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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그대로 고민해도 괜찮아” 어린이의 ‘나다움’ 존중한 작가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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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처음 내 입 ‘밖’으로 꺼낸 고민은 무엇이었을까. 속으로만 애태우지 않고 누군가와 첫 공유한 나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생각해도 잘 기억나진 않는다.

세상에 현실적인 고민과 비현실적인 고민은 없음에도 말하기 망설여지는 고민이 꽤 있다. 어린 시절 내보이기 부끄러웠던 고민거리는 성인이 돼서도 꺼내기가 두렵고 어렵다. 사회가 규정한 ‘틀’에 익숙해져서, ‘나만 하는 고민’인 것 같아서 괜스레 주춤해진다. 그냥 속으로 앓거나, 운이 좋게 누군가가 알아주길 기다리는 경우가 잦다.

우리 사회는 더 많은 ‘다양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체감은 여전히 더디다. 누구보다 다양성이 어우러진 사회에서 시작점을 맞이하고, 다양성이 자연스러워야 할 오늘날의 어린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보다 더 넓은, 편견 없는 사회와 동행할 어린이들에게 ‘무엇이든 그대로 고민해도 괜찮다’, ‘너의 걱정은 사사롭지 않다’고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 김나율 씨를 만났다. 걱정으로 잠들지 못하는 어린이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고, 세상에 하지 못할 고민은 없단 걸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도서출판 ‘차차’ 김나율 공동대표가 2일 서울 마포구 합정 한 스터디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02
도서출판 ‘차차’ 김나율 공동대표가 2일 서울 마포구 합정 한 스터디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02ⓒ김철수 기자

어른들은 말하지 않았던 ‘퀴어 어린이’

대학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나율 씨는 시와 그림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말하지 않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담는” 시와 그림책, 그 둘 중에서도 특히 그림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 ‘다양성’이 담긴 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나율 씨의 작품은 모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지난해 출간한 첫 작품, 퀴어(성소수자) 그림책 <고민이 자라는 밤>은 그 시작이다.

“저는 아주 어릴 때 제가 퀴어인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매체에서도 그걸 다루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얘기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구나’라고 학습했다. ‘나는 남들과 다른 거구나’ 생각하며 그거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의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을 위한 ‘무언가’가 너무 없다고 생각했다.”

나율 씨는 어린 시절의 자신, 또 현재 어디선가 자신과 같은 고민을 이어가는 이들에게 선물할 ‘그 무언가’로 <고민이 자라는 밤>을 내놓았다. 그는 책을 통해 “모든 사랑의 마음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그대로 고민해도 괜찮다”고 다독인다.

<고민이 자라는 밤>은 한 아이가 같은 성별인 다른 아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커지는 고민, 태어나 처음 만나는 사랑의 고민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한 풀어가는 이야기다.

나율 씨는 이 책을 읽은 한 독자로부터 ‘어린 시절 어쩌지 못하던 나의 어떤 한 부분을 용서할 수 있게 됐다. 고맙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책의 성과를 ‘성공적’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김나율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 ‘원의 마을’
김나율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 ‘원의 마을’ⓒ도서출판 차차

“왜 없었을까” 장애인 활동지원사를 시작하며 떠오른 물음표
같은 장소에서 모두가 어울려 사는 게 자연스러워질 아이들

나율 씨는 최근 두 번째 그림책 <원의 마을>을 출간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대를 그린 이 책은 ‘나에겐 왜 장애인 친구가 없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앞으로 그런 장애인 친구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현실의 어린이들을 위해 썼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원’과 그의 친구인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내용의 책이다. 두 사람이 특별한 걸 하진 않고 그냥 함께, 평범하게 논다. 눈을 감으면 언제든 자기만의 마을로, 자기만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원’을 지켜보는 ‘나’의 이야기를 담았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장소에서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고, 같은 사회를 살아갈 너무나 자연스러운 우리 미래의 이야기다. 곳곳에 잠재한 차별의 초석을 어린 시절부터 직접 허물고 모두와 어울려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어린이를 생각하며 나율 씨는 이 책을 썼다. “그런 사회를 준비하는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필요할 거라 생각했다.”

<원의 마을>을 내놓은 이후 나율 씨는 공격적인 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이 책이 모든 장애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없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개인마다 ‘정도’가 달라서 ‘원’이라는 캐릭터가 모든 발달장애인을 다 대변할 수 없는데 장애인 당사자나 누군가에게 자문을 받았냐’는 내용이다.

메시지 속 장애의 ‘정도’라는 표현과 장애인 캐릭터에 대한 ‘자문’을 받으란 요구에 나율 씨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불쾌한 감정”도 함께 일렁였다. 나율 씨는 고민 끝에 이렇게 답장을 전했다. “퀴어 그림책 <고민이 자라는 밤>을 만들 때 캐릭터가 모든 퀴어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의 마을>도 마찬가지다. 그냥 이야기 속 인물로 봐줬으면 좋겠다. ‘원’이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특징 중 ‘노래를 좋아한다’든가, ‘춤을 좋아한다’든가 이런 식의 많은 특징 중 발달장애가 있는 거다. 어디에도 자문받을 필요가 없다. ‘원’은 ‘원’일 뿐이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3주째 나율 씨의 답장을 읽지 않고 있다. 나율 씨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내가 자문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게 아니란 걸”이라고 꼬집었다.

