 선명한 못 박혔던 상처가 우리가 마주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임을 알려줍니다.

노숙인 예수
노숙인 예수ⓒ사진 = 김명식

이 노숙인 예수상(Jesus the Homeless)’은 어느 성당 앞에 설치돼 신성모독의 논란까지 일으킨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Timothy Schmalz)의 작품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인근에서 얼어 죽은 노숙인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작품을 직접 축복하고 교황청에 설치하였지요. 이후 여러 나라에 설치되어 현재 우리에게까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노숙인은 제눈에 예수가 되어 비칩니다. 이달 15일 찾은 이곳에서 제단 뒤쪽에 실제 노숙인이 누워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만 같습니다. 잠깐이지만 이곳 지하에 박물관보다는 노숙인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염천교 방면 주출입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염천교 방면 주출입구ⓒ사진 = 김명식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공원은 서소문고가차도 방면, 브라운스톤 방면, 염천교 방면에서 진입이 가능합니다. 서소문고가차도 방면에서 공원으로 진입하여 지상에서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박물관으로 진입이 가능하고, 브라운스톤 쪽 주차장 출입구와 그 옆 출입구를 통해 지상 공원과 지하 박물관으로 진입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염천교 방면에서 지상 공원과 지하 박물관으로 진입이 가능한데, 주 출입구는 긴 경사로를 통해 지하 박물관으로 진입하는 이곳입니다.

이 경사로를 따라 내려오면 벽돌로 에워싼 지하 2층 깊이의 진입 공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곳은 앞으로 보게 될 근사한 공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죄인의 목을 옥죄었던 칼을 형상한 형틀 조각상이 인상적입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 공간(윗줄 왼쪽, 젊은 연인. 윗줄 오른쪽, 순교자의 칼)과 내부 모습. 지하3층 상설전시관 ‘오래된 미래’(아랫줄 왼쪽), 전시물 ‘순교자의 무덤’(아랫줄 오른쪽).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입구 공간(윗줄 왼쪽, 젊은 연인. 윗줄 오른쪽, 순교자의 칼)과 내부 모습. 지하3층 상설전시관 ‘오래된 미래’(아랫줄 왼쪽), 전시물 ‘순교자의 무덤’(아랫줄 오른쪽).ⓒ사진 = 김명식

내부로 진입하면 어떤 곳을 찍어도 예술이 되는 멋진 공간을 만납니다. 뮤지엄샵, 작지 않은 도서관, 심포지엄 공간인 명례방, 순례자의 길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성 정하상의 기념경당, 기획전시실, 소강당이 있고, 한층 더 내려가면 상설전시관 ‘오래된 미래’를 만납니다. 조선후기 천주교, 서학, 동학 등 다양한 종교와 사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상설전시관을 지나면 조선시대 목숨을 다한 이를 위로하고, 오늘을 사는 시민에게 위안과 평화의 공간을 제공하는 콘솔레이션 홀을 만납니다. 이곳에는 순교한 성인 다섯 분의 유해가 자연광 아래 모셔져 있습니다. 돌아서면 하늘이 닿은 하늘광장이 있습니다. 그 어떤 미사어구의 도움을 받더라도 형상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해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늘광장이 그렇습니다.

하늘광장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의 가장 본질적 공간, 그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하늘광장이라고 이름붙여 신의 공간처럼 신비스러울 것 같지만, 실은 땅의 공간, 땅 위를 살다간 사람의 공간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순교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지요. 이곳 하늘광장에 서 있는 순교자들은 정말 저 하늘위 광장에 있는 것과 진배없겠지요. 제3차 대유행에 접어 든 역병이 진정되면, 가장 먼저 다시 찾고 싶은 공간입니다.

지하3층 ‘하늘광장’의 모습들
지하3층 ‘하늘광장’의 모습들ⓒ사진 = 김명식

김명식 건축가·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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