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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민원 더해지자 누더기 된 중대재해법, 핵심 조항 모두 ‘후퇴’
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실 앞을 지나고 있다. 2021.01.06
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이 6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열리는 회의실 앞을 지나고 있다. 2021.01.06ⓒ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12월 임시국회 종료를 이틀 앞둔 6일, 비로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의 윤곽이 드러났다. 국회 심사 과정에서 후퇴를 거듭하던 중대재해법은 막판 부처 의견이 반영되면서 '누더기'로 전락했다. 전날 처벌 수위를 낮춘 데 이어 적용 대상까지 대폭 축소되면서다.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 반드시 포함돼야 했던 주요 내용은 아예 빠져버리거나 수위가 완화됐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는 이날 회의를 열고 중대재해법 심사를 이어갔다. 여야는 임시국회가 종료되는 오는 8일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논의 중이다.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원장인 민주당 백혜련 의원에 따르면, 이날 법사위 소위는 유예 조항을 제외한 모든 조항에 합의를 이뤘으며 오는 7일 오전 중 소위 의결까지 마칠 예정이다.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크게 줄어들었다. 중대시민재해 적용대상에서는 학교와 바닥면적 합계 1천㎡ 미만의 다중이용업소, 상시 노동자가 10명 미만인 소상공인 등이 제외됐다. 중대산업재해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당초 원안에는 없던 내용으로, 중대재해법이 제정될 경우 영세 사업장의 부담이 커진다는 업계 반발과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경영책임자 정의에는 '함정'이 생겼다. 당초 법안에서는 경영책임자의 범위를 '법인의 대표이사 및 이사'로 규정해 기업의 최고 책임자인 대표이사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지만, 여야 합의 결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변경됐다. 이 경우 실질적인 책임자인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 이사만 처벌받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아예 법에서 빠져 버린 내용도 있다. 발주와 임대와 관련된 조항,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여야 합의로 삭제됐다. 공무원 처벌 내용 역시 인허가 감독 행위와 중대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 합의되진 않았지만 법안 유예 대상도 원안보다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의 경우 개인 사업자 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했지만, 정부에서 내놓은 안은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에 더해 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2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더 추가했다.

한술 더 떠 중기부에서는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를 기본으로 하고, 100인 미만이 아닌 300인 미만의 사업장까지 2년의 유예 기간을 더 둬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 상태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정부안인 '50인 미만 사업장 4년 유예+5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장 2년 유예'에 힘을 싣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떤 경우든 법 적용이 안 되는 대상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법안 심사를 이어 갈수록 법안의 핵심 내용이 후퇴되는 데 대한 강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백혜련 의원은 "예방과 관련해서 국가와 지자체가 안전 관리나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했다"며 "처벌만으로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 오히려 기업들과 작은 영세업주들이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았고 그런 부분에 공감해서, 국가와 지자체에 안전과 관련한 예산 지원 의무를 신설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아닌 살인 방조법' 비판까지
정의당 "이대로 법안 채택되면 안 돼" 반발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장혜영, 류호정, 심상정 의원(오른쪽부터)이 6일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1.01.06
정의당 강은미 원내대표, 장혜영, 류호정, 심상정 의원(오른쪽부터)이 6일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2021.01.06ⓒ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온전한 중대재해법 제정'을 촉구 중인 정의당은 여야 합의안을 강하게 비판했다. 12월 임시국회가 끝나는 8일까지 단식 농성을 이어가기로 한 김종철 대표와 20일이 넘게 단식 농성을 이어오다가 단식을 중단한 강은미 원내대표도 법사위 회의실 앞을 지켰다.

백혜련 의원이 대폭 후퇴한 여야 합의안을 설명하자, 김종철 대표는 합의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대표는 "결과적으로 안전이사가 자기만 처벌받고 대표이사는 빠지는 식으로 될 수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이 중대산업재해에서 제외되는 데 대해서도 "실제 보니까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사고로 돌아가신 분이 30~35% 정도 나온다. 이건 어떻게 할 것이냐"라며 "작은 사업장이니까 처벌을 약하게 한다거나, 아니면 처벌은 하되 재정지원을 확실하게 한다는 식으로 의원들이 논의해야지 중기부에서 갖고 왔다고 (그대로)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백 의원은 "(경영책임자 조항을 원안처럼) '및'으로 할 때는 두 사람 다 당연히 처벌받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장관이 있고 안전관리 업무에 대해서는 1차관에 전속적인 권한을 주고 일을 했는데 나중에 (중대재해가 발생할 시) 장관도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것처럼 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소위 논의 내용을 전했다.

백 의원은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와 관련된 지적에 대해서는 "5인 미만 사업장의 원청 업체의 경우에는 중대재해법이 적용되는 것"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는 현재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을 빼게 된 건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도 열악한 상황에 있는데 똑같이 당장 중대재해법에 의한 처벌을 하는 게 맞느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소위 회의를 직접 참관했던 장혜영 의원은 울분을 토해냈다. 장 의원은 "실시간으로 후퇴하는 법안 논의를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지금도 국회 앞 천막에서 농성하는 유족들 앞에서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하나 할 말이 없을 것 같아서 너무나 죄송했다"며 "오늘 논의된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라 기업 살인 방조법에 가깝다. 국회가 국민의 죽음을 방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소위 논의가 노동자와 시민의 입장이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만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항마다, 사안마다 산재 피해자들, 유족이 아니라 재계의 눈, 정부 부처의 의견만 들었다. 민주당에서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유족들 편에서 얘기한 의원은 두 명밖에 없었다"며 "이로써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어떤 국민을 대변하는지가 똑똑히 드러났다. 죽어가는 국민의 절규를 외면하고 죽는시늉, 앓는 소리만 해대는 재계를 대변하는 양당이라는 게 오늘 똑똑히 드러났다"고 일갈했다.

심상정 의원은 "오늘 백혜련 의원이 말한 것을 종합하면, 5인 미만 사업장도 빼고, 발주처도 빼고, 법 적용을 유예해서 사업장 규모별로 시행하겠다는 거 아니냐"며 "그럼 도대체 남는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심 의원은 "각 부처를 앞세워서 민원을 심사하는 식으로 법안 심사가 이뤄졌다는 데 대해 개탄을 금치 않을 수 없다"며 "부처별로 재계 민원이 반영되고, 그 부처가 여기 와서 재계의 소원 수리를 하는 식으로 법안이 심의되는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대로 이 법안이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고 반발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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