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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기억과 공간] 양재시민의숲과 ‘일상의 추념’

코로나19가 대유행을 넘어 재앙 수준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달입니다. 1천명 넘게 신규 확진자가 발생한 것은 어디에도 가지 말고 집에만 머물러야 할 것만 같은 공포를 줍니다. 이달에 예정되어 있던 공간 방문을 방구석 여행으로 대체해야 하지 않을까 여러 날 고민하던 끝에, 지난달에 이어 외부 공간인 ‘일상의 추념’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위기감과 공포가 감도는 이 시기,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알맞게 야외에서 잠시 산책할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양재시민의숲’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숲 개념을 도입한 공원입니다. 정부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준비하며 양재 톨게이트 주변 환경을 개선할 목적으로 공원조성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1983년 공사를 시작해 1986년 11월 완공하고 숲을 시민에게 개방했습니다. 벌써 30년 이상 시간이 흐른 까닭에, 현재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울 양재 시민의 숲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서울 양재 시민의 숲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사진 = 뉴스1

1988년 12월엔 공원 북측 구역에 매헌 윤봉길의사기념관이 문을 열어 이 공원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는 범죄예방환경설계(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 1호 근린공원으로 선정돼, 1년에 걸쳐 시민이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안전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했습다.

매헌로를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울창한 숲이 있어 많은 시민이 찾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과 동상 및 숭모비가 있고,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야외예식장, 야외공연장, 운동장 등이 있습니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사진 = 김명식
위에서부터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삼풍참사 위령탑
위에서부터 유격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기 버마상공 피폭 희생자 위령탑, 삼풍참사 위령탑ⓒ사진 = 김명식

매헌로 남쪽으로는 여러 추모비, 위령탑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6·25전쟁 당시 비정규군 전투부대로 참전해 희생된 이의 넋을 기리는 유격 백마부대 충혼탑(1992), 1987년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된 대한항공 858편의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위령탑(1990),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희생자의 넋과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위령탑(1998)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세워진 ‘일상의 추념’(2018)도 이곳에 자리해 있습니다.

20세기 말의 비극적인 참사에 대한 위로와 추모의 형태화를 잘 보여주는 세 개의 추모시설을 돌아보고 나면, 21세기 초 새로운 시각언어의 형태로 아픈 과거를 표현하는 추모시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 '일상의 추념'
우면산 산사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조형물 '일상의 추념'ⓒ사진 = 김명식

‘일상의 추념’은 공원 한 켠 숲 사이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총 면적 190㎡ 안에, 가로 2.35m, 세로 1.35m의 검은색 사각바닥이 놓여있고, 그 위에 15개의 사각 대리석 기둥이 각각 1.6m ~2.5m 높이로 서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예전에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에 관해 기술할 때 인용한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의 말을 연상하게 합니다.

“문명의 파괴를 예술이라는 수단으로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것의 상징적인 표현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 시각예술이라는 도구, 다시 말해서 현대예술의 추상적인 형태 언어를 능가할 만한 매개체가 없습니다. 그것의 불안정한 자기 충족은 오해와 진부함을 경계하는 데 그 어떤 것보다 나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패악적 행태나 그로 인한 참혹한 죽음과 사건들을 어떻게 아름다움의 언어를 사용하는 예술의 영역에서 구현해 낼 수가 있겠습니까.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내에 조형물 ‘추방의 정원(Garden of Exile)’에서도 이 같은 흐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추방의 정원’은 가로, 세로로 일곱 개씩 배열한 콘크리트 기둥 위에 식물들(Russian olive bushes)이 심겨져 있습니다. 절망의 유대민족을 상징하는, 그야말로 땅에서 유배된 또는 추방된 이들의 정원인 것이지요.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내에 위치한 조형물 ‘추방의 정원(Garden of Exile)’
독일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Jewish Museum Berlin) 내에 위치한 조형물 ‘추방의 정원(Garden of Exile)’ⓒ사진 = Jewish Museum Berlin

다시 ‘일상의 추념’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근사한 조각 같은 이 추모시설은 하얀 대리석 사각 기둥 15개를 3열로 배열하고 윗면을 거칠게 표현하였습니다. 마치 산사태의 불안정성과 그 결과 무너져 표출된 산의 거친 면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은, 당시 참사의 과정과 사태(沙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011년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우면산 일대 산사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 건축가와 유족이 모여 여러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는 과정을 거쳤다니,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족의 슬픔을 나누기었을 것이기에 더 뜻 깊은 조형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추념’의 경사지고 거친 윗면(왼쪽)과 엄격히 규정된 측면(오른쪽)
‘일상의 추념’의 경사지고 거친 윗면(왼쪽)과 엄격히 규정된 측면(오른쪽)ⓒ사진 = 김명식

‘일상의 추념’ 은 이렇게 집합적인 기억과 염원을 정적인 사각의 공간과 정갈히 다듬어 세운 백색의 선돌에 담아 상징적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주변의 추모시설들과 다른, 21세기형 추모를 위한 새로운 형상으로 세워졌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든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 조형물은 상징적이고 예술적인 형상을 가진 기념비로서, 이전의 추모비들과 다르게 주변 공간 전체를 일상의 추모공간으로 만듭니다. 이는 공적 공간이며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는 국내에 몇 안되는 흥미로운 공간입니다. 위로와 추모를 다루는 기념비가 더 이상 장송곡과 미사의 느낌이 아닌 추모시로 다가오게 하는 이곳, ‘일상의 추념’은 오래도록 우리의, 여러분의 시선을 이끌 것입니다.

서울 양재시민의 숲 한 켠에 세워진 우면산 산사태 참사 추모 조형물 '일상의 추념'. 설계는 드로잉웍스
서울 양재시민의 숲 한 켠에 세워진 우면산 산사태 참사 추모 조형물 '일상의 추념'. 설계는 드로잉웍스ⓒ사진 = 이한울, 나르실리온 포토그래피

김명식 건축가·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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