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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의 마음산책] 우리는 무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라는 유명한 수필 구절이 무색하게도 우리 사회 청년들은 청춘을 지난 사람들이 전 재산을 주고라도 얻고 싶어 하는 이 시기에 먹고사는 문제의 어려움으로 시들어가고 있다. 생기발랄할 나이에 일자리와 돈 문제로 시름 젖어 있는 이 시대 청춘은 결코 가슴 설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부는 커지고 기술은 최첨단을 달리지만 청년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풍요는 나눠지지 않고 갈수록 생존이 힘들어지고 있다. 경제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이 먼저 나누자 할 리 없고, 선거 때면 흙수저들의 꿈을 이뤄줄 것처럼 표를 거둬가는 정치인들 또한 이런 문제해결에 관심과 능력 둘 다가 없어 보인다. 정치, 경제 분야에서 근본적 해결을 외면한 채 땜질 처방이나 하니 빈익빈 부익부는 위험 수위에 다다르게 되었다.

설상가상 코로나까지 덮쳐 일해서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나 영세 상공인들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러나 한 편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은 폭죽을 터뜨리며 자산 없는 사람들을 더욱 심한 박탈감에 빠트리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가난한 사람들인 청년들이 있다. 청년들 자체가 가난한 계층을 상징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흙수저 청년들의 스트레스는 어느 세대에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평등한 세상이 두려운 기득권자들이 지식인을 내세워 문제의 가난의 원인을 모호하게 만들고 해결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데 여기에 쉽게 넘어가고 있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아무리 학력이 올라가고 전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된 정보화 시대에도 자본을 가진 자들만이 자유로운 원시적인 사회를, 모든 인간이 생존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문명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아직도 미신 취급을 받고 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발견되는 불평등, 불공평의 문제는 분노를 잠시 자극하지만 결국 무력감을 더 크게 자극한다. 어지간해야 덤벼볼 마음을 가질 텐데 상대는 커도 너무 크고 자신은 너무 작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개인은 열심히 사는데도 이상하게 가난해지는 원인을 직시하지 못하고 체제의 당위성을 의심하지 못하니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길을 찾지 못한 개인은 지치고 무력감에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선택할 새도 없이 태어나니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젊은이ⓒ민중의소리

사람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보편적인 바람인 기본욕구를 채우기 힘든 세상이니 정신건강이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안전하게 생존하고 인정과 존중을 추구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이런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 구조의 토대는 위에 이야기한대로 돈이 중심이지 사람이 중심이 아닌 곳이다 보니 돈이 없는 사람들은 이런 기본 적인 욕구가 너무나 쉽게 좌절되어 정신건강을 만성적으로 위협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기본적인 삶의 욕구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의 행복추구는 가능한 건가. 애시 당초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 건가. 상황은 이렇지만 행복은 내면에서 느끼는 심리적 상태이기에 이런 현실과 무관하게 마음만 잘 관리하면 달성될 수 있는 건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끝없이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생존과 안전의 문제를 위협받는 대다수 사람들은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은 자주적 존재로 자신을 위협하는 환경에 맞서 자신을 위해 환경을 개조하는 삶의 주인으로 창조하는 삶을 살 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이 상황을 누가 만들었고 누가 이런 상황에서 이득과 피해를 보고 있고 누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를 직면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라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 사회적으로 세뇌된 비주체성, 의존성을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21세기가 되어도 기다리던 여유로운 삶은커녕 더 살기 빡빡해지는 이 세상을 누가 구원할 수 있는지 냉정하게 살펴보면 답은 뻔하다. 가난의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이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론으로도 그렇고 경험을 봐도 그렇다.

시작은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화이후 태어나 무한경쟁을 강요받으며 연대와 단결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인 청년들이 집단의 힘을 경험하고 건강한 공동체의 든든함을 체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볼 수 있다. 관심 주제별 소집단, 소모임을 만들어 책도 읽고 관심주제를 토론하고 밥을 나누는 경험도 좋다, 어떤 주제가 되었건 과정에서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소통하는 법, 사람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자신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배우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면서 평등한 존재로서의 자존감을 되찾고 현안을 해결하는 길을 논의하고 상상하고 실천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청운동주민센터부터 서울역사박물관까지 피켓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br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청운동주민센터부터 서울역사박물관까지 피켓을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더 나아가 많은 문제는 최종 정치영역에서 결단되는 것이기에 정치적 안목을 키우면서 노조나 정당 가입, 그 외 단체 활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목소리를 모아내는 것도 중요하다. 어려우면 후원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다. 물론 돈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정작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단체에 소액의 후원금을 내는 정도의 참여도 하지 않으면서 주문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앞장서는 사람들을 뒤에서 돕는 활동도 소중하다.

지금껏 정치는 소수의 특정 관심자만 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영역이고 이를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도 있지만 이제는 청년민초들이 나서서 자신들을 위한 사회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치세력으로의 진화를 결심해야 할 때다. 청년이 언어로만,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로 나서야 세상은 달라진다.

코로나 이후 어떻게 달라질지 모를 세상에 대한 다양한 예측을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건 이대로 방치하면 없는 사람들의 살림살이는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다시 눈을 감고 잘 때까지 수시로 일어나는 생존과 안전하지 못한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며 무너지는 자존심과 분노, 이를 타개할 힘이 없다며 좌절하고 무력해하는 레 미제라블(불어로 비참한 사람들)로 남을 것인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나설 것인가.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신미영 열린학교상담아카데미 상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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