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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2021년, 철인왕후가 살았던 세도정치 시대를 복기한다
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기타

드라마 '철인왕후'가 역사 왜곡?

tvN 드라마 '철인왕후'가 화제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역사 왜곡 논란 때문이다. 사실 따져보면 별 내용도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찌라시’라는 등장인물의 대사가 문제가 되었는데, 냉정히 따져서 이게 왜 문제가 될까?

물론, 역사학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실록이 찌라시라는 말은 틀렸다. 하지만 실록 역시 주관과 논리가 들어가 있으며, 무엇보다 왕조의 입장, 성리학자의 입장에서 편찬된 관찬 문서이자 유교적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여러 한계와 문제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감히 찌라시라고 한다? 중세 성직자의 발언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애초에 드라마 '철인왕후'는 환타지를 표방했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상을 둘러싼 역사왜곡 논쟁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정극으로 만들었다 치더라도 과연 '철인왕후'라는 작품을 둘러싼 논쟁이 의미가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매번 '역사 왜곡' 관련 논란이 되는 것들은 대부분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교과서 속 내용들인데, 현재 조선 후기 정조 사후 세도정치기에 대한 역사교육은 기초적인 내용을 제외하고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에서 조선 풍의 단아한 겉모습 속에 현대의 자유분방한 영혼이 깃든 중전 '김소용' 을 연기한 배우 신혜선의 스틸컷
tvN 드라마 '철인왕후' 에서 조선 풍의 단아한 겉모습 속에 현대의 자유분방한 영혼이 깃든 중전 '김소용' 을 연기한 배우 신혜선의 스틸컷ⓒ제공=tvN

철종 시대, 상상보다 놀라운 안동 김씨의 시대

정말로 조선 철종 시대는 어떠했을까. 드라마에서는 철인왕후가 주인공이지만 역사학의 시선으로봤을 때, 당대에 철인왕후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오히려 순원왕후, 김좌근 같은 인물이 훨씬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국왕이니 철종부터 살펴보자. 철종의 별명은 '강화도령'이다. 사도세자의 서자 집안 출신인데 대대로 역모에 휘말려 죽임을 당하였고 왕으로 모시고자 조정에서 행차가 나왔을 때도 산으로 도망갔던 인물이다. 순원왕후가 그에게 공부함을 묻자 어린 시절 통감 2권과 소학을 읽었으나 그마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했으니, 실상 배움이 별로 없고 농사만 지었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자 순원왕후는 '주상은 지난날 어려움도 많았고 오랫동안 시골에서 살아 왔으나, 옛날의 제왕 중에도 민간에서 성장한 이가 있어 백성들의 괴로움을 빠짐없이 알아 애민의 정사를 해왔으니 지금 주상도 백성들의 일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오'라면서 애민의 정치를 기대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도 못했고, 국정운영에 대한 경험도 없는,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국왕이 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냐는 말이다.

더구나 당시 정치 상황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일명 안동 김씨의 세상, 문제는 이미 오랜 기간 누적되었다. 정조가 후견인 격으로 김조순의 딸을 자신의 아들 순조와 결혼시킨 후 세도정치는 본격화된다. 정조 사후 김조순이 주도하는 안동 김씨 가문이 위세를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김조순의 딸이자 순조의 아내였던 순원왕후는 후대 왕인 헌종과 철종을 직접 지명하였고, 철종의 아내 역시 안동 김씨 김문근의 딸 철인왕후를 들였다. 순원왕후가 나름대로 민생을 걱정했고 현명하게 처신하려고 노력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가문의 오빠들과 문제를 상의했고 철저하게 안동 김씨의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하였다.

외곽에서는 안동 김씨 가문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김조순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김유근, 김원근, 김좌근이 그들이다. 김유근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세를 휘둘렀고, 그가 죽자 막내 동생인 김좌근이 권세를 물려받았다. 또 김조순의 사촌인 김명순의 아들 김홍근이라는 인물 역시 막강한 위세를 휘둘렀다. 그가 죽자 동생 김흥근이 권세를 부렸다.

김좌근의 경우, 42살의 나이에 급제를 할 정도로 뒤늦게 정치의 세계에 입문하였다. 하지만 4년이 안되어 이조판서가 되었고, 철종이 즉위한 1850년부터 우참찬, 선혜청당상, 금위대장, 형조판서, 훈련대장, 공조판서, 우의정을 지내더니 1853부터 1863년 사이에 영의정에 무려 세 번이나 올라 나라를 좌지우지 하였다.

