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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 영세사업장 파쇄기 사망…노동청, ‘위험작업’ 알고도 못 막았다

광주의 영세사업장 노동자가 또다시 파쇄기에 끼여 숨졌다. 지난해 5월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고 김재순 씨 사고와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같은 해 11월 화성에서도 파쇄기 사망 사고가 있었다.

특히 노동청은 이 사고 발생 전 사업장을 방문해 ‘위험한 작업 방식’을 인지했음에도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예고된 인재’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고가 발생한 파쇄기의 호퍼 입구
사고가 발생한 파쇄기의 호퍼 입구ⓒ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지역본부

광주 광산구의 한 플라스틱 제조공장 노동자 장 모(51) 씨는 지난 11일 낮 12시 42분경 폐비닐, 노끈 등을 압출기에 넣다가 스크루 컨베이어에 오른팔이 끼어 과다출혈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공장은 최소 5인에서 최대 20인의 노동자가 일하는 소규모 사업장으로 알려졌으며, 사건 당시 장 씨는 2인 1조가 아닌 단독으로 투입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위험한 작업 방식이 사고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왔다. 장 씨는 파쇄기 호퍼(hopper·깔때기 모양 용기)에 직접 폐플라스틱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일했다.

사고 당일 현장을 점검한 권오산 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사람이 직접 투입하면 언제든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파쇄기 옆으로 가위와 낫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회전 날에 노끈 등이 걸리면 (직접 손을 넣어) 잘라냈던 것 같다. 폐플라스틱을 집어넣거나 노끈을 자르다가 손에 노끈 등이 엮이면 같이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장 씨가 서 있던 발판 주변 바닥이 정리·정돈되지 않은 점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됐다. 권 부장은 “바닥에 폐플라스틱과 노끈 다발이 많이 깔려있었다. 사고가 안 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작업자가 (주변 이물질에) 걸려 넘어지면 (몸이) 호퍼 쪽으로 향해 스크루(회전 날)에 말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권 부장은 “파쇄기 근처에 (사람이 직접 중단할 수 있는) 비상정지 스위치는 있었지만, (사람의 접근을 감지하면 저절로 멈추는) 안전센서는 없었다. 비상 스위치가 있어도 혼자 작업하는 이상 (사고가 났을 때) 누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파쇄기 주변
사고가 발생한 파쇄기 주변ⓒ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지역본부
사고가 발생한 파쇄기 주변
사고가 발생한 파쇄기 주변ⓒ민주노총 금속노조 광주지역본부

사고 막을 수 있었다

이번 사고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해 해당 사업장에 ▲파쇄기 개구부 덮개 설치 ▲비상정지 스위치 설치 등을 권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권고는 지난해 5월 광주 광산구의 한 목재공장 노동자 김재순 씨가 파쇄기에 빨려 들어가 사망한 뒤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진행한 전수조사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시민대책위는 동종업체 전수조사를 요청했고, 광주지방고용노동청이 공단에 의뢰해 패트롤 점검을 시행했다.

공단 관계자는 “작년 사업장 방문 당시 위험한 작업 방식을 확인하고 이번 사고와 관련해 두 가지 권고를 했다. 개선 결과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사람이 직접 투입하는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권고는 없었다. 일반적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호퍼에 투입하는 방식이 안전한 방식으로 꼽히지만, 공단은 컨베이어 밸트 설치 권고를 하지 않았다. 사용자 측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이 이유였다.

컨베이어 벨트 설치를 권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공단 관계자는 “비용이 수반되고 공간적으로 설비 재배치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해 쉽게 개선할 수 있는 조치부터 권고했다”라고 해명했다.

이에 권 부장은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해선 직접 투입 방식이 아니라 컨베이어 벨트 등을 통해 투입하도록 권고했어야 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컨베이어 벨트 설치 비용이 약 300만 원 정도인데, 노동부 클린사업(영세사업장 안전보건관리시스템 구축을 위한 보조 지원)을 통하면 정부와 비용을 반반 부담할 수 있어 150만 원에 설치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일인데 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취했어야 했다”라고 씁쓸해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광주본부는 12일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고용노동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에서 잇따른 산업재해 사망 사고와 관련해 민·관 전수조사를 통한 원인 규명과 철저한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2021.01.12.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광주본부는 12일 광주 북구 오룡동 광주고용노동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에서 잇따른 산업재해 사망 사고와 관련해 민·관 전수조사를 통한 원인 규명과 철저한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2021.01.12.ⓒ민주노총 광주본부

“영세사업장 중대 재해, 정부는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고 김재순 씨 사고와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고 김재순 노동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으로 활동했던 권 부장은 “이번 사고가 김 씨 사고와 다르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안전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2인 1조가 아닌) 단독작업을 하다가 회전 날에 끼여 숨졌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영세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중대 재해에 대해 시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권 부장은 강조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중대 재해 처벌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고, 50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이 3년 유예됐다.

그는 “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사각지대에 있다. 노동청이 전수조사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라며 “생명과 안전에 차별이 있으면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영세사업장에 대한 안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지난 12일 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사건 관련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전수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있도록 노동시민단체와 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논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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