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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종말] 농민만 봉인가? 소비자도 봉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은 2015년 7월 15일 창녕농협 공판장에서 양파, 마늘 TRQ(Tarrif Rate Quotas, 저율관세할당물량) 조기 도입과 증량을 발표한 정부 정책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양파를 내다 버렸다. 이들의 주장은 물가인상의 주범으로 농산물을 지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발표된 정부 정책은 ‘수입’ 외에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으로, 농민들은 “명백한 수급정책 실패”라며 “그동안 농업인들이 TRQⁱ에 대해 민감하게 생각하고 반발해왔음에도 안이하게 TRQ 증량 방침을 밝힌 것은 농업인을 죽이고 농업기반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일은 한국 농업에서 비일비재한 일이다. 2015년도 양파, 마늘의 작황은 100년만의 가뭄으로 최악인 상태였다. 가뭄이든 홍수든 자연재해가 나면 일단 농산물은 생산량이 줄어든다. 게다가 품질은 최악으로 떨어진다. 좋은 가격은 상품이 되는 것에만 인정된다.

이렇게 되면 농가는 빚더미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시장에도 가격상승이라는 문제가 나타난다. 소비자는 덜 먹을 수라도 있지만, 농가는 농부가 생사를 고민할 정도의 극단적 상황을 피할 수가 없다. 이렇게 100년 만의 한해(旱害)는 농가 경제를 파탄냈다. 그런데 정부는 농가 경제 복구 대책을 내놓지는 않고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이라는 정책만 쏟아냈다.

농식품부가 2015년 7월 2일 발표한 ‘주요 수급불안 품목 수급안정대책’ 보도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양파는 수급조절 매뉴얼에 따라 지난 6월 하순 부터 계약재배물량 조기출하를 시행하며, 마늘은 비축물량(2천톤)을 방출하고 있다. 생육후기 고온과 수확기 고온·가뭄 영향으로 수급부족이 예상되면서 (평년수요량 대비 양파는 140천톤, 마늘은 41천톤 이상 부족) ‘가수요가 유발’되고, 높은 가격도 지속되고 있다”고 동향을 분석했다.

농식품부는 가수요 차단을 위해 “TRQ 조기도입 공고(6.29)와 7월중 양파·마늘 부족물량 대상으로 TRQ를 증량할 계획”이라면서, “이러한 조치에도 양파·마늘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 경우, ‘민간 직수입물량 확대’ 등의 추가 대책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발표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소비자 가격 안정을 위해 전국 농협 하나로마트 등을 통해 양파·마늘·배추·무·대파·감자 등을 할인판매 행사를 추진(7.1∼13일 전국 350여개 매장에서 시중가 대비 20∼50% 할인행사 추진(가격불안시 연장)하고 있다”면서 농산물 가격을 낮추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을 보였다.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및 문재인 정부 농정 규탄 전국생산자대회’에서 농민들이 양파를 쌓고 있다. 2019.07.19(자료사진)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농산물값 폭락대책 촉구 및 문재인 정부 농정 규탄 전국생산자대회’에서 농민들이 양파를 쌓고 있다. 2019.07.19(자료사진)ⓒ김철수 기자

그렇게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농가 경영안정을 위한 정책이 뒤따라야 할 터이지만, 눈을 씻고 들여다보아도 농민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를 고려한 정책이 보이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올라가면 정부가 장바구니 물가를 낮추어야 한다고 분노하지만 싼 가격의 농산물이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가면 더이상 득실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이제 도시의 소비자들도 정부의 ‘저농산물 가격정책’이 과연 이익으로 돌아오는지를 심각하게 계산해 봐야 한다. 실제로 가계경제에 부담이 되는 교육비와 통신비, 자가용에 쓰이는 기름값, 주거비, 의료비 등은 여전히 비싼 편이다. 실제 OECD가입국 중 상위그룹에 드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농산물 값은 OECD가입국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농산물 수급 불안정에 대해 민감하게 과잉반응 하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관료들이 가진 인식의 바탕을 확인 할 수가 있다. 우리 농사의 종말을 만들어 낸 저간의 정책과 관료들의 세계관을 만들어낸 바탕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살펴보자.

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작성 지침(안) 및 제1,2차 계획의 실적과 과제 보고서 일부를 보자.