철종 8년의 인사를 보면 이조 참판 김병학, 호조 판서 김병기, 홍문관 부제학 김병주, 형조판서 김병교, 예조판서 김병국 등등 ‘병’자 돌림 안동 김씨들이 약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이 누구일까. 김병기, 김병국, 김병학 등은 철종의 장인 김문근과 그의 형 김수근의 자녀들이다. 철인왕후와 가까운 사람들이었으니 결국 순원왕후와 그의 형제들, 철인왕후와 그의 형제들이 대를 이어 세도를 부렸던 것이다.

tvN 드라마 '철인왕후' 철종 역 김정현 방송화면
tvN 드라마 '철인왕후' 철종 역 김정현 방송화면ⓒ사진 = tvN드라마 '철인왕후'

민중의 한을 조금도 해결하지 못했던 그 때의 사정

이렇게 안동 김씨는 무력하고 무능한 왕을 보위에 앉혀놓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갔다. 그러다 1871년, 경상남도 진주를 중심으로 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 민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그해 2월 경상도의 지리산 기슭 단성이라는 작은 고을에서 처음 봉기가 일어났는데, 3월부터는 본격화된다. 4~5월에 삼남 지방을 휩쓸었고, 가을엔 제주도에서도 3차례 봉기가 일어났다. 이어 함경도 함흥, 경기도 광주를 거쳐 다시 경상도 일대에서 연이어 민란이 일어났다. 조선왕조 개창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심각했지만 명확했다. 우선 '환곡(還穀)'이 문제였다. 원래는 농민을 위한 진휼미(흉년이나 재난을 만나 굶주린 백성을 돕는데 쓰는 쌀)였는데, 이것이 지방 재정으로 활용되었고 고리대(부당하게 비싼 이자를 받는 돈놀이)로 운영되기 시작하면서 백성을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두 번째로 '결가(結價)'도 문제였다. 조선 후기 들어 세금을 쌀이나 면포가 아니라 화폐로 징수했는데, 1결(結, 논밭 넓이) 단위당 수취 총액을 결가라고 했다. 결가를 거둘 때의 가격과 중앙에 상납할 때의 가격 차이를 이용하여, 수령과 향리들이 이익을 남기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세 번째는 '도결(都結)'이 문제가 되었다. 도결은 세금 부족분을 토지를 기준으로 매기는 세금에 얹어 한 번에 거두어들이는 방식인데, 이렇게 세금 부담을 농민에게 전가한 것이다. 도결에 관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거두는지 농민들이 전혀 몰랐다. 이에 더하여 부세 운영에 통일적 원칙 없이 군현별로 상이하게 운영되었기 때문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철종은 박규수 등을 불러 모아 대책을 모의했다. 전국의 유생들은 여러 개혁안을 냈는데 제법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양안(量案, 토지 대장)을 만드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균전소 같은 기관을 설치하고 20년 기한으로 순차적으로 양전을 통해 세수를 정확하게 파악하면 합리적인 조세제도가 만들어 질 것으로 보았다. 실제로 중국 명나라에서는 장거정이 토지조사를 강행하여 기존에 파악했던 토지보다 30% 이상을 확보했다. 그러면서 국가 재정 확보에 혁신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농민들의 삶이 크게 윤택해졌다. 거대한 중국도 하는데 조선이 못하겠는가.

송근수의 경우는 법전 <대전통편>의 액수를 준용하여 잡다한 명목을 없앨 것을 주장하였으니, '세목 단순화 정책'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때 누누이 강조하게 될 이야기이다. 이와 함께 조세행정의 기준을 마련하고 수령이나 이서들의 자의성을 없애며, 쓸데없는 중간 기구를 없애는 방안 또한 진지하게 숙고되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3개월 만에 개혁은 무마되고 말았다.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이라는 이름만 번지르르한 관청만 만든 채 유야무야된 것이다. 이유는? 철종은 개혁 의지는커녕 실력이 없었고 안동 김씨의 이해관계는 전국적으로 구조화되었으며 민중의 인식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 그렇게 많은 고을에서 민란이 일어났음에도 대부분 아전들을 공격하는 수준이었고, 고을 간의 조직적 연계, 혁명적 투쟁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2021년, 새로운 해가 밝았다. 철종 시대를 복기하며 우리 시대를 되돌아 본다. 오늘 우리 사회는 어느 수준에서 기능하고 있을까. 명확한 문제가 있다면 왜 해결되지 않는 것일까. 노력하고 있는데 왜 변화는 없을까. 애초에 기대치는 높지 않았는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특정 국면에서 역사는 처절하게 반복된다. 과거는 오늘을 반추하는 도구일 뿐, 결국 오늘의 우리가 스스로를 숙고해야 한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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