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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의 경제비평] 다시 소득주도성장의 성공을 위해

필자가 올해 4월 [민중의소리]에 쓴 첫 칼럼의 제목은 ‘코로나19 위기와 소득주도성장’이었다. 당시 독자들 중에는 ‘언제 적 소주성이냐’, ‘아직도 소주성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나’ 하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계셨을 법하다. 코로나19 경제위기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반응이 그때보다 더 늘어나 있을 듯싶다. 이제 현실 정책으로서의 소득주도성장은 당장 정부조차 언급을 피하고 싶어 하는 애물단지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거창했던 이름 붙이기에 비하면 초라했던 정책적 실천은 처음에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했던 이들에게 거듭된 실망으로 남았을 수 있다. 임금주도성장의 대안 경제이론을 업(業)으로 삼은 연구자에게는 오늘의 이와 같은 현실이 참담하게 다가온다.

2018년과 2019년의 분배 개선에 기여한 소득주도성장 정책

그런 가운데 이번 경제위기 전까지의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평가하는 데 필수적인 중요한 데이터가 지난주에 공개되었다. 작년 2019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가계의 재산과 빚, 벌이와 씀씀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가 그것이다. 정부는 집권 후 최저임금 인상, 고용장려금 확대, 실업수당과 기초연금의 증액, 아동수당 도입, 상급종합병원과 중증 질환 중심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의 정책을 점진적으로 추진해 분배 개선에 나섰다. 그에 힘입어 적어도 2019년까지 우리 사회의 분배 지표는 조금씩 개선되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에 의한 소득 재분배가 고려된 가처분소득 기준으로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더디게나마 가구별 소득의 불평등 완화 흐름이 뚜렷했다. 예를 들어 소득이 불균등할수록 1에 가깝고 균등할수록 0에 가깝게 계산되는 지니 계수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0.345, 0.339의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6년에는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소득을 6.98배 더 벌어들였지만 2018년에는 그 배수가 6.54배, 2019년에는 6.25배로 작아졌다. 전체 가구별 소득 중간 값의 절반에 해당하는 ‘상대적 빈곤선’에 소득이 못 미치는 비율도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16.7%, 16.3%까지 낮아졌다.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
2020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통계청

분배의 개선을 구조적인 흐름으로 안착시키는 정책 노력이 중요하다
결국 정치가 장기적인 경제구조 변화의 성패를 결정할 것

이 결과를 두고 혹자는 분배는 개선되었더라도 성장이 부진했으므로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했지 않은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임금주도성장의 성과를 정책 시행 후 몇 년간의 단기적인 경제성장률을 기준으로 가늠하는 것은 최근까지의 학계 연구 결과를 참고할 때 정당한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2018년 6월 서울에서 열렸던 정책 컨퍼런스에 우리 정부가 연사로 초청하기도 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블레커 교수가 2016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임금주도성장을 위한 정책은 단기와 장기에 그 효과가 같지 않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수익성을 떨어뜨릴 수 있고 수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민간소비의 확대를 통해 경제성장에 궁극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발표된 또 다른 저자들의 연구에서도 미국, 영국, 프랑스의 백여 년에 걸친 시계열 자료 분석 결과로 유사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국민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의 상대적인 비중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좋아질 때 하락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보다 훨씬 긴 기간, 이를테면 16년 이상의 장기 사이클을 보면 오히려 노동소득분배율이 오를수록 경제성장이 촉진되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장기에 걸친 경제의 체질 변화에 성공할 수 있느냐로 그 성과를 판단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구조의 변화를 위해서는 일시적인 성장 지표의 변화에 좌우되지 말고 분배 개선을 위한 정책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유지하고 확대해가는 것이 맞다. 분배의 개선이 구조적인 흐름으로 경제 내에 자리를 잡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소득주도성장의 성패는 결국 분배 의제를 굳건하게 밀고 나아갈 수 있는 진보정치의 역량에 달려있다고 볼 일이다. 장기적으로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는 정치 주체와 지지 기반의 형성은 그래서 중요하다.

