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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 엄마 신학자가 본 ‘성탄’의 의미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가 17세기에 그린 '목자의 경배'. 목자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스페인 화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가 17세기에 그린 '목자의 경배'. 목자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기타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 달이면서 성탄절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해마다 성탄절 시즌이 돌아올 때면, 온 세상은 마치 축제인 것처럼 들뜨며, 교회는 12월을 대림(待臨)기간(기독교에서 크리스마스 전 4주간 예수의 성탄과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교회력 기간)으로 지키면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곤 했다.

내가 학창시절에 맞이했던 성탄절은 비교적 즐거웠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를 연습했던 설렘과 소소한 기쁨, 어둡고 추운 새벽길에 불렀던 새벽송의 향기와 떡국의 맛, 그리고 성탄 이브에 가졌던 모임들이 그랬다. 하지만 결혼 후 경험한 성탄절의 양상은 많이 달랐다. 사역자로서,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성가대원으로서 맞이했던 성탄절은 여성에게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버거운 절기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올해 12월은 코로나19 확진자 수 증가로 수도권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에 돌입했다. 이 때문에 거리에 불이 꺼지고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 우울한 성탄절이 될 것이 예고된다. 성탄절에 교회에 모여 성탄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크리스마스 칸타타도 부를 수 없게 될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 코로나19가 오랫동안 지켜온 성탄절의 이미지와 관습도 바꿔놓는 것 같다. 그렇다 치더라도, 성탄은 모든 사람을 위한 구주가 나신 날이니, 그 자체로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닌가 싶다.

나는 성탄절 설교에서 마리아가 전하는 ‘성탄’의 증언보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는 메시아 예수의 ‘남성성’을 부각한다는 인상을 받곤 했다. 이는 아마도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왜 예수는 남성의 몸으로 오셨나에 대해, “남성이 더 강하고 완전하기 때문이며, 구속자의 역할은 여자의 위치로는 감당할 수 없다”라고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말이 성탄절에서조차 남성의 우월성을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한 것 같다는 추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예수의 구원 효력은 그가 ‘남성’으로 오셨다는 데에 있지 않고, 오히려 ‘남성의 개입이 전혀 없는’ 완전한 ‘인간’이라는 데 있지 않은가! 예수의 탄생에서 마리아의 수태의 신비 경험과 믿음에 기초한 출산의 증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성탄’은 그저 남성 중심의 이미지와 추상적인 의미들로 맴돌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내 경험에 의하면, 임신과 출산, 양육과 돌봄이라는 모든 여정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선 감당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해서 필자는 아기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엄마 신학자로서, 마리아가 전해준 성탄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예수의 탄생을 기쁨으로 전한 여성들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남녀 모두를 위한 메리 크리스마스를 생각해보려 한다.

성탄의 복음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증언으로부터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구원자 예수를 잉태한 당사자로서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성육신 탄생의 신비를 알린 최초의 증인이었다. 예수의 족보에서 ‘요셉’이 언급되긴 했어도, 그는 ‘마리아의 남편’으로 불릴 뿐이다(마 1:16).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된 ‘여자의 후손’임을 확증한다(창 3:15). 그렇기 때문에 성육신 탄생에 있어서, 엄마 마리아의 임신과 출산이라는 몸의 경험과 양육과 돌봄을 통한 아기 예수의 생애에 대한 증언을 부각해야 성탄의 의미를 잘 드러낼 수 있다.

생태해방신학자인 레오나르도 보프(Leonardo Boff)도 “성(性)은 인간 이성으로도 해독할 수 없는 인간 생명의 기본 에너지”라고 하면서, 성(性)이 생명의 신비에 관여함을 설명하였다. 해서 교회가 ‘성탄’을 말할 때, 임신하고 출산하는 여성의 경험을 단순히 성적 활동의 결과로만 볼 게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의 신비에 동참하는 사역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길 바란다.

네덜란드 화가 디에릭 보우츠(Dieric Bouts)가 그린 '수태고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임신했음을 알리는 천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
네덜란드 화가 디에릭 보우츠(Dieric Bouts)가 그린 '수태고지' 마리아에게 예수를 임신했음을 알리는 천사의 모습이 담겨 있다.ⓒ기타

