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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돌봄노동이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

돌봄노동 : “다른 사람에게 의존을 해야 하는 환자나 노인, 어린이와 같은 사람을 돌보는 모든 활동을 이르는 말.” 이는 국립국어원 인터넷 사이트에서 돌봄노동을 검색하면 나오는 돌봄노동의 뜻이다. ‘돌봄노동’이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고, 오랫동안 가족 돌봄은 주로 어머니가 가족 내에서 하는 일로 생각됐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을 하는 경우에는 모성이 발휘되는 매우 숭고한 사랑처럼 인정하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으로 평가하는 반면, 동일한 행위가 노동자에 의해 노동으로 수행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저임금, 비숙련의 일로 간주된다(문현아, “글로벌 사회변화 속 젠더화된 돌봄노동의 이해”, 「돌봄노동자는 누가 돌봐주나?」, 한울아카데미, 2012, 47쪽).

이러한 아이러니는 산업화로 인해 가정과 공장, 집안일과 바깥일이 서로 대립되고 갈등하는 관계로 설정돼 온 상황과 관련이 있다. 즉, 산업사회 이전에는 일과 가족 영역이 미분화되어, 예컨대 미국의 경우 1840년대 초까지는 ‘housework(가사노동, 집안일)’이라는 단어가 없었을 정도로 가정 내의 일과 가정 밖의 일이 개념적으로 구분되지 않았었다(강이수, “노동시장의 변화와 일-가족 관계”, 「일・가족・젠더:한국의 산업화와 일-가족 딜레마」, 한울아카데미, 2009, 54쪽). 그러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정과 일터는 공간적으로 멀어졌다. 가정은 밖의 일터에서 일할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집단, 밖의 일터는 생산을 담당하는 성과와 성취의 집단으로 간주되고 분화됐다. 그리하여 집안일은 주로 그 일을 맡는 어머니를 칭송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 된다고 보거나 혹은 주로 중고령 여성노동자가 전담하는 저렴한 노동으로 전락했다. 돌봄노동은 오랫동안 아예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회원들이 어버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좋은 돌봄의 시작, 공공인프라 확충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요양시설 확충설치와 재정 확충을 촉구하고 있다.(2019.5.8.)
노인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회원들이 어버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좋은 돌봄의 시작, 공공인프라 확충 요구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요양시설 확충설치와 재정 확충을 촉구하고 있다.(2019.5.8.)ⓒ김철수 기자

돌봄노동자의 범주는 의료기관 간병노동자, 재가 간병노동자, 장애인 활동보조노동자, 아이돌봄노동자, 가사노동자 등 다양하다. 이들은 돌봄과 보호 없이는 생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거나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가정환경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돌봄노동이 멈추거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개인의 삶의 조건과 기반이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올해 초부터 전 지구를 덮친 코로나 19 사태는 돌봄노동의 공백이 얼마나 큰 어려움과 혼란을 야기하는지 알려줬다. 그간 보이지 않는 돌봄노동자들의 고된 노동 덕분에 이 사회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돌봄노동자들은 돌봄의 대상자들과 직접적인 대면 접촉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감염 위험 등을 이유로 코로나 19 상황에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되거나, 반대로 감염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로를 하는 등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돌봄노동자 처우 개선 등에 관한 본격적인 공식적 논의는 아직까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돌봄노동자를 대하는 현행법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선, 현행 근로기준법은 가사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사사용인’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의미하는지에 관해서는 규정이 없지만, 일반적으로 가사사용인이란 개인이 조리, 청소, 간병, 육아 등 가사를 돕게 할 목적으로 사용한 자를 말한다. 따라서 돌봄노동자들이 이에 해당될 수 있다. 이처럼 가사사용인을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하는 법조항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부터 있었다. 산업화 이전인 1950년대의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법 규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2011년 6월 16일 ILO 100차 총회에서 ‘가사노동자의 양질의 고용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면서 국내에서도 가사노동자 보호에 관한 법제 마련 논의가 본격화 됐고, 여러 차례 법안이 발의되었다. 21대 국회에서도 2020년 7월 13일 정부입법안인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을 비롯한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코로나19 환자 돌보다 숨진
77세 간병 노동자의 시급 4,200원
노동자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노동자의 비극
돌봄노동 멈추면 우리의 삶은 유지될까


개인이 사용하는 돌봄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되는 가사사용인에 해당되겠지만 사업체에 고용되어 일하는 돌봄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사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돌봄노동자라 하더라도 그들의 소속 기관 내지 소속 사업장과의 ‘사용종속성’이 문제된다. 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사용종속성’을 판단하기 위해 소속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사용자로부터 상당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일하고 있는지가 법적으로 다투어진다.

돌봄 업무의 지방자치단체 이관 반대와 전일제 근무를 요구하며 초등 돌봄 전담사들이 파업에 돌입한 6일 오후 경기도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텅 비어 있다. 2020.11.06.
돌봄 업무의 지방자치단체 이관 반대와 전일제 근무를 요구하며 초등 돌봄 전담사들이 파업에 돌입한 6일 오후 경기도 한 초등학교 돌봄교실이 텅 비어 있다. 2020.11.06.ⓒ뉴시스

돌봄노동자의 근로자성이 문제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이돌보미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여러 해 동안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데, 2019년 광주고등법원은 아이돌봄 지원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의 각 구청장이 관할 구역에 지정한 서비스제공기관을 통하여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였던 아이돌보미는 서비스제공기관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광주고등법원 2019. 6. 19. 선고 2018나23307 판결). 간병노동자들 역시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하여 노동법, 사회보험법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3월 코로나19에 걸린 환자를 돌보던 77세의 간병 노동자가 숨졌는데, 당시 환자를 돌보던 간병 노동자가 받은 시급은 4,200원에 불과했다. 노동법에서 배제되고, 제대로 된 사회적 평가도 받지 못하는 돌봄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비극적인 사례이다.

언젠가, ‘돌봄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나의 질문에 대해 어느 노동법학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돌봄노동자들이 모두 노동을 멈춘다면 그 가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평소에 가족 돌봄을 돌봄노동자들에게 맡기고 다른 노동을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을 포기하고 가족을 돌봐야 해서 잃게 되는 소득의 총액만큼을 돌봄노동 전체의 가치로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즉흥적인 답변이었지만 종종 생각하게 된다. 돌봄노동이 일시에 중단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어쩌면 이러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조금은 구체화된 것 같다.

이미 눈치 챈 분들도 있겠지만, 이 글의 제목은 과거 화물노동자들이 사용했던 ‘물류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라는 구호에서 착안한 것이다. 돌봄노동자들이 노동을 멈추어도 세상은 멈춘다. 아니, 단지 멈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간다운 생활은 제대로 유지될 수 없다. 지금, 돌봄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돌봄노동자에 대한 법적 대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재구성해야 하는 이유이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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