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건강한 노동이야기] 내 일상이 누군가의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기를

2년 전 한동안 안전보건 관련 해외뉴스를 골라 번역·정리하여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 일터>에 싣는 일을 했다. 당시 봤던 기사 중 그 해 미국의 시민단체에서 꼽은 ‘Dirty Dozen’으로 아마존과 테슬라가 포함되었다는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 안전보건 관련 시민단체에서 해마다 하는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처럼, ‘Dirty Dozen’은 노동자가 사망했거나 안전보건 관리에 문제가 있는 기업들을 꼽는 목록인듯 했다. 테슬라는 자동차 제조회사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유통회사인 아마존이 꼽힌 것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당시 기사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았다.

최근 식료품 새벽배송으로 알려진 모 업체의 물류센터에서 일한 누군가가 SNS에 올린 글이 수백차례 공유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글쓴이는 어떤 업무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안전화와 안전모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지게차 운전원조차 안전화, 안전모 없이 일하더라고 전했다. 바로 머리 위 높이의 컨테이너 레일에 무거운 플라스틱 박스들이 계속 움직이는데 누군가 박스를 잘못 쌓아서 머리 위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탄식했다. 짧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또 동종업계 경쟁사는 급식을 제공하고 물을 자유롭게 마시도록 해주는데 이 회사는 그런 게 없다고도 비판했다.

그 글을 보며 이상하게도 고액의 출연료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유명 배우가 등장하는 해당 회사 광고가 떠올랐다.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이미지 너머엔 이런 위험천만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구나 싶었다.

아마존 로고 (자료사진)
아마존 로고 (자료사진)ⓒ뉴시스

그 글을 보니 2년전 무심히 넘긴 아마존 ‘Dirty Dozen’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 뒤늦게 인터넷 검색창에 ‘아마존 노동자 안전’ 등을 입력해보았다. 올해 5월 아마존 노동자들 중 코로나19로 인한 일곱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는 기사, 아마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는데 누군가에 의해 발견될 때까지 20분 걸렸고 결국 사망했다는 기사, 노동자가 지게차 충돌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아마존의 과실과 법 위반 사항에 대해 벌금이 부과됐는데 항소했다는 기사, 처벌(punishment)을 우려하는 노동자들이 근무 중 빈 병에 소변을 본다는 기사까지 나왔다.

이 모든 게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뜬 기사들을 훑어보며 알게 된 내용이다. 그제서야 아마존이 왜 ‘Dirty Dozen’에 꼽혔는지 알 것 같았다. 그걸 보니 내가 종종 이용하는 업체의 물류센터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동네 마트나 시장보다 인터넷 쇼핑이라는 ‘쉽고 편리한’ 방식에 익숙해져 일상적으로 이용하면서도 정작 그 물건들이 출발하는 물류센터라는 곳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상해본 적이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검색해보면 없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은 그 회사의 수많은 취급 제품들을 운반하고 규칙에 따라 분류·진열하며, 내가 주문한 물건들을 골라내 파손되지 않게 포장하고 상자에 담는 일을 ‘사람’들이 하고 있다는 것을, 물건을 고르고 클릭, 클릭하면서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어떤 위험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을지를 생각해보며 연결짓기란 더욱 어렵다.

물류센터 (자료사진).
물류센터 (자료사진).ⓒ정의철 기자

누군가 SNS에 올린 글을 본 후, 아마존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는 간단한 수고를 들이고 나서야, 갖가지 물건으로 가득찬 거대한 물류센터 진열대 사이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사소해보이는 일상의 모든 이면에는 누군가의 노동이 있다는 것, 반대로 나의 노동 역시 누군가의 일상을 떠받치는 요소 중 하나라는 것. 그런 식으로 수많은 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곧잘 잊는다. 누군가 일하다 다치거나 죽을 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또 다른 이들의 일상이 유지된다는 것을 늘 떠올려야 한다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괴로울까. 포장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올까봐 인터넷 주문을 망설이는 일은 있더라도, 나의 사소한 일상이 누군가의 위험 감수를 조금 더 늘리는 일이 아닐까 걱정되어 뭔가를 주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 글을 마무리하기에 앞서, 정기국회에 이어 임시국회가 이어지는 상황상 도저히 덧붙이지 않을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좀 더 안전하고 평온한 일상을 보내게 하는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확실히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시민 10만명의 청원을 담아 국회로 간 그 법이 모두에게 기쁜 연말 선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세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직업환경의학 전문의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