<원의 마을>이 더욱 특별한 건 지난해부터 나율 씨가 겸직하고 있는 활동지원사 일을 통해 느낀 점을 녹였기 때문이다. 나율 씨는 현재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동생 장혜정 씨의 활동지원을 하고 있다. 혜정 씨는 중증발달장애를 가졌다. 나율 씨는 지난 2018년 두 자매와 친구가 됐고 지난해부터 혜정 씨의 활동지원사가 됐다.

나율 씨는 혜정 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장애인 친구가 없었던 게 이상하다”고 느꼈다.

“많은 장애인이 타의 혹은 자의로 장애인 거주 시설에 보내져 생의 많은 부분을 보내고 거기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사회와 격리돼 살고 있다. 학교에서 ‘장애인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육받는데 막연하게 잘해주고, 배려해주고, 양보해주라고 하지만 막상 이들을 만나 얘기 나눌 경험도 없었다. 사회에 아직 ‘직접적인 차별’이 존재하니 이들을 주변에서 많이 만날 수 없던 거다.”

나율 씨는 혜정 씨와 처음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 안절부절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다른 사람과 혜정 씨를 ‘똑같이’ 대하면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어떤 행동을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는 왜 이럴까’ 하는 자괴감에도 빠졌다가, ‘그런데 이게 내 탓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어린 시절부터 ‘장혜정 같은 친구’가 있었다면 나는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원의 마을>을 쓰게 됐다.”

김나율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 ‘고민이 자라는 밤’ 중
김나율 작가의 첫 번째 그림책 ‘고민이 자라는 밤’ 중ⓒ도서출판 차차

여가부 ‘나다움 그림책’ 회수로 느낀 독립출판사 필요성
“사회가 자꾸 ‘없는 존재’로 포장하는 걸 계속 조명하고 싶다”

나율 씨는 도서출판 ‘차차(옛 사월유니버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종이에 이야기를 그리는 것부터 이를 묶어 책으로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까지 나율 씨의 손을 거치지 않는 작업이 없다.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게 된 계기는 <고민이 자라는 밤>을 출간하려고 생각한 순간 ‘이걸 출판사에서 내줄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다. “문예창작과 출신이다 보니 출판사 투고의 과정을 지리멸렬하게 생각하고 있다. 대형 출판사에서 할 수 있는 건 ‘나도 다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해 스스로 1인 출판사를 먼저 차렸다. 그리고 이번에 다른 대표를 영입해 오며 공동대표가 됐다. 굳이 대형출판사로 갈 이유를 못 느꼈다.”

아울러 나율 씨는 지난 8월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논란이 된 여성가족부의 ‘나다움 어린이 책 교육문화사업’을 떠올렸다. 여가부에서 학생들이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나다움’을 찾도록 배포한 성교육 서적을 두고 국민의힘 측에서 “동성애 조장·미화”, “조기 성애화 내용”이라며 문제 삼았다. 해당 서적은 이미 덴마크·스웨덴·프랑스·호주·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1970년대부터 아동 성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여가부는 “일부 도서의 문화적 수용성 관련 논란이 있음을 감안한다”며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엄마 인권 선언>, <아빠 인권 선언>,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 등 7종의 ‘나다움’ 책을 결국 회수했다.

나율 씨는 아이들의 읽을거리를 검열한 여가부와 이에 강경하게 대처하지 않은 출판사 측을 비판했다. “그런 식으로 알 권리를 침해하는 시장인데 대형 출판사에서 내 책을 낸다고 ‘뭐가 다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직접 대응할 수 있는 게 좋다.”

나율 씨 마음속 1순위 독자층, 작가로서 집중하고 싶은 대상은 단연 ‘어린이’이다. 하지만 나율 씨의 책은 아직 어린이보단 어른 독자에게 더 읽힌다. 그는 “어린이한테 많이 읽히기 위해 책을 만들었는데 실제로는 어른들이 훨씬 많이 읽었다. 제 책을 읽었다는 아이들의 후기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며 아쉬워했다.

어린 시절 ‘고민거리’ 조차 정해준 폐쇄적 사회를 기억하며 나율 씨는 “지금 우리 옆에 있는데도 사회가 자꾸 ‘없는 것’처럼 포장하려고 하는 것들을 자꾸 조명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세상에서 ‘이상하다’고 단정한 것들, ‘평범하지 않다’고 규정한 것들의 기준도 결국 편견으로 점철된 것이기에 나율 씨는 아이들을 위한 ‘편견 없는 책’을 더 많이 만들고 싶은 마음이다.

나율 씨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걸 고민하는 게 그림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어린 시절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숨기는 거라고, 존재가 ‘지워지는’ 경험을 많이 당했다. 여태까지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존재들, ‘우리는 지금 평등하지 않다’고 말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어린이가 다치지 않도록 받쳐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더 ‘나다움’을 드러내고, 자신의 시간 동안 막힘없이 이렇게 해도 괜찮고, 저렇게 해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를 꿈꾼다.

“이렇게 해야 좋은 어린이, 저렇게 해야 착한 어린이가 아니라 그냥 ‘뭐든 해봐. 그래도 괜찮아’라고 얘기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퀴어 어린이가 ‘아, 이래도 괜찮구나’라고 느끼는 책, 비장애인 혹은 장애인 어린이가 읽었을 때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책, 혼자서 큰 고민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조금은 놓을 수 있게 되는 책을 쓰고 싶다.”

도서출판 ‘차차’ 김나율 공동대표가 2일 서울 마포구 합정 한 스터디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02
도서출판 ‘차차’ 김나율 공동대표가 2일 서울 마포구 합정 한 스터디카페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02ⓒ김철수 기자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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