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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공연장들이 사라지는 오늘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길어지고 있다. 노동자이든 자영업자이든 마찬가지다. '소상공인 버팀목자금'이라는 이름으로 3차 재난지원금 지원이 시작되었지만, 이걸로 상황이 나아질 거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코로나19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가며 우리 사회의 빈틈을 드러내는 중이다. 누가 그동안 빈틈을 메꿔왔는지, 누가 빈틈에서 허덕이고 있었는지, 누구의 빈틈이 가장 먼저 무너짐으로 이어지는지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공연예술계도 그 빈틈 중 하나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지난해 12월 29일 발표한 ‘2020 공연예술조사 결과발표(2019년 기준)’을 비롯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공연 개막 및 상연이 전년 동일기간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위기가 다시 고조된 작년 12월 31일부터 올해 1월 6일까지 연극, 뮤지컬, 클래식, 오페라, 무용, 국악, 복합 장르의 매출은 전년 대비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도 다른 분야의 위기가 워낙 심각하다보니 문화예술계 및 공연예술계 위기는 자꾸만 뒤로 밀린다. 사람들 의식 속에서 문화예술은 등따시고 배부른 다음의 일이기 때문일까. 방탄소년단처럼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때는 국가의 자긍심을 높이는 기제로 적극 활용하면서, 정작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맨 나중에 손을 뻗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정부에서도 공연예술분야 코로나19 전담창구를 운영하고, 공연장 대관료 지원을 1~2차에 걸쳐 공모하며, 코로나19 특별융자 사업을 펼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했다. 하지만 전무후무한 위기 앞에 누구도 허둥지둥 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1년이었다.

하나투어 브이홀의 모습
하나투어 브이홀의 모습ⓒ사진 = 브이홀 홈페이지 갈무리

대중음악계에서도 수많은 공연과 페스티벌이 취소되었다. 그 피해는 도미노처럼 이어지고 있다. 창작자와 연주자만 고통 받는 것이 아니다. 공연 관련 업체들이 문을 닫고, 공연장들도 연달아 간판을 내렸다. 1998년에 문을 연 재즈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은 지난 11월 14일 공연을 올린 후 더 이상 공연을 잇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2007년 ‘고스트 씨어터’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던 ‘브이홀’도 폐업했다. 무브홀, 퀸라이브홀, DGBD, 에반스라운지도 잇따라 문을 닫았다.

공연장 하면 세종문화회관을 떠올리는 이들에게는 낯선 이름들일지 모른다. 그러나 동시대의 대중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최소한 한 번은 가보거나 들어보았을 이름들이다. 근사한 분위기와 함께 재즈를 만나는 공간이었고, 자신의 록스타에 환호하던 스탠딩 공연장이었다. 같은 음악, 같은 뮤지션을 좋아하는 이들의 열광과 환호로 꽉꽉 채워지던 곳, 곳곳에 뮤지션들의 열정과 팬들의 환희가 배어있던 곳들이었다. 모두 한국 인디 신의 뿌리 같은 공간들이었다.

한국 뮤지션들만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많은 내한공연이 펼쳐졌던 곳이기도 하다. 많은 뮤지션들이 이 무대에 서기 위해 노래했고, 기획자들은 이 공연장을 채우기 위해 애썼다. 팬들은 이 공연장에 갈 수 있어 행복했다. 이 공연장들, 특히 서울 홍익대학교 앞의 공연장들은 인디 신과 한국 대중음악을 위해 기꺼이 문을 열어주곤 했다. 그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라이브클럽 에반스 라운지 폐업 공지
라이브클럽 에반스 라운지 폐업 공지ⓒ사진 = 에반스라운지 SNS 갈무리

사람이 하는 일이라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음향이 아쉽고, 비좁고 어두운 공연장이 불편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다시는 안 가겠다고 마음먹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시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좋기만 한 관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공연장에도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름살이 쌓이듯 추억이 되었을 것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 한국 인디 신의 역사를 함께 썼을 것이다. 누군가의 과거이며, 현재이며, 미래였을 것이다. 많은 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돌연 멈춰버렸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이렇게 문을 닫고 이별하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별을 인정하고 준비할 시간도 없이 헤어졌다. 잘 가라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고마웠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황망한 이별이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한다. 곧 몇 곳의 공연장들이 더 문을 닫을 것 같다고 한다. 쓸쓸하다 못해 화가 난다. 공연장에서 코로나19가 옮겨졌다는 이야기가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조심하고 또 조심할 수밖에 없다지만 방역 기준이 공연장에 대해서만 너무 가혹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공연장을 지키기 위해 뮤지션들과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SAVE OUR STAGES’ 운동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공연장이 사라지면 음악은 돌아갈 곳도 기댈 곳도 없어진다.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는 없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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