보 고 서
경제 수석비서관 - 비서실장 - 대통령(7/11 재가 서명)

보고번호:제708호 1974.7.10. 대통령 각하
보고관:이선희
제목: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작성 지침(안) 및 제1,2차 계획의 실적과 과제

1969년 11월 26일 “경제 계획 실무위원회”에서 통과된 <1>제3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작성 지침안 및 제1차, 제2차 5개년 계획의 실적과 앞으로의 과제에 대하여 다름과 같이 보고합니다.

1. 제3차 계획 작성 지침안 요지
가. 제3차 5개년 계획은 수출의 획기적인 증대와 농업의 혁신적 개발에 기본 목표를 둔다.
나. 중점 목표 (목표년도 1976년) 1) 상품 수출 35억$
2) 식량 자급, 농어민 소득 증대 사업 추진, 농업의 기계화 촉진
3) 중화학공업 촉진
4) 전력, 교통, 보관, 하역, 통신 등
의 사회 기초 시설의 균형 발전
5) 고용 확대, 과학 기술 향상, 기술훈련→생산성 제고
6) 주택, 위생 시설 확충
7) 농어촌의 보건 및 문화 시설 충실화와 전화 사업 확충
8) 수출 산업 단지 등 개발단지 적극 조성, 공업과 인구의 지방 분산
9) 경제 성장 연평균 8.5%, 인구 증가율 1.5%로 억제.
...(후략)...

오래된 이야기지만 다시 정리해보면 이렇다. 1961년 5.16 쿠테타 후, 박정희는 자신이 만주에서 보고 배웠던 바대로 경제 개발 계획을 내놓았다. 그리고 1,2차 계획 10년간의 사업을 평가한다. 자신감을 얻은 박정희는 3차 계획을 수립한다. 그 중심은 ‘수출’이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뭐든 만들어 수출해야 했다. 매해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5·16쿠데타 때 발표된 이른바 혁명공약에는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다 한다’는 표현만 있을 뿐 수출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1962년과 1963년의 여러 연설에서도 수출에 대해선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1960년대 초반 수출지원정책은 1950년대 후반의 각종 지원정책을 정비 내지는 강화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1964년 6월 수출진흥종합시책을 마련했고, 같은 해 10월 5일 박정희는 자립경제의 기초를 확립하는 제1과제가 바로 수출진흥을 통한 외화 획득이며 경제시책의 중요한 목표를 ‘수출제일주의’로 삼고 있다고 역설했다. 수출지원정책 중 1950년대부터 존속한 지원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1964년과 1965년에 새로 추가된 것들이다.

민정(民政) 첫 해이던 1964년 전반기는 혼란과 시련이 끊이지 않던 시기였다. 이를 진정시킨 후인 1964년 후반기, 1965년 초에 이르러서야 수출지상주의 깃발을 확고하게 세울 수 있었다. 박정희는 1965년 연두교서에서 ‘증산-수출-건설’이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처칠 총리가 외친 ‘수출 아니면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호소를 인용했다. 그렇게 국민을 한곳으로 모아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썼다.

1974년 쌀 생산량 3000만석 돌파기념 행사 모습
1974년 쌀 생산량 3000만석 돌파기념 행사 모습ⓒ사진 = 농촌진흥청

그 신화를 위해 잃은 것도 너무 많았다. 그중 심각한 것이 ‘농업’이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식량자급과 농업의 기계화 촉진이 주요 목표로 등장한다. 식량자급이야 누구라도 원망하지 못 할 일이다. 그렇지만 분명히 그늘도 있었다. 식량 자급을 달성하기 위해 바다를 메워 대규모 농지를 조성했고, 기존의 농지를 기계화가 가능한 경지로 바꿔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들이 삶터를 잃고 도시로 떠나야만 했다.

5천년동안 유지됐던 농사, 농촌, 농민의 해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3차 경제 개발 계획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값싼 노동력이라는 필요 조건이 존재했다. 농촌의 인력은 값싼 노동력이었다. 그것이 계속 공급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농산물가격정책’ 또한 필요조건이 되었다. ‘저농산물가격정책’은 농가경제를 흔들었고, 농가는 그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파산했고, 업을 잃은 농민은 저임금 도시 노동자로 이동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값싼 노동력은 노동시장의 필요조건을 넘어 충분조건이 되었다. 남아도는 노동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산업예비군이 충분하니 자본은 노동자와 갈등할 이유가 없다. 자본가와 기업은 더 값싼 노동자를 고용해 경쟁력을 키우고 자본을 축적하는 기회를 가졌다.