최근에 초교파적인 연구팀에서는 누가복음에서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야 말로 남자와 여자 모두를 통틀어 하나의 이상적인 제자로서 묘사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열두 제자들이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서 증인이 된 것과는 달리,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리스도 복음사역의 개시부터 끝까지 즉, 성육신 탄생, 예수의 생애, 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 승천, 오순절 성령 강림 사역까지 온전한 증인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마리아 숭배사상’과 ‘마리아 무흠설’ 때문인지, 성탄절에서조차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언급하길 꺼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현대 신학자 한스 큉(Hans Kung)은 중세 가톨릭에서 독신 남성 성직자들에게 친밀감과 친절, 여성성과 모성을 경험하게 하는 ‘영적 보상’으로서 착안된 마리아의 왜곡적인 환상과 편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신약성경에 따르면, 마리아는 천상적 존재가 아니라 전적으로 한 인간이요. 기독교 믿음의 유일한 예요, 본보기이다. 누가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 앞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경험했던 마리아의 믿음은 오히려 예수의 역사를 경험하여 기독교 믿음의 길을 두드러지게 한 여성”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쁨으로 알린 여성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엘리사벳, 안나

마태복음 1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나오는 무수한 남성들의 이름 중에서, 다말, 라합, 룻, 우리아의 아내, 마리아 이렇게 다섯 명의 여성 이름이 나온다. 나는 이들 가운데 명예롭지 못한 신분을 소유한 이방인 여성들이 있음을 보면서,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다”라는 말씀이 생각났다. 족보에 열거된 이름을 통해 인종차별, 신분차별, 성차별의 벽을 허물고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부터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했던 여성들 즉,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사가랴의 아내요 아론의 자손인 엘리사벳, 그리고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인 선지자 안나를 소개한다.

예수의 성육신 탄생을 알리는 누가복음에서는 한 남자가 등장하면 곧바로 한 여자가 옆에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마리아와 요셉, 엘리사벳과 사가랴, 그리고 안나와 시므온이다. 그런데 눈여겨 볼 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제사장 사가랴와 마리아에게 수태 고지를 하지만, 사가랴는 이 일을 믿지 못하여 벙어리가 되는 반면에(눅 1:18-20), 마리아는 남자를 가까이해 본 적도 없이, 혼전 임신으로 비난과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26-38)라며 주체적이며 단호한 믿음의 순종을 보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마리아는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라고 하면서, 낮은 자를 높이시며 주린 자에게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눅 1:47-54). 고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업신여김을 당하던 특별한 집단에 여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감안해 볼 때(독일성서 공회해설), 마리아의 이 고백은 예수의 탄생의 목적을 제일 먼저 알아차린 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독일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16세기에 그린 십자가 처형 모습. 가운데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있고, 왼쪽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오른쪽은 요셉이 있다.
독일화가 마티아스 그뤼네발트가 16세기에 그린 십자가 처형 모습. 가운데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있고, 왼쪽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오른쪽은 요셉이 있다.ⓒ기타

또한,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도 마리아의 문안을 받자 “태중의 아이가 복이 있으며,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다”(눅 1:39-45)라는 축복과 예언을 할 정도로 성령 충만한 여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아울러 과부가 된 뒤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에 힘썼던 바누엘의 딸 안나 역시 아기 예수를 보자마자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예언할 정도로, 예수의 탄생을 기뻐한 성령 충만한 선지자다(눅 2:36-38).

이처럼 복음서는 여성이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에도, 예수의 탄생에 동참한 여성들의 주체적이며 성령 충만한 믿음의 행위를 삭제하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누가복음의 이런 진술이야말로 여성들에게 있어 성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좀 더 생생하게 들려주는 복음이 아니겠는가!

남녀 모두에게 기쁜 성탄이 되도록

마리아의 예수 잉태와 출산, 그리고 양육은 그리스도 복음 사역의 개시를 알리며, 예수의 인간성을 증언하는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예수의 탄생에서 여성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사역과 구원사역에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개입하였다. 남자 없이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를 출산한 마리아의 믿음의 행위는 예수 탄생의 신비를 단독적으로 증언하였고, 마리아가 부른 ‘마리아의 찬가’는 낮고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러 오신 예수 탄생의 의미와 목적을 제일 먼저 계시해주었다(눅 1:46-55).

해서 나는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을 알리는 예수의 성육신 탄생을 기점으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남자의 후손을 잇기 위한 도구’라는 유대 가부장 사회의 여성에 대한 왜곡과 평가절하의 공간이 허물어졌다고 본다. 아울러 성(性)은 더 이상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구원과 생명의 탄생을 위한 창조 본래의 선물임이 확증되었다고 본다.

이로써 마리아가 증언한 성육신 탄생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성적 자유와 동등한 존엄을 선사하는 기쁨의 복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낮은 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평화가 임한다는 것을 알려준 전복적인 복음인 것이다. 비록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성탄절에 함께 모여 찬양할 순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과 눈이 낮은 곳에 머문다면 그곳에서 성탄의 기쁨과 임마누엘의 평화가 충만해지리라 믿는다. 메리 크리스마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강호숙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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