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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수북통신] 백죄 그러지들 맙시다!

한나는 딸과 함께 읍내에 딱 하나 뿐인 터미널 건너편 피자집에 피자를 시키러 들어갔다. 휴일이었다. 손님은 두 사람. 외국인이다. 한나가 살고 있는 담양에서도 외국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면소재지 근방 농공단지를 지나다 보면 일하는 사람들이 거개가 외국인이다. 언제가 공장 앞을 지나다가 도저히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어디서 왔느냐 물으니, 다양한 나라에서 왔다. 태국, 네팔, 스리랑카.... 광주 시내에 나가면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자본이 국제화된 지는 오래, 이제 노동도 그렇다. 피자를 기다리면서 손님에게 어디서 오셨느냐 물으니 필리핀이라고 한다. 필리핀 뤼손섬에서 왔다고. 그러시냐고, 오늘은 휴일이냐고까지만 묻고 미소 한번 보내는 것으로 그들과의 대화는 끝났다. 문제는 피자집을 나오면서다. 딸이 한나에게, 왜 외국인들에게 말을 시키느냐고, 휴일의 평온한 일상을 왜 엄마가 방해하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나가 외국인들에게 말을 건 이유를 굳이 변명하자면, 먼 곳에서 온 사람에게 말 한마디라도 건네면 서로 ‘따순 맘’이 들기도 하던 경험이 있어서다. 낯선 곳에서 누군가 어디서 오셨느냐고 말을 건네오면 어디서 왔다고 하고, 그러시냐고, 미소 한번 교환하는 그 아무렇지 않으면서도 뭔가 따스한 느낌이 나던 순간이 한나에게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의 일상을 방해할려는 마음같은 것은 추호도 없이 나온 행동이었다는 것.

공선옥 소설가<br
공선옥 소설가ⓒ사진 = 공선옥 작가

한나의 옛마을에서는 낯선 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때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아이들은 먼 데서 누가 오면 일단 숨고 봤다. 돌담장 같은 데 납작 숨어서 돌 틈 사이로 보는 것이다. 어른들은 일단 말부터 건다. 어디서 오셨소오, 그 다음에는 밥은 자셨소, 괜찮다 하면, 줄 것은 없고 물이라도 드실라요? 그러다보면 실제 도둑놈이라도 마음 고쳐먹고 돌아나가게 생겼다. 옛날에는 동네에 ‘동냥치’가 많이 왔다. 한나네 마을에서는 다 그렇게 불렀으니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동냥치들은 주로 밥때를 맞추어 왔다. 그러면 엄마들은(엄마들은 다 그랬다) 식구들 먹는 밥상에 숟가락만 하나 더 놓았다. 동냥치라고 따로 주는 법이 없었다. 정부에서는 내 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보라고, 했지만 엄마들은 내 집에 오신 손님은 내 손님이다, 정신만을 발휘했다. 탁발승도 왔다. 옛날 마을 근방의 스님들은 다들 그렇게 탁발을 해서 먹고 살았다. 상이군인도 왔다. 귀이개나 손톱깎기 같은 것을 가지고 와서 사지 않으면 왠지 무서워서 팥이나 콩 한 홉정도 주고 그것을 샀다. 그들은 한 홉이나 한 되나 한 말이나 똑같이 받았다. 한 홉 준다고 뭐라 하지 않았고 한 말 준다고 거절하지 않았다. 자주 오거나, 가끔 오거나, 처음 왔거나, 먼 데서 온 사람은 무조건 다 손님이었고 손님은 무조건 대접해서 보내야 할 존재들이었다. 낯설다고 내쫓거나, 마을 사람이 아니라고 소외시키거나, 낯설다고 낯설어하기만 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을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 살 데가 아니었다. 나하고 다르다고, 먼 데 사람이라고, 형편이 안 좋다고, 좀 이상하다고, 내치는 데서는 누가 살 수 있단 말인가.

한나가 잠깐 독일 있을 때 집 앞에 ‘우리 상회’란 수퍼가 있었다. 독일말로 운저러 카우픈인가 뭔가였는데 한나는 굳이 우리상회라고 불렀다. 한국말로 그렇다고 알려주면서 참 정감가는 이름이라고 말을 붙이니 딱딱한 독일인 가게주인도 좋아라 한다. 그렇게 말을 트면서 지내다보니, 팔다 남은 양파, 감자 같은 것도 많이 얻어먹었다.

60년대에 한나네 아버지는 서울 왕십리에서 채소를 길러 답십리, 신당동 골목에서 리어커에 싣고 다니며 팔았다. 배추 사려어, 무 사려어. 아버지가 보내온 편지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낯설고 물선 서울이라는 대도시에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인정은 있더라. 배추를 들이는 집안에 들어가 차 대접을 받으며 보니 아이들 상장이 주르런해서 너희들 생각이 나는구나.

김장철이나 되었을까. 배추를 배달해주는 사람을 그냥 보내지 않고 차 대접이이라도 했던 것일까. 그때는 서울도 그런 인정이 있던 도시였던 모양이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8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지난 20일 포천 일동 지역 농장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 진실 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2.28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사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8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지난 20일 포천 일동 지역 농장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캄보디아 출신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 진실 규명과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2.28ⓒ김철수 기자

“남에 대한 상상력”

캄보디아에서 온 속헹이라는 서른 한 살 먹은 사람이 일하는 농장의 비닐하우스에서 숨졌다는 뉴스롤 보고 한나가 떠올린 말이다. 농장 주인은 먼 데서 돈 벌러 온 사람은 영하 18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에 집도 아닌 집, 집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집이 된 곳에서 먹고 자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돈을 쓰러온 것이 아니라 벌러온 가난한 사람은 추울 때 추위를 못 느끼고 아플 때 아픔을 못 느낀다고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추울 때 추위를 느끼고 아플 때 아픔을 느끼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사람을 집 아닌 집에서 살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도 자기집 일해 주러 온 사람인데. 먼 데서 온 손님인데.

“백죄 사람이 그러면 쓰간디.”

한나네 옛마을 사람들이 항용 쓰는 말이었다. 백주대낮에 인두껍을 쓰고서 그러면 안 되는 범주에 속하는 일들이 백주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세상이다. 자식 잃은 엄마가 내 자식 같이 죽어나가는 사람 없는 법 만들어 달라고 절규한다. 태일이 엄마처럼 용균이 엄마가, 한빛이 아빠가 곡기마저 끊고 애원해도 세상은 냉랭하다. 용균이 엄마, 한빛이 아빠의 절규에 냉랭한 사람들은 나만큼 못 가졌어도, 나처럼 잘나지 못했어도, 나만큼 똑똑하지 않아도 똑같은 사람이고 사람은 누구나 추울 때 춥고 아플 때 아픔을 느낀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모양이다. 남에 대한 상상력은 딱 거기까지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눈이 많이 온 날 세밑의 아침에, 한나는 추위보다도 “인간들의 남에 대한 상상력”의 빈곤에 치를 떠는 것이다.

새해엔 백죄 그러지들 맙시다!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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