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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가시 없는 고슴도치 ‘마봉이’에게 모든 걸 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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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대형 서점의 베스트 셀러 섹션을 휩쓴 트렌드는 ‘힐링 에세이’였다. 유연한 글쓰기로 사람들과 교감하는 에세이 본연의 의도와는 달리 ‘힐링’을 달고 나온 에세이들은 독자에게 어떠한 목적성을 가지고 접근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괜찮은 상태’와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할 것’을 주문했다. 괜찮아, 수고했어, 잘 될거야… 이는 사회의 심리가 화자도 청자도 상황도 맥락도 없는 모호한 파편적인 단어들에 기대어야 할 만큼 약해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성장의 길이며 성장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압박까지 이중고를 겪는 청년 세대를 두고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피로와 감정을 씻겨내리기엔 역부족이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에 무턱대고 기대는 게 얼마나 위험한 심리인지 청년들은 모른다. 우울을 끌어안고 공허하게 괜찮아, 라고 주문을 외우는 건 감정을 회피하고 방치하는 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청년들은 이를 모른다.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김철수 기자

‘홈트는 하는데 왜 마음은 안 챙겨?’
청년의 ‘감정’에 집중한 ‘마링’ 백승엽 대표

“치료받을 정도는 아냐, 치료받으면 기록에 남던데? 술 먹고 자고 나면 나아져. 학부생 때 이런 식으로 정신 건강을 방치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건 어디서 배우질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의 해소 방법은 회피일 뿐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청년들이 자신들의 정신 건강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마링’은 온·오프라인 정신 건강 콘텐츠를 개발하고 유통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백승엽 대표(25)는 21살 때 학부 선배의 권유로 ‘마인드 링크’라는 사업을 함께 시작했다.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라는 의미다. 초창기에는 심리상담사 매칭 플랫폼으로 개발되었다. 이후 정신건강 인식개선 프로젝트들을 거쳐 정신 건강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전환했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그는 비전공자 친구들이 자신의 마음 건강에 얼마나 취약한 접근성을 갖고 있는지 지켜봤다. 가격이 비싸 상담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병원 치료에 회의적인 경우도 많았다. ‘홈트는 하는데 왜 마음은 안 챙겨?’, 마링이 크라우드 펀딩에서 내세운 카피라이팅은 이러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홈 트레이닝 등으로 몸 건강을 단련하는 사람들은 늘었지만 여전히 감정을 단련하는 일은 뒷전에 둔다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제가 고등학생, 대학생 때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서적이 핫했어요. 덕분에 고통을 감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알야아 한다. 그것이 성숙한 것이다, 라는 기조가 청년들에게 깔려 있었죠. 물론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아프면 환자지’ 같은 말들요. 저 역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청년들이 어떤 방법을 통해 이렇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김철수 기자

가시를 세우지 않는 고슴도치 ‘마봉이’

마링의 시그니처 캐릭터는 고슴도치 인형 ‘마봉이’다. 고슴도치들이 가시 때문에 가까이 붙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타인과 가까워지길 원하지만 일정 거리에서 선을 긋는다는 심리학 용어 ‘고슴도치 딜레마’에서 캐릭터를 착안했다. 대신 백 대표는 고슴도치들이 서로 붙지 못하는 원인인 가시를 제거하고, 부드러운 솜과 털을 붙여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사려깊은 고슴도치’ 인형으로 탄생시켰다.

“정서적으로 의지하고, 내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애착 매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울, 불안 등의 부정 정서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생겨요. 마봉이는 말을 할 순 없어요. 제가 마봉이 세계관을 그렇게 정해놨거든요. 섣부른 조언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밥은 그 사람의 ‘감정’이에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 사람이 마봉이에게 더 많이 이야기하고 나눌수록 배부른 거죠.”

그렇다고 단순히 귀여움만 내세우는 건 아니다. 마봉이를 끌어안고 있을 땐 어느 정도의 ‘글쓰기’가 필요하다. 함께 보내주는 ‘감정 저널’이라는 수첩에는 하루동안의 감정을 되돌아보며 ‘간직하고 싶은 것’, ‘잊고 싶은 것’ 등을 적는 칸이 있다. 간직하고 싶은 것은 좋아하는 펜으로, 잊고 싶은 것은 제공되는 기화성 펜으로 적는다. 그리고 마봉이의 앞주머니에 6시간 가량 넣어두면 어느새 잊고 싶은 건 날아가고 없다.