굴절되고 비틀린 정책 현실

비록 2019년까지 분배 지표를 개선시키기는 했으나 실제로는 소득주도성장의 그간의 정책 현실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실천은 대개 당초 약속과 기대에 못 미쳤다. 대표적으로 ‘줬다 뺏는 기초연금’부터 그렇다. 국회의 의결 없이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5조의 소득 범위만 개정해도 되고 공제율 방식을 적용해도 되며 그것도 아니면 부가급여를 지급할 수도 있는 사안인데 시민사회의 반복되는 이의제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방치해왔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중위소득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역사상 최저 수준의 증가율에 그쳤다. 의료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재산의 소득 환산액 제도는 폐지 계획이 없다. 도덕적 해이와 중복 수급을 방지한다는 명목의 다양하고 복잡한 삭감 규정으로 사각지대가 방치되는 가운데 최근에도 방배동 모자의 비극이 있었다.

정부가 줬다 뺏은 것은 기초연금만이 아니었다. 정부는 2018년 5월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산입범위를 확대해 최저임금도 줬다 뺐었다. 2019년 2월에는 노동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하려고 시도했다. 정부는 2020년과 2021년의 최저임금 결정과 관련해서는 인상 최소화에 누구보다도 앞장섰다. 2019년 12월에는 연장근로와 야간근로에 대한 수당은 최저임금에 미달해도 된다고 행정해석을 변경하기까지 했다. 소득주도성장을 추진한다던 정부 스스로 소득주도성장을 무력화시켜온 셈이었다. 정책의 부작용이라는 확인되지 않는 허상을 만들어 정치적 반격에 나선 보수 진영이 국면 전환에 성공하면서 깃발은 내려졌다. 이후 그 공백은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주도하는 보수적인 미세조정으로 채워졌다. 최근에는 코에 귀걸이를 억지로 걸 듯 본령에는 가 닿지 못하고 지엽적인 것에 치우치는 식으로 ‘그린 리모델링도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부의 견강부회까지 들려온다.

왜 이렇게 우리의 소득주도성장은 굴절되고 비틀릴 수밖에 없었는가. 경제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임금주도성장을 2012년에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국제노동기구(ILO)를 통해 세계경제 회복의 대안 패러다임으로 제시했을 때 그들은 대체로 복지국가의 기초가 완성된 서구 사회의 노동계급 정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임금’주도성장은 노동조합을 정치적 주체로서 호명하는 새로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그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어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정책의 대상만 있었을 뿐이다. 정부가 형식적으로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을 취하고 실질적으로는 사용자들의 요구에 굴복해 민주노조운동과 갈등하면서 한국의 소득주도성장은 정책을 장기적으로 뒷받침할 주체 형성에 실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12.14.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0.12.14.ⓒ뉴시스

관료와 전문가 중심의 소득주도성장은 결국 동력을 잃을 것

장기적으로 분배를 개선해 경제의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는 어떤 기획도 정책을 책임지고 뒷받침할 정치적 주체를 확립하고 이에 기초하여 다수자 연합을 구성하는 데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어떤 기발한 경제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마술처럼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경제구조를 바꾸는 것은 결국 정치의 문제일 터이기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고 왜 다르겠는가. 애초부터 소득주도성장은 은혜로운 기술 관료와 정책 전문가가 가난한 민중을 위해 마련해준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볼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분배 개선을 도모함에 있어서는, 앞으로 장차 어떤 사람들과 어떤 사회 세력이 그것의 정치 주체이자 핵심 동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겠는가. 필자는 믿는다. 우리 사회에서 분배 개선이 되돌릴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이 똑바로 제 갈 길을 가면서 장기적으로 경제의 체질과 구조를 변화시키는 데에 성공하려면, 그것은 반드시 아래로부터의 민주노조운동의 지지에 근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 주체를 세워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조직 노동과 경제적 취약계층 사이의 다수자 연합을 진보정치가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얼마 남지 않은 동력마저 곧 꺼질 것이고 소득주도성장의 기획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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