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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안녕! 2020년

2020년 끝이 보입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흘러가도 되는 것일까?’하는 말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저무는 한 해의 끝에 서면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더구나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세상에 맞춰가야 하다 보니 올해는 더욱 정신없이 흘렀습니다. 그림으로 한 해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붉은 참나무 숲 Lowell B. Harrison Red Oaks onc 48.3x61
붉은 참나무 숲 Lowell B. Harrison Red Oaks onc 48.3x61ⓒ개인소장

미국 화가 로웰 해리슨의 ‘붉은 참나무 숲’이라는 작품입니다. 지는 해가 참나무 숲에 걸렸고 마차바퀴와 발걸음의 흔적들은 숲 앞으로 뻗은 길을 따라 멀어지고 있습니다.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간 발자국이 보입니다. 길을 잃지 않을 자신만 있으면 혼자 숲으로 들어 가 보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이지만 그것은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문득 올 한 해 어떤 숲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길을 잃고 얼마나 우왕좌왕했었는지 기억이 납니다. 눈이 녹으면 어지러웠던 흔적들은 사라지겠지만, 그렇다고 마음의 흔적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것들이 모여 삶의 지층이 되는 것이니까 후회할 일은 아닙니다.

죄수 The Prisoner 1878 oil on canvas 143.1cm x 107.6cm
죄수 The Prisoner 1878 oil on canvas 143.1cm x 107.6cmⓒTretyakov Gallery, Russia

머리 위에서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창가에 매달리다시피 서 있는 사내는 그 빛을 향해 석상처럼 굳었습니다. 남자의 등 뒤로 길게 뻗은 그림자는 방 안의 어둠에 묻혔습니다. 남자의 어깨에 내려앉은 간절함과 체념이 보입니다.

러시아의 화가 니콜라이 야로센코는 ‘죄수’라는 작품을 통해 갇힌 사람들의 막막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막함은 세상과 단절되었을 때 찾아오는 것이지요. 감옥이 무서운 이유는 몸과 마음이 함께 갇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딘가에도 저렇게 우두커니 서서 손바닥만한 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우리 가운데에도 등 뒤에 긴 어둠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어둠이 엷어지는 세상, 모두가 꿈꿀 만한 세상 아닌가요?

바람 Vasily Polenov Dreams  1894 onc 151x142
바람 Vasily Polenov Dreams 1894 onc 151x142ⓒSaratov Art Museum Russia

호숫가 바위에 앉은 젊은 사내는 말이 없습니다. 물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건너다보이는 광야에서 40일을 보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이르렀지만, 그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멀고 험한 일이 될지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숨을 고르고 있는 그림 속 젊은이는 30대 중반의 나이로 사형을 당합니다.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폴레노프는 ‘바람’이라는 작품에서 그런 세상은 아직 오직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림 속 젊은이의 바람은 그 후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바위 위에 젊은이는 오늘도 저렇게 앉아서 세상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쯤 훌훌 털어 버리고 크게 웃으며 저잣거리로 내려올 수 있을까요?

겨울 일출 Ivan Choultse   Winter Sunrise  onc  64.8 x 81
겨울 일출 Ivan Choultse Winter Sunrise onc 64.8 x 81ⓒ기타

긴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기 시작했습니다. 간밤에 내린 눈은 땅 위의 것들을 덮었고 이제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노랗게 변하는 하늘을 향해 쌓인 눈 무게로 가지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이 경건하게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러시아 화가 이반 초울체는 ‘겨울 일출’에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추운 밤이 끝날 것 같지 않았지만, 아침 해가 떠오르고 겨울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겨울은 모든 것을 비우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음 시간에 대한 희망이 가장 많이 쌓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 해의 끝과 시작이 함께 있는 겨울이 고맙습니다.

새해에 세웠던 날 선 각오와 새파란 다짐이 무뎌지고 색이 바랬지만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늘 각오와 다짐이 필요합니다.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잊히지 않을 2020년 달력을 접고 2021년 다이어리를 꺼냅니다.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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