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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수북통신] 오후 세시의 대치

작년 11월에 한나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온 한통의 통지표를 받았다. 11월부터 건강보험료가 대폭 오른다는 내용이었는데 한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한나네는 지역의료보험인데 새로 통지된 보험료는 한나네 수입으로는 너무 벅찬 것이었다. 한나가 살고 있는 담양은 장성지사 관할이므로 한나는 장성으로 전화를 했다. 지금 내는 보험료도 그렇고 나에게 통지된 보험료는 보험료가 아니라 거의 징벌 수준이다, 그러니 어떻게든 보험료를 재산정해주시라. 처음에 직원은 한나 선생네의 보험료 산정점수가 틀리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노라, 고 했다. 한나의 목소리가 용수철처럼 튕겨오르는 것은 정해진 순서. 이차저차 저러이러#%@*$..... 하다보니, 직원이 문득, 프리랜서시라구요? 그러면 해촉증명서를 떼서 보내주시면 재조정을 받을 수도 있.을.거,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뭐, 뭐라구요? 해촉증명서요? 내가 누구한테 고용된 적이 없는 사람인데, 내가 어, 어디하고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닌 사람인데, 무슨 해촉증명이라니요?

그러니까 이 위대하신 해촉증명서로 말할 것 같으면 프리랜서 직업을 가진 사람의 소득이 지속적인 것이 아니고 일회성, 단발성임을 증명하는 수단인 바, 해마다 5월이면 신고하는 종합소득세의 소득발생처를 국세청이 건강보험공단에 통보를 해주는데 그때 건강보험공단에서는 그 소득이 일회성, 단발성 소득이 아니라 지속적 소득이라 간주하고서 의료보험료를 산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소득이 지속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프리랜서 자신이 증명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해촉증명서가 바로 그 증명서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해촉증명서
해촉증명서ⓒ자료사진

작년에 한나는 그놈의 해촉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그 전해에 소득이 발생한 곳에 하루종일 전화를 돌려댔었다. 아니, 그 전해 것뿐만 아니라 그 전전해, 그 전전전해 것까지. 왜냐하면 해촉증명서만 내면 5년 이내에 과납부된 보험료를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해서. 거의 목구멍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똑같은 말을, 그러니까, 건강보험공단에서 말이쥐, 내가 귀 회사 잡지에 글을 쓰고 받은 돈을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간주하야, 보험료를..... 이 대목쯤이면 벌써, 한나의 목소리가 자동으로 올라가면서, 급격히 자제력을 잃게 되어 있는데, 예, 알아요, 알아, 매년 11월이면 작가들한테서 이런 전화 가끔 와요, 해주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어 한나가 한결 편해지는 케이스다. 그 반대 케이스는 맹한 목소리로, 꼬치꼬치 물으면서 그것이 뭣이답니까? 당최 이해가 안되는구만요이, 이해가. 그렇다고 한다면은 대한민국의 작가들은 지금까지 다, 그렇게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되려 그쪽에서 흥분을 하는 경우엔 한나더러 도대체 어떡하란 말인가. 한나 남편도 그런 경우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도대체가 이해가 안 되네, 이해가. 매년 11월이면 대한민국의 작가들이 고용된 적도 없는 여기저기에 전화해서 해촉증명서 하나 보내해주십사, 굴욕적으로....
굴욕적으로 전화한 거 아닌데라우?

(한나는 급하거나, 뭔가 특수상황에서는 의도적으로 ‘본토’말을 쓴다).
하여간 그 상황 자체가 굴욕적이잖아, 대한민국의 작가들...
작가들 아니고 프리랜서.
하여간, 그 많은 작가들이 말야.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누구도 타개하려고는 하지 않고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여기저기 전화해서 해촉증명서 보내주십사, 동냥아치처럼 말야.
동냥아치같이는 안 했는디라우?
하여간! 고용된 적도 없으면서 일회성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해촉증명서를 내라고 하는 것도 이해불가고 또 그런 불합리에도 찍소리 안하고 따르는 ‘작까’들도 이해불가야!

한나는 결국 ‘그럼 나보고 어떡하란 말야? 우선 해촉증명서 내고 나서 따져도 따지자고라고라우!’ 절규하는 수밖에.

우여곡절 끝에, 한나는 건강보험공단 장성지사 직원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수년간의 해촉증명서를 제출했고 해촉증명서라는 것을 내지 않아(해촉증명서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과납부한 줄도 모르고 과납부한 보함료를 환급받을 수 있었고 보험료도 조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일년이 후딱 갔고 어김없이 보험료재산정 통지표가 당도했다. 올해는 작년처럼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 한나는 최대한 숨을 죽여 다시 장성지사에 전화를 했으나, 들려오는 소리는,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다시 걸어.... 하는 수없이 이 뒤숭숭한 코로나 시국에 집을 나서는 수밖에. 한나는 건강보험공단 담양출장소에서 ‘2019년도 소득지급처 상세내역’을 직접 떼기 위해 읍내 가는 버스를 탔다. 그것을 떼어 와서 한나는 해촉증명서 보내주십사, 여기저기 전화하는 ‘동냥아치적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말일(바로 오늘!) 안으로 제출해야만 11월분부터 적용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상황은 급하다.

날은 부쩍 추워졌다. 날도 춥고 장날이 아니라서 버스엔 손님이 없다. 짙은 선글라스 젊은 기사는 시골길을 고속도로 달리듯 과속으로 달린다(한나 입장에서는 고맙다!). 주평리 앞에서 할머니가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기사가 문을 연다.

할머니, 마스크 안 쓰면 차에 못 타요.
할머니는 무시하고 올라온다. 자리에 앉는다.
할머니, 내리세요.
할머니는 옷소매로 입을 가린다. 읍내는 빨리 달리면 단 10분 거리. 좀 봐줄 만도 하건만,
할머니 내려서 마스크 쓰고 타시라니깐욧.
할머니는 미동도 안한다.

차는 그대로 멈춰있다. 할머니가 내릴 때까지, 그래서 할머니가 마스크를 쓰고 탈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태세다. 할머니는 유일한 손님인 한나를, 간절하게, 애절하게 바라본다. 한나는 그날따라 급하게 나오느라, 여분의 마스크가 없다. 선글라스 기사와 할머니의 팽팽한 대치 속에 한나는 점점 죽을 것만 같아진다. 부쩍 차가와진 11월의 찬바람만 열린 차문을 드나든다. 시간은 오후 세시다. 기사가 틀어놓은 노래는 왜 또 이리 비장한가. 세상이 왜 이래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공선옥 소설가
공선옥 소설가ⓒ자료사진

*이번 호부터 ‘공선옥의 수북통신’은 공선옥 대신 ‘한나’가 배달할 예정입니다. 한나는 작가를 대신한 이름입니다.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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