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박귀천의 일과 법] LG에게 청소노동자는 일회용품인가

코로나 19로 인한 불안과 우울감이 가득했던 2020년이 끝나고 새해가 되자마자 들려온 뉴스는 슬픔과 분노 이상의 충격을 줬다.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집단해고에 항의하며 농성을 하자 사측에서 농성장의 전기와 난방을 끊고, 도시락 반입까지 막아 새해 첫날 고령의 노동자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었다. 건물 유리문 뒤에 서있는 노동자들이 들고 있는 종이에는 “춥고 배고프고 어지럽고 무섭습니다.”, “2일째 굶었어요.”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여기는 어디이고, 지금은 몇 년도인가.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이른바 간접고용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인권 침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1년 홍익대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2018년 대한항공 항공기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2019년 금호타이어 청소노동자 집단해고는 청소노동자 집단해고의 대표적 사례이다. 노동자가 소속돼있는 용역업체와의 계약 해지를 이유로 하는 청소노동자 해고는 일상적으로, 수시로, 어디서나 이뤄지고 있다.

2일 여의도 트윈타워 안에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식사 반입과 난방, 전기 공급 등 차단을 규탄하며 허가할  것을 촉구하며 손자보을 들고 했다.   2021.01.02
2일 여의도 트윈타워 안에서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식사 반입과 난방, 전기 공급 등 차단을 규탄하며 허가할 것을 촉구하며 손자보을 들고 했다. 2021.01.02ⓒ김철수 기자

문제의 본질은 간접고용구조와 고령노동자, 특히 여성고령노동자의 노동시장에서의 극심한 취약성, 법제도의 미비에 있다. 용역(하청)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청소노동자들의 근로계약의 종료시점은 원청과의 용역계약 기간에 맞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원청이 기존 용역업체와의 용역계약을 종료하고 다른 업체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 기존 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새로운 업체에서 계속 일하게 해야 할 법적 의무는 현행법상 없다.

영업양도, 합병, 회사분할, 용역업체 변경 등 어떤 형식으로든 노동자의 소속업체가 변경될 때 노동자가 새로운 업체 소속으로 계속 고용되어 근무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 노동법 어디에도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다만, 대법원은 오래전부터 “영업이 양도되면 반대의 특약이 없는 한 양도인과 근로자 사이의 근로관계는 원칙적으로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된다고 하면서 근로관계를 승계하지 않겠다는 반대의 특약은 해당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정당한 해고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유효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현재 노동자의 소속 기업이 변경되는 경우 고용승계에 관한 유일한 법리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위와 같은 판례 법리는 영업을 양도하는 업체와 양수하는 업체 간에 영업양수도 계약이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서 적용된다. 예를 들어 A라는 회사가 B라는 용역업체와 체결한 청소용역계약에 따라 B소속 청소노동자가 A회사 건물 청소 업무를 하던 중 A가 B와의 용역계약을 종료하고 C와 용역계약을 새로 체결하게 되면 B와 C간에는 영업양수도 계약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B소속 노동자들을 C로 승계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것이 판례의 주류적인 입장이다. 다만, 서울고등법원(2017. 6. 14. 선고 2016누62223 판결)은 “신구 하청업체 사이에 묵시적 영업양도계약이 성립”되었다고 판단하면서 근로관계 승계를 인정한바 있다. 그렇지만 ‘묵시적 영업양도계약’이라는 것은 결국 기존 하청업체와 신규 하청업체 간에 어떤 식으로든 법적 의미에서의 의사소통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원청업체가 일방적으로 하청업체를 교체하는 경우 기존 하청업체와 신규 하청업체 간에 묵시적 영업양도 계약이 있다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용역업체 교체의 경우, 원청업체의 의사에 의해 용역업체의 교체를 결정할 뿐 기존용역업체와 신규용역업체 간에는 법률행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영업양도와는 구분된다. 그러나 간접고용은 그 자체만으로 기간제 고용형태에 따른 고용불안과 열악한 근로조건 등의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고,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경우 고용 및 근로조건 승계, 단체협약 승계가 인정되기 어려워 근로자들의 지위와 노동조합 활동은 더욱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여러 언론보도에 따르면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경우 노동조합 가입이 해고의 원인 내지 배경이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될 수 있어 노조법 위반 문제도 있다.

소속업체 변경되면 고용불안에 떠는 노동자
용역변경으로 해고된 폭스바겐 청소노동자 구제한 유럽연합
기업의 법적 주체 바뀌어도 고용과 노동조건 보장할
법적 방안 마련돼야

해외 국가들의 경우, 일찍부터 영업양도, 합병, 용역업체 변경 등 노동자의 소속업체가 변경될 때 고용승계 및 단체협약 승계에 관해 법에 명문으로 규정했다. 유럽연합의 ‘사업이전지침’에 따르면 법적 이전(transfer) 또는 합병의 결과로서 사업 또는 사업장의 전부 또는 일부가 다른 사용자에게 이전되는 경우에 사업이전 시점에 존재하는 고용관계로부터 발생한 사업의 인도인(transferor)의 권리와 의무는 사업 인수인(transferee)에게 이전된다. 이 지침의 적용과 관련하여, 유럽사법재판소는 독일의 유명 자동차생산업체 폭스바겐의 청소 용역업체 변경으로 인해 해고된 기존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신규 도급업체로의 고용이전 여부가 문제된 사건에서 신규 업체가 기존 업체로부터 어떠한 물적 자산도 인수하지 않았지만 기존 업체와 신규 업체 간에 사업의 이전이 이루어졌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유럽사법재판소는 인도인과 인수인 사이에 계약 관계가 없다는 점 때문에 사업이전지침에서 의미하는 ‘이전’이 부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더 나아가 실제 용역업무를 맡고 있던 인도인이 용역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재하청업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도 사업이전에 따른 고용승계에 대한 명문 규정을 두어 노동자 보호를 도모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자료사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모습 (자료사진)ⓒ뉴스1

용역업체 변경시 고용‧근로조건 승계 의무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다. 용역업체 변경뿐 아니라 영업양도, 합병, 회사 분할 등에 의해 노동자가 소속되어 있던 기업의 법적 주체가 변경되는 경우 노동자의 고용과 근로조건, 단체협약 승계에 관한 법제화 필요성에 관해서는 이미 90년대말, 2000년대 초반부터 수 없이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법제화를 위한 구체적 추진과 결단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여의도, 강남, 광화문 등에 늘어서 있는 크고 높은 빌딩들은 손잡이도, 바닥도, 계단도, 어디라도 모두 눈이 부시게 반짝반짝 빛난다. 그렇게 빛나는 외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동 덕분이다. 노동자는 상품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일회용품은 더더욱 아니다. 청소노동자를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청소도구처럼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얼룩과 어둠, 노동자들의 눈물을 그 반짝거림으로 얼마나 가릴 수 있을까.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서 화장실을 만들지 않아 분뇨의 악취를 향수로 막아보고자 했다는 베르사유궁전의 아이러니를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