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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수북통신] 눈 오는 아침, 숙이들은...

눈이 많이 내리는 아침에 한나는 ‘숙이’들을 생각했다. 요즘 딸을 낳아도 누가 영숙이, 경숙이, 미숙이라고 이름 지을까. 그 시대엔 어쩌면 그리도 숙자 돌림 여자아이들이 많았는지. 한나의 본명도 그리 세련된 이름은 아니지만, 하여간 한나는 그 시절, 그 이름들 중, 숙이들을 생각했다. 먼저 친정언니 정숙이. 61년생 정숙이는 고등학교를 나와 고속버스 안내원(안내양)일을 하다가 안내양 두고 운행하는 버스시대가 끝나자 양복기술이 있어서 식구들 밥 굶길 일은 없을 것 같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한량. 정숙이는 나이 서른 무렵에 시작해 60이 다된 지금까지 ‘야쿠르트 아줌마’로 살며 아이 둘을 키웠다. 그 다음 생각나는 숙이는 은숙이. 육촌언니 은숙이. 은숙이 엄마는 아기를 낳다가 뭔가 잘못되어 아기만 살고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어린 은숙이는 아기를 돌보다가 아기가 어느 정도 크자 서울로 식모살이를 갔다. 세상이 식모를 두고 사는 시대가 끝나자 은숙이는 공장에 들어갔다. 공장에서 돈을 벌어 고향의 동생들을 키웠다. 동생들이 서울로 오자 또 동생들을 거두었다. 그러다가 저처럼 가진 것 없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가내수공업, 파출부, ‘식당이모’ 등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제 아이들을 키웠고 이제 은숙이도 환갑이 넘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된 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울먹이며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1.08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된 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울먹이며 발언을 하고 있다. 2021.01.08ⓒ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점방집 딸 점숙이는 62년생. 동생을 보느라 국민학교 입학을 2년 늦게 64년생 동생하고 함께 했다. 국민학교 졸업도 하기 전 점숙이는 마산으로 갔다. 설 명절 끝나고 마산 한일합섬 차가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모집한 여자아이들을 싣고 갔다. 점숙이는 낮에는 공장에 다니고 밤에는 산업체 부설 고등학교를 다녔다. 점숙이는 공인중개사를 하면서 나이 마흔이 넘어 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가 공부의 한을 풀었다. 그리고 미숙이. 용균이 엄마 김미숙. 용균이가 그렇게 험하게 엄마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버리지만 않았어도 용균이 엄마 김미숙은 수많은 김미숙들 중 하나로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용균이 엄마 김미숙은 지금 용균이를 잃고 용균이 엄마에서 수많은 용균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세상이 김미숙을 그렇게 만들었다.

라디오에서 여의도 엘지트윈타워에서 청소일을 하다가 해고된 여성노동자를 인터뷰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해고된 ‘여사님’들 연령대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60대 초 중반이라고 노조위원장 여사님이 대답했다. 그분들 중 누군가는 또 숙자 돌림일 것이다.

정숙이, 은숙이, 점숙이처럼, 60대 아줌마들. 정숙이가 야쿠르트 카트를 밀고 가면 사람들이 아줌마, 부른다. 병원에 가면 어머니, 라고 불리기도 하고 식당에서 이모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길에서 보면 또 여지없이 아줌마로 불리는 60대 노동자들이 2020년 마지막날에 집단해고 되었다. 회사는 다른 이유를 대지만, 이유는 ‘노조 했다고’.

10여년 전 한나는 우연히 서울 광화문 어느 빌딩 화장실에서 청소일을 하는 분들이 밥 먹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 빌딩엔 고급 식당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청소노동자들은 점심을 화장실 한 켠 사물 정리하는 공간에 종이를 깔고 앉아 먹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바로, 그래서 노조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돈 가진 고용자들이 노동자를 사람대접 안 해서,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노조 만들었다고. 그리고 노조 만들면 해고가 기다린다. 이것은 1970년이나, 1980년이나, 1990년이나, 2010년이나, 2020년이나 똑같다.

그녀의 이름은 진숙이. 1960년생. 정숙이, 은숙이, 점숙이, 미숙이처럼 진숙이. 그 시대에 태어난 그 많은 ‘숙이’들 중의 진숙이. 80년에 우리나이로 스물한 살. 한나보다 세 살 많은 진숙이언니. 그 또래 다른 숙이들처럼 진숙이도 ‘배움에 목이 말라’ 상급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못했다. 버스 안내양도 해보고 신문도 팔아보고 우유도 배달해보고.... 열여덟 살짜리가 안 해본 일이 없다가 직업훈련원을 들어갔다. 직업훈련원에 들어간 진숙이는 당차게 2급 용접자격증을 땄고 그 기술로 국영 회사인 부산 영도 조선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일한 5년이 진숙이에게는 가장 빛나던 시기. 그리고 진숙이는 노조일을 했다고 ‘대공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무려 세 번이나. 그리고 해고. 2020년으로부터 35년 전이다.

눈 속을 걷는 ‘희망 뚜벅이’ 김진숙 지도위원
눈 속을 걷는 ‘희망 뚜벅이’ 김진숙 지도위원ⓒ장영식 사진작가

진숙언니가 노조활동 했다고 박종철 학생이 고문받다 죽은 바로 그곳에서 고문받고 있을 때 한나는 서울 정릉 가정집을 개조한 공장에 있었다. 그때 그 공장에서 일하던 아가씨들. 아가씨들이라니? 그때는 그랬다. 신문이나, 텔레비전같은 데서는 여공이라 불렀고 공장 안에서는 아가씨라고 불렀다. 정말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열다섯, 열여섯, 스무살, 스물한살짜리들을 다 아가씨라고 불렀다. 공장 관리인들이 그렇게 부르니 아가씨들끼리도 서로를 그렇게 불렀다. 영숙이 아가씨, 진숙이 아가씨, 이봐요, 정옥이 아가씨, 그런 식이다. 진숙언니가 조선소에 입사했을 때, 화장실이 없었다고 했다. 아니, 화장실은 있었다. 그러나 그 화장실은 관리업무를 하는 사람만 썼다고 한다. 생산직들은 화장실도 아닌 화장실에서 일을 봐야 했다고. 그래서 신입이었던 진숙언니가 화장실 아닌 화장실의 오물을 치워야 했다는 것인데, 한나가 일했던 정릉 공장에 화장실은 있었지만 목욕실이 따로 없어 아가씨들은 동료가 일을 보는 공간에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어야 했다. 말이 기숙사지 방 한 칸에 아가씨들을 무한대로 ‘집어넣었다’. 한나는 그 기숙사방에서 사는 동안 몸을 제대로 펴고 자 본 적이 없다. 기숙사문제를 해결하려고 나중에 누군가 노조를 만들려고 한다는 말만 들었는데 정작 노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노조 만들자고 한 ‘아가씨’가 야간대학에 합격해 퇴사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그것이 자진퇴사가 아니라 해고였을지도 모른다는 짐작만 해보았을 뿐이다.

이 엄동설한에 영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진숙언니, 김진숙이 지금 아픈 몸으로 사력을 다해 명예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다. 35년 전, 김진숙을 노조일 한다고 ‘용공분자’로 몰아 고문했던 국가가 실은 김진숙을 해고한 당사자일 터다. 노동자를 해고할 때는 잘도 나서더니 복직문제는 노사 간의 문제라고 국가는 발을 빼는데, 30년이 지나고 40년이 다 되어도 노동자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이 변하지 않는 국가에 사는 ‘숙이’들의 안부를 묻는 아침, 무심한 눈만 내린다.

공선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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