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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종말] 농사(農事)와 농업(農業)

편집자 주:그간 우리 농촌과 농사, 농정(農政)의 현실에 대해 날카로운 글을 써주신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이 2021년엔 새 기획으로 독자 여러분들을 만납니다. 한 고문은 한국의 농사가 자본의 압박과 잘못된 농정 속에서 명맥이 끊기고 있다는 점을 짚은 '농사의 종말' 칼럼으로 2주에 한 번씩 여러분들을 찾아옵니다.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농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있는 주제입니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차분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국어사전에 ‘농사’는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거두는 등의 농작물 재배 과정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영어로는 agriculture, farming 등으로 해석된다. ‘농업’을 보면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산업. 논밭 농사 뿐만 아니라 과수업, 원예업, 양잠업, 양봉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영어로는 agriculture, farming으로 역시 농사와 다르지 않다. 다만 구분을 한다면 agricultural industry라고 해석 할 수 있다.

국어사전이 이렇게 농사와 농업을 구분해서 설명한 이유는 뭘까. 국어학자들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농사와 농업을 분명히 가르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통 ‘농업’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가르쳐 왔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자본주의 경제의 틀 안에 있기에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 틀 안에서 모든 생산물은 곧 상품(goods)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물건들은 모두 팔기 위해서 만들어낸다. 그러니 그것은 분명 상품이다.

그렇다면 농사를 통해 생산된 물건들이 모두 상품인가. 그렇지 않다. 상품이 아닌 것이 엄청나게 많다. 자기가 먹기 위해 재배된 것이 그렇고 이웃과 나누기위해 재배된 것 또한 그렇다. 이들은 상품이 아니다. 현재의 우리 농촌이 모두 상품을 재배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은 농사와 농업을 확연하게 구분해야 할 것이다. 농사는 논이나 밭에 씨를 뿌리고 가꾸어 거두는 등의 농작물 재배 과정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분배하고 이용하는 것과 그것에 담겨있는 정신을 담아내야 한다. 반면에 농업은 토지와 자본을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상품을 얻어내는 산업이라고 분명히 못을 박아야 한다.

우리 농사의 역사는 1만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세금내고 지주에게 절반 빼앗기는 가혹한 삶 속에도 농민은 문화를 발전시키며 삶을 이어왔다. 농촌엔 인심이 후하다는 말은 농촌이 상품 경제의 틀 안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구마 하나가 개당 얼마로 치환 되는 순간, 즉 상품이 되는 순간, 농촌도 자본의 논리에 떨어지게 된다. 농촌은 서로 나누고 연대하는 가운데 유지되고 발전 되었기에 자본의 논리가 통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농업이란 용어는 자본주의와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1899년 고종이 농상공학교를 개설하도록 하는 조칙을 내리고, 5년 후 1904년 농상공학교를 개설하면서 농업이라는 용어가 도입됐다. 이후 한일 병탄을 거치면서 농업 학교들이 전국에 세워지는데, 이는 일제의 수탈정책의 일환으로 농산물 생산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를 가진 일이었다. 학생들이 똥통을 지고 거름을 주는 모습 때문에 똥통학교로 천대를 받았지만, 이들에 의해 일제는 수탈 목표를 순조롭게 이룩했다.

식민지 수탈은 상품 경제 틀 안에서 이뤄졌다. 모든 농산물이 교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를 통해 토지자본을 확대한 거부 지주들이 나타나고 농산물은 생명, 연대의 산물에서 상품으로 변질 되어버렸다.

이경해 열사가 멕시코 칸쿤의 WTO 각료회의장 밖에서 'WTO가 농민을 죽인다'는 문구를 목에 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3.09
이경해 열사가 멕시코 칸쿤의 WTO 각료회의장 밖에서 'WTO가 농민을 죽인다'는 문구를 목에 걸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03.09ⓒ기타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 WTO각료회의장 앞에서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자결한 이경해 열사는 “농산물은 교역의 대상이 아니다”, “WTO가 농민을 죽인다(WTO kills farmers!)”는 구호를 외쳤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농민을 죽인다니 무슨 말일까? 농산물은 교역의 대상이 아니란 말은 또 뭐란 말인가?

이것은 단순히 그의 주장만은 아니다. 당시 전세계 농민들 앞에 닥친 공통의 문제였다. WTO는 농산물을 국제 교역의 틀 안에 넣어버렸다. 세계 모든 나라들은 빗장을 풀고 농산물을 교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농산물 시장을 열어야 하며 그 시장은 자본의 논리에 충실해야 하고 어떠한 경우라도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농산물을 이미 상품으로 교역하던 미국과 몇몇 나라를 빼고는 모든 농민들이 들고 일어날 일인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였다. 세계 농민들이 모여서 WTO를 반대하는 구호를 외쳤고 각료회의는 무산됐지만, 이경해는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물론 세계 농민들의 가슴에는 이경해 열사가 뿌린 “농산물은 교역의 대상이 아니다”란 철학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2020년 11월 말, 인도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30~40만명의 농민들이 트랙터와 자동차를 끌고 수도 뉴델리로 향하다가 뉴델리 외곽 고속도로를 봉쇄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죽을지언정 자리를 떠나지는 않겠다고 계속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인도 농민들의 분노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인도 정부가 민간자본에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려는 법안을 통과 시켰기 때문이다. 전체 인도 인구의 절반이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산물 시장 개방은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인도 농민들은 가난한 빈농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국가가 농산물 최저가격보장 정책을 60여 년 동안 유지시켜, 농사를 지으며 근근히 삶을 이어왔다. 코로나19로 직장을 잃은 노동자들이 그나마 고향인 농촌으로 돌아와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도 농촌이 살아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인도 정부가 더 이상 농민들을 보호하고 가격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배경에는, 다국적 농산복합체의 압력과 IMF에 굴복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인도 경제학자들은 정부의 이번 정책으로 정권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인도 정부는 농민들이 정책을 오해하고 있다고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인도 농업의 자본시장 개방은 일부 농민들만 살아남을 거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3~4억명이 되는 농민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것이다. 어찌 가만히 앉아서 죽을 날을 기다릴 것인가?

