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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인화(人和)의 LG라고? 웃기고 자빠졌다

‘인화의 LG’라는 말이 있다. LG그룹 창업 정신이 인화(人和), 즉 ‘사람을 아끼고 서로 화합한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인화 좋아하시는 LG가 이 추운 겨울 LG트윈타워 미화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고작 시급을 50원 올려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유로, 구 씨 일가의 돈벌이에 방해가 됐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그 건물을 청소했던 노동자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이에 항의해 노동자들이 시위를 하자 LG는 영하 10도의 강추위에 난방을 끊고 가족과 지인들이 넣어주는 음식물 반입마저 가로막았다.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인화냐? 너희들 혹시 인화를 ‘사진을 인화하다’ 할 때 쓰는 그 인화(印畵)로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냐?

삼성이 저지른 해악이 너무나 지대해 ‘최소한 삼성은 피하자’는 생각으로 그동안 LG 스마트폰을 사고 LG 노트북을 구입했다. 지금 이 기사도 LG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며 쓰는 중이다. 그런데 이게 너무 후회스럽다. 인두겁을 쓰고 이런 짓을 태연히 하려면 최소한 인화라는 말은 안 하는 게 인화에 대한 도리 아닌가?

인화의 LG? 그 역사적인 민낯

다른 재벌들의 악행이 심해서 그렇지 LG그룹도 어디서 인화 운운할만한 역사를 가진 기업이 아니다. 다른 애들보다 덜 나쁘다고 착한 애가 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2015년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이 출간된 적이 있었다. 2003년 영업마케팅 책임자로 LG 프랑스 법인에 합류한 뒤 2006년 상무로 승진해 그룹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임원이 됐고, 2009년 LG프랑스 법인장에 오른 에리크 쉬르데주(Eric Surdej)가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내가 LG에서 보낸 10년은 직업적인 도전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했다. 얼마나 기상천외했는지 직접 그의 경험담을 들어보자. 쉬르데주가 LG에 입사한 뒤 가장 먼저 겪은 일은 분노한 법인장이 아무 물건이나 마구 집어던지는 충격적인 문화였다. 이게 그가 겪은 경험담이다.

“그럼 벽에 부딪힌 소리는 뭐였습니까?”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대표님이 서류나 사전을 벽 쪽으로 집어던졌을 거예요. 자주 있는 일이니까 놀라지 마세요. 서로 욕도 하고 서류도 던지고 문도 쾅쾅 닫고 하니까요. 처음에는 충격적일 수 있지만 곧 익숙해져요.” (프롤로그 중)

서울에서 LG 대표가 프랑스를 방문하기로 했단다. 그랬더니 LG 프랑스 법인이 난리가 났다. 대표가 방문하는 지역의 대형 매장에 아직 LG 제품이 깔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LG는 즉각 매장과 협의(!)해 다른 회사 제품을 싹 다 치우고 매장 전시대를 LG 제품으로 채웠다. 서울에서 왔다는 그 대표님, 퍽이나 흐뭇했겠다.

그런데 문제는 LG가 그 매장에 어떤 감사 인사도, 보답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매장 입장에서 생각하면 ‘뭐 이런 미친놈들이 다 있어?’ 싶었을 것이다. 기껏 LG제품 깔아줬는데(심지어 LG 제품은 그 지역에서 점유율이 낮아 그것만 전시하면 매장에 손해다) 보답은커녕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 없었으니 말이다. 갑질도 아주 글로벌한 갑질이다.

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와 노동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LG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엘지트윈타워분회와 노동시민사회 공동대책위원회가 4일 여의도 트윈타워 앞에서 열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 집단해고 LG 제품 불매 선포 기자회견에서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손피켓을 들고 있다.ⓒ김철수 기자

한 간부가 부사장 사진을 찍었다고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은 이야기, 과로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노동자에게 “언제 복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는 이야기, 하루 12시간을 일하는데 휴가를 내면 눈치를 주는 경직된 문화 이야기, 영하 12도의 강추위에 야외에서 폭탄주를 마셔야 했던 이야기, 해외 지사장들이 서울 본사에서 불려가 깨졌는데 깨지고 나오니 태연히 두통약을 주더라던 이야기 등 그가 늘어놓은 낯 뜨거운 이야기는 끝이 없다.

갑질과 군사문화, 꼰대정신으로 점철된 곳이 LG라는 이야기인데 이건 또 어느 나라 인화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책에 보면 쉬르데주가 LG로 옮긴다는 이야기를 일본인 동료들에게 이야기하자(그는 LG로 옮기기 전 소니와 도시바에서 13년 간 일했다) 일본인들이 “군대식 문화를 어떻게 견디려고 그러냐?”며 말렸다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일본인들한테 이딴 이야기나 들어야 되나? 글로벌한 망신도 작작 해야 할 것 아닌가?

차떼기의 추억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 되짚어보자. 요즘은 차떼기라는 용어가 뇌물의 상징처럼 사용되는데, 사실 이 차떼기의 원조가 LG다.

대선이 치러졌던 2002년 10월 말, 대세가 이회창 후보에게 기울었던 것처럼 보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한나라당 재정위원장 최돈웅이 LG그룹 구조조정 본부장 강유식을 방문했다. 대선 후원금을 걷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런데 최돈웅의 이야기가 묘했다. “얼마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명쾌한데 “예년의 후원 규모와는 단위를 달리하는 규모를 기대하고 있다”고 찌른 것이다. 깡패한테 돈을 뜯겨본 사람은 알 거다. “집에 가서 만 원 가져와” 이러면 속이 편한데 “형이 요즘 좀 하고 싶은 게 많아. 얼마 가져오는 지켜보겠어” 이러면 참 여러모로 곤란하다.