지난 수십년 간 진행된 일관된 정책 속에서 이득을 본 것은 결국 자본가들 뿐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소비자 물가지수는 먹거리에서 판가름 난다고 봐야 한다. 그 먹거리가 저농산물 가격정책의 결과물인 농산물 아닌가. 달동네 벌방을 전전하며 값싼 농산물로 연명하며 노동해야 했던 노동자들은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스스로 봉을 자처한 있는 꼴이었다.

‘저농산물가격정책’의 시발은 남덕우 전 경제기획원 장관이다. 그는 서강대 경제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1969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1974∼1978년 경제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며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주도했다. 이 당시 거론된 이론이 ‘비교우위론’이었다. 농업에서의 비교우위론은 우리나라같이 경지 면적이 좁은 나라는 총생산력이 떨어져 경지가 넓은 나라에 비해 경쟁에서 뒤진다는 의미로 적용됐다.

그는 지난 2007년에도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그가 경제기획원을 맡았을 당시 내놓은 농업개발 계획은 전체인구 중 5~7% 수준의 농업인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농업 개발보다는 산업 사회를 위해 농촌 희생을 담보해야한다는 선언과 같은 말이었음을 그때는 많이들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박정희의 경제개발을 주도한 세칭 ‘서강학파’의 시초이자 대부로 꼽히는 남덕우가 한국 농업의 오늘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서강학파의 끈질긴 ‘개발 신화’에 우리는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이 10일 오후 쌀값 3천원 쟁취 밥쌀 수입 중단을 촉구 농민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차량들을 광화문에 주차를 하고 있다. 2017.10.10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이 10일 오후 쌀값 3천원 쟁취 밥쌀 수입 중단을 촉구 농민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차량들을 광화문에 주차를 하고 있다. 2017.10.10ⓒ김철수 기자

농민들이 분노하고 몸으로라도 막겠다고 나서는 식용쌀 수입도 서강학파의 끈질긴 정책개입의 결과물이다. 거대자본 산하 삼성경제연구소나 LG경제연구소가 농업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역시 농업개발을 위해 연구하는 것이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의도는 노동환경의 안정에 있고, 그를 위한 농산물 가격통제라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실제로 농산물 수입정책의 논리나 해외 농업개발의 논리를 그들이 제공하고 있다는 의구심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농사를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정도 되었다. 아주 최근인 20세기 후반 약 50여년 동안 급격히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농업과 농업 기계화에 의한 대형 기업 농업이 관행화됐다. 이것이 기근 해결에 절대적인 공헌을 함으로써 이른바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은 지구가 가진 것을 빼앗아내는 ‘수탈 농업’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저농산물가격정책이 탈농을 유도하고, 탈농자는 저임금 노동시장을 형성하고, 이들을 위해 저농산물 가격정책을 유지해야 하는 시스템이 ‘수탈 농업’이 계속되도록 고착화하고 있다. 화학, 기계화 농법으로 대표되는 관행농업은 과도한 화학물질의 과용, 오용, 남용 현상을 수반함으로써 지구의 자연, 환경의 파괴와 질적 저하 현상을 초래하였다.

재래 농업이 사라지고 난 자리엔 대형 자본의 농업진출이 당연시 되고 있다. 증산과 무역 확대에만 집중하는 과정에서 각종 과학기술적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다. GMO로 대표되는 농산복합체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인류의 목숨까지도 인질삼고 있다. 이들은 과잉생산문제를 발생시켜 세계 농산물 무역 구조의 혼란까지 일으키고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과 WTO/DDA 협상은 그런 고민 끝에 나타난 현상이다.

농사를 농촌 사회 발전의 원천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고, 산업의 한 분야인 농업으로만 보고 오로지 비교우위만 강조한 지난 정부들의 짧은 생각들이 속속들이 비판되고 있다. 종합적 개발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식량증산, 농가소득 증대라는 획일적이고 단편적인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회생이 불능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로 인해 농사는 지역사회의 종합적 틀로서 발전의 기회를 상실했다. 농사의 쇠퇴와 더불어 생산담당 주체인 농민들도 농촌을 떠나게 되어 농사와 농촌의 총체적 위기 상황이 조성되었다.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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