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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나는 왜 쓰는가’
조지 오웰 산문선
조지 오웰 산문선ⓒ민중의소리

소설 <동물농장>, <1984년> 등으로 잘 알려진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글을 쓰는 데에는 생계 수단의 필요성을 제외하고, 순전한 자기만족,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있는 그대로 보고 진짜 사실을 나중을 위해 저장하려는 욕구), 정치적 욕구(세상을 특정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어떤 사회를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하는 욕구) 등, 네 가지 주요 동기가 있다고 언급했다.

또 그러한 글쓰기의 동기는 작가마다 다르고, 같은 작가라 해도 상황에 따라 그 비율이 때때로 달라질 것이며, 오웰 자신은 처음 세 가지 동기가 훨씬 큰 사람이었으나 일련의 경험과(그는 24세까지 6년 동안 버마에서 인도 제국 경찰로 일한 후, 런던과 파리의 하층민들과 함께 부랑자 생활을 한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건들 때문에(히틀러 등장, 스페인 내전 등) ‘저울이 반대쪽으로’ 기울었고, 1936년 이후의 작품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 사회주의에 찬성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했다. (오웰은 1936년 스페인 내전에 마르크스주의 통일 노동자당 소속 의용군으로 참전한다.)

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의 에세이를 읽기로 한 것은 아마도 좋은 산문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했거나,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엇이었든 그의 에세이는 그와 같은 욕구를 만족시켜줄 만한 것으로 정평이 난 듯 했고, <조지 오웰 산문선/열린책들/허진 옮김>의 역자 역시, ‘오웰의 글은 에세이에서 시작하고, 그의 에세이는 경험에서 시작한다’라는 세간의 평과 함께 오웰 특유의 ‘불쾌함에 직면하는 힘’이 경험과 주제와 부조리한 상황에 처했던 작가의 슬픔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고 해설했다.

실제로 식민지 경찰과 부랑자 생활의 경험을 담은 몇 편의 에세이에서, 그것이 역사적 충동의 동기에서 쓰였든 정치적 욕구에서였든, 읽는 독자로서는 식민지 국가의 피지배 민중의 실상이나 유럽 지배구조의 도시 하층민을 향한 비인격적인 모습, 제국주의의 혜택을 받아 살아가는 백인 청년으로서의 일면 태생적 딜레마 등, 그 ‘정직한’ 불쾌함을 대면할 수 있었다. 그의 에세이를 통한 그러한 대면은 70여년이 지난(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30년에서 1940년 말에 걸쳐 쓰였다) 현재의 지식층과, 이 시대와 사회의 불쾌한 현실을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오웰이 버마의 어느 마을을 담당하는 제국의 경찰이었던 당시의 일화를 쓴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에서, 발정 나 사슬을 끊고 도망쳐 마을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이내 발정이 가라앉아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코끼리를 향해(나는 코끼리를 쏘아야 했다. 나는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았다. -에세이 중) 죽을 때까지 총을 쏘아야 했던 강요된 정체성에 직면하여(사힙 -친구, 주인-은 사힙처럼 행동해야 한다. -에세이 중), ‘독재자로 변할 때 그가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밖에 없음’을 깨닫는 장면이 그렇다.

부랑자 생활을 하던 1929년, 그는 폐렴으로 파리의 무료 공공 병동에 입원한다. 환자 대부분이 노동자와 극빈자였던 그곳에서 43번, 57번등으로 불리며 ‘하나의 번호’에 불과했던 그들의 병든 몸은 의대생들의 ‘실험대상’이 되거나 존엄 없는 죽음으로 폐기물 ‘처리’된다. ‘아무도 곁을 지키지 않고 관심도 기울이지 않아, 아침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짐승 같은 죽음’에 대한 에세이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죽는가>를 읽을 때라든가. 애써 무엇과 연결시키려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되는데, 오웰의 에세이에 비추어 보는 현재는 더 참혹하게 느껴진다.

파리 X병원의 공공 병동은 또 다른 거대한 공공 병동으로, 폐기물 같은 그들의 죽음은 차마 문장으로 옮겨쓰기 힘든 이곳의 어떤 죽음들로 치환된다. 어제도 그제도, 복도에서 욕실에서 공장에서 창고에서 홀로, ‘아침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게 되는’ 죽음. 살아있는 그들의 몸은 치유되지 못한 채 자본의 ‘실험대상’이 되는. 선동도 아니고 과장도 은유도 아닌 엄연히 벌어지고 유지되는.

생각은 그쯤에서 멈추지 못하고 그 죽음들을 지켜보는 ‘오웰들’, 코끼리를 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총구를 막아설 자유를 스스로 구속한 오웰들, 직면하지 못하는, 기록하지 않는, 다만 ‘사힙’의 위치에 있는 무수한 오웰들을 떠올린다. 다행히 영국 청년 아서 블레어, 작가 조지 오웰은 직면하고 통찰하고 기록했다.

좋은 에세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떻게 쓸 수 있는 것일까.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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