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귀국 앞둔 이주노동자, 한파 비닐하우스 숙소서 숨졌다
비닐하우스 자료사진
비닐하우스 자료사진ⓒ뉴시스

귀국을 앞둔 이주노동자가 한파 추위 속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졌다.

이에 사업주가 안전하지 않은 임시가옥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상황을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켜만 보다가 결국 사망사고까지 발생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아울러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사업장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 없는 고용허가제도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지난 23일 ‘농업이주여성노동자 사망사건대책위원회’(가칭)에 따르면, 경기도 포천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지난 20일 캄보디아 국적 이주노동자 A 씨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이틀 전인 18일은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이었다.

대책위는 A 씨의 사망원인으로 동사(저체온증)를 지목했다. 대책위는 “함께 근무한 4명의 동료에 의하면 포천 지역이 영하 18.6도까지 떨어져 한파 경보가 내려진 지난 18일부터 비닐하우스 숙소에 전기와 난방 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고 한다. 두꺼비집(누전차단기) 스위치를 올렸지만 소용없어 다른 동료 4명은 외부 인근 이주노동자 숙소에서 잠을 자고 A 씨 혼자 비닐하우스에 머물렀다고 한다. 진술을 종합해 보면 난방 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것이 사망원인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최장 허용 노동 기간인 4년 10개월을 채운 A 씨는 내년 1월 10일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가 묵던 숙소는 비닐하우스 안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임시가옥이었다. 근로기준법 시행령과 외국인고용법은 사업주가 안전하고 쾌적한 기숙사를 제공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사용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주노동자가 A 씨처럼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등 열악한 숙소에서 살고 있다.

대책위는 “어떻게 21세기 대명천지에 얼어 죽는 이주노동자가 있어야 한단 말인가”라며 “임시가옥은 ‘집’처럼 안전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이 폭염과 폭우, 한파를 막아줄 수 없는 숙소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고, 숙소화재 등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계속 발생했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농촌 비닐하우스 숙소 문제에 안이하게 대응한 정부와 지자체, 노동자 안전에 관심도 없는 사업주의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산재 사망”이라고 강조했다.

사업자가 생존을 위협하는 숙소를 제공해도 이주노동자는 이의제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은 마음대로 사업장을 이동할 수 없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사업장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이다. 사업주의 근로조건 위반 등 이주노동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일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대책위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우리의 외침으로 작년 (7월) 근로기준법, 외국인고용법 개정이 이루어졌지만, 비닐하우스를 제외한 임시가옥은 기숙사로 그대로 허용되고, 사업장변경 사유를 엄격하게 규정해 사실상 숙소 문제로 사업장변경을 한 이주노동자가 단 한 명도 없는 등 개정된 기숙사 조항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고용허가제를 담당하는 노동부와 불법건축물, 불법 용도변경 등을 담당하는 지자체는 고용주들이 농지 가운데 설치한 비닐하우스 임시가옥을 기숙사로 사용하는 것을 알고도 묵인해 왔다”라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매년 고장 난 건 난방 장치만이 아니다. 2004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고용허가제는 올해로 17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 생존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고장상태이고 이로 인해 피해자는 속출하고 있다”라며 “특별히 올해 3년 넘게 임금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 폭우로 수재민이 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사망 이주노동자 등 피해는 더 악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피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통해 사망원인을 규명할 것 ▲유족에 대한 사과와 적절한 보상책을 마련할 것 ▲농업 이주노동자 기숙사 문제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할 것 ▲비닐하우스, 농막,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불법 임시시설 기숙사를 금지할 것 ▲고용허가제 독소조항인 사업장변경금지정책을 철회하고 사업장변경의 자유를 허용할 것 등을 촉구했다.

한편 사업주 측은 “여자들이 쓰는 방이라 다른 곳보다 더 따뜻하게 해줬다”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