당황한 LG는 사상 최고액을 베팅하기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깡패가 보통 깡패가 아니라 두 달 뒤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깡패다.

다급한 강유식이 그룹에서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을 다 긁어모았다. 놀라운 사실은 LG본사 여의도 트윈타워에 내화벽이 있었다는 사실. 불이 나도 멀쩡하도록 설계된 그 벽 안에 비밀금고가 있었는데 LG가 그 금고에 160억 원을 쟁여놨다는 거다.

LG는 그 돈의 용도를 “주주들의 상속 및 증여에 대비해 마련해둔 현금”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것들이 지금 장난하냐? 주주들의 상속, 증여세를 왜 상속받는 자가 아니라 LG가 대비하냐고? LG의 설명에 따르면 그 돈은 대놓고 불법 승계하겠다고 모아둔 비자금이었다는 이야기다.

LG는 그 돈의 대부분인 150억 원을 지르기로 했다. 당시는 5만 원 지폐가 없어서 LG는 1만 원짜리 현금 150억 원을 사과박스에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한 상자에 2억 4,000만 원씩 담은 상자 62개와 1억 2,000만 원을 담은 상자 1개를 합쳐 돈 상자만 무려 63개였다. 이걸 어디다 싣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LG가 동원한 운반 수단이 2.5톤짜리 탑차였다.

돈을 받기로 한 자는 이회창 대선후보 법률특보였던 서정우 변호사였다. 그는 현대로부터도 100억 원의 비자금을 받았는데 노련한(!) 현대는 한 번에 100억을 다 운반한 것이 아니라 50억 원씩(사과상자 40개) 2회(이틀)에 걸쳐 스타렉스 승합차로 돈을 옮겼다. 하지만 LG는 머리마저 나빠서 이런 방법을 생각도 못하고 그냥 2.5톤 탑차에 돈을 실었다.

이 코미디에 후일담이 하나 더 있다. 서정우가 직접 운전한 이 탑차가 너무 커서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지하주차장에 못 들어갔다는 거다. 한나라당 이재현 재정국장이 탑차를 일단 한강둔치로 이동시킨 뒤 재정국 직원 3명이 렌트한 봉고차 두 대에 돈 상자를 나눠 실어 다시 당사 지하주차장에 입장했단다. 이 자식들은 대선을 하랬더니 007 영화를 찍고 자빠졌다.

아무튼 이 코미디의 주인공이 바로 LG다. 상대가 “알아서 주세요” 했더니 “어이쿠, 넉넉히 드려야죠” 이러면서 건물 내화벽에 숨겨진 비자금을 탈탈 터는 기업. 그런데 머리는 나빠서 그 불법자금을 2.5톤 탑차로 운반하는 기업. 나 같으면 쪽팔려서 어디 가서 기업 한다고 말도 못하겠다.

국제적 코미디 가부장 봉건기업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짚어보자. 지금 LG그룹의 총수는 구광모 회장이다. 그런데 4세 승계의 주인공 구광모 회장은 3대 총수인 고 구본무 회장의 친아들이 아니라 그의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었다. 구광모에게 구본무 회장은 큰아버지였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집안 역사까지 굳이 꺼내는 이유가 있다. 그룹을 물려줄 아들이 없었던 구본무 회장이 조카인 구광모를 양자로 삼은 뒤 경영권을 물려줬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웃긴 이야기냐면, 구본무 회장에게 다른 자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구광모 회장과 동년배인 딸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 있다. 그런데 딸은 경영 승계의 대상이 아니라며 굳이 조카를 양자로 들인 것이다.

자, 이 전근대적인 코미디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4세 승계도 창피한 마당에 아들이 없다고 조카를 양자로 입적하는 기업이 글로벌 기업이다. 성평등이 상식인 21세기 백주대낮에 이들은 중세 봉건 사회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을 태연히 벌이고도 창피한 줄을 모른다.

이번에 청소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쫓아낸 지수아이앤씨라는 용역업체의 주인은 구광모 회장의 고모인 구훤미 씨와 구미정 씨다. 그리고 이 구 씨 자매는 청소 용역업체를 설립한 뒤 LG그룹으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혜택을 받아 10년 동안 배당금으로 207억 원을 챙겼다.

이건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 “나를 양자로 맞아준 양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않고 그분의 여동생들을 챙겨드리겠습니다” 뭐 이런 거냐? 참 지극한 가족애(라고 쓰고 일감 몰아주기라고 읽어야 함)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LG의 인화는 가족한테만 통용되는 인화인 모양이다.

나는 도대체 이런 뻔뻔스런 자들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인화의 LG’를 들먹이고 다녔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기 가족은 일감 몰아주기로 수백 억씩 챙겨주면서 청소 노동자들은 아무 대책 없이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자들이다.

게다가 심장은 콩알만해서 이회창 쪽이 푹 찌르니 150억을 차떼기로 갖다 바치는 쫄보들이 이럴 때에는 또 무지 용감해진다. 그래서 너희들 이름이 뭐라고? 인화의 LG라고? 진짜 웃기고들 자빠졌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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