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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재난을 온전히 끝내기 위해 백신 외에 더 필요한 것들

1월의 마지막 날, 강원도 원주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화재사고가 나 다문화 가정의 두 아이와 필리핀 국적의 조모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역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후 10년 넘도록 사업 승인이 나지 않고 관리의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던 곳이었다. 사망한 두 아이의 어머니는 필리핀 국적의 이주여성으로 사고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상태였으며, 한국인 남편은 취업을 위해 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재개발 지역, 이주노동자, 코로나로 인한 실직, 화재, 한 가족의 죽음. 이 다섯 가지 단어가 그저 우연히 겹쳐 한 사건에 함께 등장한 것일까?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라는 낮선 감염병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침범했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의 질서에 따라 이에 대해 다르게 반응했다. 미국에서는 비(非)백인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가 많았고, 영국에서는 전문직보다 육체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더 많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에서는 서울 구로 콜센터, 쿠팡 부천 물류센터의 집단 감염 사태를 통해서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록 감염병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강원 원주소방서 119대원들이 31일 오전 3시5분께 강원 원주시 명륜동 단독주택에서 난 불을 진압하고 있다. 이 불로 다문화가족 73세 할머니(필리핀)과 9세 손녀, 7세 손자 등 3명이 숨졌다. 2021.01.31.
강원 원주소방서 119대원들이 31일 오전 3시5분께 강원 원주시 명륜동 단독주택에서 난 불을 진압하고 있다. 이 불로 다문화가족 73세 할머니(필리핀)과 9세 손녀, 7세 손자 등 3명이 숨졌다. 2021.01.31.ⓒ사진 제공 = 원주소방서

사실 이 같은 감염병 상황 하의 불평등은 단순히 코로나에 취약한 노동계층이 더 많이 더 쉽게 감염될 수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인권단체 직장갑질119 에서는 작년 4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코로나가 노동시장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추적해왔다. 코로나로 1년 동안 일하는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특히 일하는 사람 중에도 어떤 이들에게는 이러한 충격이 더 가혹했다. 프리랜서와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을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들이다.

노동시장의 충격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작년 1월 이후 실직을 경험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율은 정규직에 비해 8배 높았고, 개인 소득의 감소를 경험한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은 정규직 비율의 3배를 넘어섰다. 수입의 감소로 직결되는 평균 노동시간 역시 비정규직이 3배 이상 더 많이 감소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갑질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괴롭혔다. 이들은 권고사직, 해고, 계약해지로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먼저 직장을 잃었고, 무급휴직 강요, 임금삭감, 차별대우로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직장에서의 삶과 직업적 생존을 위협 당했다.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한국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조건, 노동환경, 사회로부터의 보호, 그 모든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열악한 수준이라는 점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다 다치고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파견·용역 등의 간접고용, 계약직이나 임시직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코로나 시기라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새로울가?

권두섭 변호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스페이스노아에서 열린 직장갑질119 코로나8개월, 대한민국일자리 보고서 발표회에서 설문결과 요약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09.21
권두섭 변호사가 21일 오전 서울 중구 스페이스노아에서 열린 직장갑질119 코로나8개월, 대한민국일자리 보고서 발표회에서 설문결과 요약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0.09.21ⓒ김철수 기자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감염병 재난 상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의 상태를 더 극단으로 몰아갔다는 점이다. 몇 달간의 충격이 지나고 난 뒤 정규직 노동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이전의 소득 수준을 회복하는 동안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 조건, 처우 등은 전반적으로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코로나19 확산 1년 동안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뿐만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과 불안감은 코로나 초기부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더 높은 수준으로 찾아왔고, 감염병이 지속 되는 1년 내내 누적되고 증가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회는 이들을 외면했다. 부당한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제도도, 실업 충격을 상쇄해 줄 고용보험도 이들에겐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 ‘아프면 집에서 일주일 쉬라’는 방역당국의 지침은 있었지만, 휴식 기간 동안 감소된 수입을 보장해주어야 할 국가는 없었다.

또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유급병가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까지 알아서 제공해주는 선의의 고용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을 비롯한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사회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살고 있다.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사회가 이들을 외면하던 시간 동안, 주식과 아파트 가격만은 코로나 이전 시기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급등했다. 코로나19가 지나간 시대의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존 머터의 책 '재난 불평등'
존 머터의 책 '재난 불평등'ⓒ사진 = 동녘

‘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재난 불평등』의 저자 존 머터는 재난은 일련의 과정이라 말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재난 ‘사건’은 재난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재난 ‘사건’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지 결정하는 사회적 취약성의 정도는 재난 사건 이전에 이미 재난의 조건을 형성하며, 재난 ‘사건’ 이후 사회가 복구되는 과정 역시 재난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난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지진, 쓰나미, 원전 사고, 감염병과 같은 ‘사건’이 지나간다고 해서 재난이 종료되는 것이 아니며, 재난 사건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사회적 재난’이 시작될 수 있다. 이 사회적 재난은 무엇일까? 이는 불평등의 확대이다. 노벨 경제학자인 조지 스티글리츠가 주장한 바 있듯, 불평등의 확대는 사회구성원들의 박탈감을 증가시키고 사회적 신뢰를 저하시킴으로서 궁극적으로는 사회를 해체시킬 수 있다.

지난 20여 년 간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정규직 중심의 안정적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을 활용하여 비용 절감 및 수량적 유연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그러면서도 사회안전망은 정규직 중심의 제도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다른 나라를 앞서는 경제 성장률를 보며 우리 사회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렇지만 고용 회복 없는 성장의 위험은 간과되고 있고 코로나 여파로 생계의 위기에 내몰린 많은 사람들에 대한 대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의 확대, 새로운 공적 이전소득 도입, 고용유지를 위한 자금조달 기회의 확대 등 광범위한 제도 정비를 통해 취약한 사회계층이 사회적 보호에서 제외되는 것을 지금 당장 막아야 한다.

1일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초기 접종이 진행되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 주차장을 점검하고 있다. 2021.02.01
1일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들이 코로나19 백신 초기 접종이 진행되는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예방접종센터 주차장을 점검하고 있다. 2021.02.01ⓒ김철수 기자

정부는 이달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올 하반기까지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 국민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도 있지만, 곧 재난상황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역시 가지고 있다.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로 이제 곧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깊이 남은 재난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번 코로나 위기는 미래에 또 다른 재난이 발생할 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근본적 변화를 만들 계기가 되어야 한다. 재난의 과정 그 자체를 끝내고자 하는 노력이 없으면, 재난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신희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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