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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노동자들은 왜 휴게시간에 제대로 쉬지를 못하나?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해고된 미화노동자를 따라 그 아파트 미화노동자들의 휴게시설에 간 적이 있다. 그곳은 아파트 지하였고, 천장은 높았고 모든 배관들이 보였고, 내장재가 전혀 없이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곳이었다. 미화노동자들은 그곳에 매트 같은 것을 깔아놓고 쉬고 있었다. 약간 있는 세간은 그곳의 쓸쓸함을 더해 주었다. 내가 보기엔 지하주차장보다 더 열악한 곳이었다. 입주민의 자동차들이 휴식을 취하는 지하주차장은 밝고 페인트칠이라도 되어 있고, 심지어는 비상구도 표시되어 있는 등 공간 정비가 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경비 노동자들에겐 그런 지하 휴게시설조차 없었다. 그러니 휴게시간을 보장받기가 더 어려웠다. 이들은 휴게시간에 쉬지 못하고 일한 임금을 달라고 법원에 소장을 내거나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그럴때마다 돌아온 답은 당신이 휴게시간을 사용했다는 확인서를 썼고, 휴게시간을 꼭 휴게시설에서 보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경비초소에서도 충분히 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 사용자는 휴게시간에 근무 지시를 한 적이 없으니 그 시간에 대한 임금을 줄 이유도 없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근로계약서에 휴게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 시간에 제대로 쉬었으면 되는 일인데 왜 쉬지 않았냐는 것이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경비초소 내 경비노동자 휴게공간의 비좁고 열악한 모습. 2020.5.12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경비초소 내 경비노동자 휴게공간의 비좁고 열악한 모습. 2020.5.12ⓒ뉴스1

휴게시간을 사용했다는 확인서는 해마다 근로계약을 맺을 때, 근로계약서와 함께 서명을 했던 것이었다. 서명을 안 하면 사측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쫓아낼까봐 두려워하며 서명한 서류였다.

휴게시설이 없어 경비초소에 그냥 있으면, 아파트 입주민들이 찾아와 이런 저런 민원을 제기한다. 그러면 응대해야 한다. 쉬는 시간이라고 응대하지 않으면, 입주민들이 관리사무소에 항의하기도 한다. 계약직으로 3개월마다, 6개월마다, 1년마다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비노동자들. 그래서 이들이 입주민의 항의를 신경쓰지 않기는 어렵다.

그뿐 아니다. 중간중간 오는 택배도 받아야 하며, 입주민이 오면 보관하던 택배도 전달해야 한다. 만약 ‘나는 쉬는 시간이니 택배를 받을 수 없다’고 하면, 역시나 휴게시간 없이 배송업무에 쫓기는 택배노동자와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도 법원과 노동청은 휴게시간에 쉬지 않은 건 노동자들이니, 그 책임을 사용자가 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이런 법원과 노동청의 답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관계에 있다고 볼 때 가능한 것이다. 실제로는 휴게시간에 업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 때문에 재계약을 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노동자가 온전하게 휴게시간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휴게시간을 부여할 때, 시간만을 알려주고 실제로 쉴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을 휴게시간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파트 경비실(자료 사진)
아파트 경비실(자료 사진)ⓒ사진 = 뉴시스

사용자들은 경비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 상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 위해, 법 적용 예외가 되는 ‘감시 근로자’ 승인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받으려 한다. 그런데 이 때는 대기 시간에 노동자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수면 또는 휴게시설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 경비노동자의 뇌심혈관 질환에 대해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정할 때 휴게시설이 따로 있고, 잘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계약과 관계없이 노동시간으로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을 보이는 것은 실제 휴게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환경에서 경비노동자들이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했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은 경비 노동자들이 근로 제공의 의무가 없는 휴게시간에도 일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이를 명백히 거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입주민들에겐 편의가 제공되고, 용역업체는 용역계약을 연장하는 이익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휴게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책임은 사용자에게 있어야 한다.

비단 경비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근로시간이나 대기시간에 가까운 휴게시간을 보내고 있다. 관련 법률 개정이나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 제시를 통해 사용자의 휴게시간 부여 책임과 휴게시간 부여 내용과 방법에 대해 좀더 세심한 지도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유선경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공인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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