우리나라 농촌이 농사가 농민이 오늘과 같이 종말을 고하게 된 것은 그동안 정부 정책이 시장개방에 초점을 맞추어 왔기 때문이다. 시장 개방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더라도, 원조 곡물을 들어온 것(PL480, 저개발국에 식량을 제공하는 근거가 되는 미 공법 480호에 의해 이루어졌다)이 우리 농사를 벼랑으로 내몬 장본(張本)인 것은 짚고 넘어가자.

배고픈 나라에 잉여농산물을 원조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라 본다. 당장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밀가루 한 줌은 엄청난 생명의 은혜일 것이다. 그런데 자본은 댓가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밀가루 맛에 길들여지고 대량 생산으로 가격이 낮아진 밀가루를 먹게 된다. 이는 우리땅에서 자라던 밀이나 보리 등이 농토에서 사라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밀가루 시장은 곡물 메이저 회사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게 된다. 그렇게 우리농사의 궤멸은 예정돼 있었고, 정부수립 후 60여 년 간 우리농사는 자본 시장에 강제 편입되었다.

원조 밀가루 포대
원조 밀가루 포대ⓒ사진 = 코베이 옥션 홈페이지 물품 사진 갈무리

이미 자본에 편입되어버린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농촌을 유지하는 것은 쌀농사이다. 쌀농사가 무너지면 농촌은 그야말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쌀농사가 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시장 가격과의 차이를 메워주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것이 ‘쌀직불금’이다. 쌀직불금은 면적대비로 지급하는 ‘직접지불금’과 ‘변동직불금’이 있다. 이 제도가 농촌의 빈익빈부익부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자, 문재인 정부는 ‘공공지불금’으로 변경했다. 즉 0.1ha 농가와 30ha농가 사이의 격차를 줄여보겠다는 정책이다. 하후상박(下厚上薄)의 논리이다. 이렇듯 자본과의 대결을 피해가는 방법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요즘 농촌에 회자되는 말이 ‘6차 산업’이다. 생산 뿐 아니라 서비스까지를 아우르는 말이다. 농사에 뜻을 둔 젊은이들이 가능성을 타진하고 또 일부는 창조적 아이디어로 시장에 뛰어 들고 있다. 정부도 그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며 홍보를 하고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은 일반화 되어야 한다. 6차산업 진흥책을 일반화 할 수 있는가? 농촌의 제반 여건들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구조이다. 그러니 그 정책은 틈새 전략에 불과한 것이다. 즉 자본시장에 노출된 농사를 부여잡고 헤쳐 나갈 사람은 6차산업이라는 틈새가 있으니 도전해 보라는 무책임한 정책이다. 정책의 일반화를 통해, 농사를 시장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하여 식량주권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와는 거리가 먼 정책일 뿐이다.

이 땅의 농사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쳐 봤자 시장이라는 밀림 속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땅으로부터 부여받는 모든 생명적 에너지가 순환하는 일은 이제 사라졌다. 약육강식의 시장만이 사람들의 생명을 놓고 흥정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우리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아니다. 자본은 자신의 반생명적 모습을 생명적 가치로 포장하여 확산하기에 우리는 속았다. 지금도 슈퍼마켓을 들락대는 소비자들이 속을 수밖에 없는 싸이클을 돌리고 있다.

이제부터 자본이 우리 농사를 생명과 평화에 연대한 농촌공동체를 어떻게 종말로 이끌었는지, 속속들이 알아보려고 한다. 그동안 농사를 지으며 느꼈던 부분과 농민운동의 경험들이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주요한 힘이 될 것이다. 노력한다면 지난 70년간 우리 정부의 농업정책 자료들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앞으로 격주로 일 년 동안 게재할 작정이다. 이야기가 거칠고 전문용어가 나와 읽어내기에 어려울 수도 있겠다. 읽어가면서 지적을 해주시면 바로잡아나가도록 할 것이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간다는 마음으로 임하겠다. 신축년 새해에도 여전히 코로나19가 우리를 괴롭힐 것이지만 이겨내리라 본다. 자본의 논리가 아닌 생명과 평화의 연대를 만들어낸다면…….

- 2021년 1월 귀여재에서, 한도숙.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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