'마링'에서 함께 판매 중인 감정 굿즈 패키지(왼쪽)과 마봉이.(오른쪽)
'마링'에서 함께 판매 중인 감정 굿즈 패키지(왼쪽)과 마봉이.(오른쪽)ⓒ마링

“마봉이에게 부여한 역할은 애착 매개도 있지만, 글쓰기를 돕기 위한 역할도 있어요. 글쓰기는 정서를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구별하고, 이해하는 ‘정서 인식 명확성’을 강화하는 행위거든요. 인지행동을 치료할 때도 많이 쓰는 기법이에요. 내가 어떤 일에 화가 났고, 얼마나 화가 났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잘 쓰는 사람일수록 우울, 불안 등의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이 더 강해져요. 그래서 애착 매개와 글쓰기를 접목해 자신의 마음 건강을 타인의 도움 없이 일상 생활 속에서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으로서 마봉이를 제안하고 있죠.”

백 대표의 마음을 움직인 후기도 많다. 5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고 투약하며 생활하던 사람이 반신반의의 마음으로 마봉이를 들였다 보조적으로 도움을 받은 후기, 현직에서 활동하는 심리상담가가 스트레스를 다루는 데 마봉이와 ‘감정 저널’이 도움이 됐다며 내담자들에게 추천하겠다는 후기 등이 그 사례다.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의 사회적 조합에서 주부들을 위해 마봉이와 감정 저널 100개 분을 구매해갔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인형으로 소비될 수도 있어요. 몰랐던 건 아녜요. 지난 1년 간 ‘인형만 따로 안 파세요?’라는 문의를 정말 많이 받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마봉이를 산 열 명 중 한두 명이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회복한다면, 저는 그 한두 명을 위해 열심히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인형이 귀여워서 사는 분에게도 고맙지만, 제가 바라보는 소비자들은 글쓰기와 마봉이를 통해 마음 건강을 회복하는 분들이세요.”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김철수 기자

감정을 드러내면 ‘사회성 없는 사람’ 되는 현실
“감정 돌보기가 자기계발의 영역 되었으면”

현재 마링은 마봉이를 필두로 오프라인 워크숍인 ‘감정 살롱’, 유튜브 채널 ‘비쁠심리학’ 등을 운영 중이다. ‘감정 살롱’은 4~6명의 인원이 모여 감정 살롱의 수첩을 이용해 글쓰기를 진행하고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자리다. 학사 이상 수료한 도우미들이 진행을 돕는다. 그 과정에서 전문적으로 상담이 필요하다고 사료되면 치료를 권하기도 한다. 모든 지위와 사회적 역할을 내려놓고 본연의 감정을 헤아리는 시간에 청년들의 만족도도 높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지위나 역할에 따라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잖아요. 사실 이건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 개인이 다방면으로 맞추고 있다는 거거든요. 여기서 감정은 개인이 그 지위에 맞게끔 자신을 최적화 하는 과정에서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어요. 직장 상사가 감정적으로 대하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잖아요. 또 가정에서도 감정을 격하게 표현하면 사이가 멀어지기도 하죠. ‘사회생활 잘한다’라는 평도 감정 안 섞이고 깔끔한 사람을 뜻하잖아요?”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
온·오프라인용 심리 콘텐츠 개발 스타트업 업체 ‘마링’ 청년 대표 백승엽 씨가 28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주)마링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01.28ⓒ김철수 기자

“이런 사회에서 감정은 계속 감춰져야 하고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본연의 원초적인 감정들은 밀려나고, 혼자서 보존해야하는 것으로 취급되죠. 그렇다고 제가 막 감정을 사회에서 드러내라고 말할 순 없어요. 다만 사회에서 요구되는 직위와 내가 오롯이 분리됐을 때, 방임해왔던 감정의 역동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거죠. 마봉이는 그런 훈련을 보조하는 역할이고요.”

결국 마음을 돌보는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고 백 대표는 강조한다. ‘힐링 에세이’를 읽으며 괜찮다는 말로 다독이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감정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불편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끌어내고 회복해나가는 근육이다.

“마봉이와 마링이 전문적 치료의 역할을 겸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는 그저 마음을 돌보는 일이 터부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요새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많이 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후순위가 되는 게 마음 건강 돌보기예요. 자존감을 지키는 일 같은 거요. 마음을 돌보는 것이 자기계발의 영역으로서 자리잡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청년들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져 연대하고, 응집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허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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