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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자유무역을 봉쇄하다 _ 대륙봉쇄령

*편집자 주 - 지난 추석에 이어 새해 설 명절을 맞아 경제역사에서 벌어졌던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사건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연휴 기간 동안 모두 네 건의 경제역사가 소개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성원 바랍니다.

① 나폴레옹, 자유무역을 봉쇄하다 _ 대륙봉쇄령
② 다이아몬드, 시에라리온을 내전으로 내몰다 _ 블러드 다이아몬드
③ 미국의 군수자본, 전쟁으로 활로를 찾다 _ 걸프전
④ 월가가 벌인 희대의 사기극 _ 서브프라임 모기지

“만약 영국으로부터 철도 레일을 수입하면 우리는 철도 레일을 얻지만, 우리의 돈을 잃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우리가 직접 철도 레일을 만들면, 우리는 철도 레일도 얻고 우리의 돈도 지킬 수 있다.”

미국이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할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 1865) 대통령이 주위 참모들에게 역설했다는 말이다. 어떤가? 그럴싸한가?

이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독자 여러분이 지금 햄버거를 먹고 싶다. 그런데 햄버거를 맥도날드에서 사 먹으면 여러분은 햄버거를 얻지만, 여러분의 돈을 잃게 된다. 하지만 여러분이 직접 햄버거를 만들면, 여러분은 햄버거도 얻고 여러분의 돈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햄버거를 직접 만들어 먹으면 어떨까?

햄버거 패티를 구하기 위해서는 소고기를 사야 한다. 그런데 여러분이 소고기를 정육점에서 사면 여러분은 소고기를 얻지만, 여러분의 돈을 잃는다. 반면 여러분들이 직접 소를 키우고 도축을 하면, 여러분은 소고기도 얻고 여러분의 돈도 지킬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소도 직접 키워야 하는 거다. 같은 논리로 양파와 토마토도 모두 여러분이 직접 재배하는 게 유리하다. 케첩과 마요네즈도 마찬가지다. 젠장, 햄버거 하나 먹기 위해서 해야 될 일이 이렇게 많다니, 이래서야 햄버거 하나 제대로 먹을 수 있겠나?

이쯤 오면 링컨의 말에 뭔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링컨의 이야기는 분업의 효율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무식한 발언이다. 인간 사회는 너무나 복잡해서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 나눠서 할 때 훨씬 효율적이다.

무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나라에서 뭐든 다 만들어낼 생각을 한다면 분업의 효율성을 포기해야 한다. 국가 사이에도 분업이 필요하다는 논리, 이것이 바로 200년 이상 주류 경제학을 지탱한 자유무역의 기본 원칙이다.

나폴레옹, 자유무역에 반기를 들다

하지만 이런 자유무역 이론에도 약점이 존재한다. 분업을 기초로 한 자유무역 이론은 “선진국은 더 잘 만들 수 있는 공산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고, 후진국은 장점이 있는 농산품이나 지하자원 수출에 집중하라”는 논리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하면 너무 비효율적이니 각자 잘 하는 일에 집중한 뒤 무역을 통해 이를 교환하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무역을 하면 선진국은 영원히 부가가치가 높은 공산품만 만들고, 후진국은 영원히 부가가치가 낮은 농업이나 광업에 의지해야 한다.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이 시스템을 방치하면 후진국은 공업화를 통해 선진국의 대열에 오를 기회를 영원히 잃는다.

자유무역을 열렬히 옹호했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나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가 모두 영국의 경제학자였던 것도 그런 이유다. 두 사람이 자유무역 이론을 발표했을 당시(18~19세기) 산업혁명의 근원지였던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공업이 발달한 나라였다.

게다가 영국은 막대한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국은 스미스와 리카도 이론을 바탕으로 “인도가 차와 사탕수수를 재배한 뒤 영국의 공산품과 교환하면 인도에게도 이익이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이런 불평등한 무역은 결국 영국에게만 막대한 이익을 안겼다. 게다가 공업이 낙후된 후진국은 계속해서 농업에만 매달려야 했기에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영국이 산업혁명으로 공업 강국의 길을 개척했던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Napoleon I, 1769~1821)이라는 걸출한 군사 지휘관이 정권을 장악했다. 유럽 대륙의 지배자가 된 프랑스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해상 무역의 강자 영국은 유럽의 주도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나폴레옹 초상화
나폴레옹 초상화ⓒ기타

이 둘은 1805년 지브롤터 해협 북서쪽 트라팔가르(Trafalgar)에서 운명을 건 일전을 벌였다. 프랑스는 바다에서 영국에 연전연패 중이었지만, 한때 무적함대 아르마다(Armada)를 이끌었던 에스파냐와의 연합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전투에 나섰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도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는 명장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1758~1805) 제독이 이끌던 영국 함대에 참패했다.

분통이 터진 나폴레옹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대륙봉쇄령(Continental System)’이라는 것을 들고 나왔다. 1806년 10월, 나폴레옹이 “유럽 대륙에서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모든 국가들은 즉각 영국과의 무역을 중지해야 한다”라고 선포한 것이다. 경제적으로 영국을 고립시켜 트라팔가르 해전에서의 패전을 앙갚음하려는 의도였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상대국과 무역을 단절하는 사상을 보호무역주의라고 부른다. 영국이 주도했던 자유무역주의에 대해 보호무역주의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보호무역 옹호론

비슷한 시기 보호무역주의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던 독일의 경제학자가 있었다. ‘보호무역의 옹호자’로 불리는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 1789~1846)가 그 주인공이다. 리스트는 “자유무역을 받아들이면 프랑스나 에스파냐는 영국인들이 마시는 최고급 포도주를 생산하고, 자기들은 저질 포도주나 마시는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라는 말로 자유무역을 저주했다.

리스트가 살던 시절 독일은 유럽에서도 가장 가난한 농업 국가였다. 리스트는 후진국 독일이 발달한 공업 국가 영국과 자유무역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리스트는 영국에서 수입되는 물품에 어마어마한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극단적인 보호무역을 펼치면 효율성이 낮아져 국민들이 고통을 겪는다. 내가 직접 양파도 재배하고 토마토도 재배하고 소도 키워서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하지만 그런 이유로 자유무역을 용인하면 후진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 진정한 공업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어려움을 인내해야 한다. 리스트가 저서 『정치경제학의 국민적 체계』에 남긴 말을 살펴보자.

“수입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처음에는 기술이 부족해 물건을 비효율적으로 비싸게 생산할 수도 있고, 그 때문에 일시적으로 많은 가치가 희생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장차 그 나라 국민은 자신의 영토 안에서 대규모 분업을 도입해 농업과 공업 사이에 활발한 교환을 스스로 만들어낼 것이다. 생산력도 현저하게 높아질 것이고 국가의 복지도 늘어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주류의 이론인 자유무역을 배척하고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근본적 이유다.”

호혜와 평등, 상생을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결론적으로 이 조치는 양쪽 모두에게 심각한 타격을 안겼다. 당시 영국은 발달된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공산품을 만들어 유럽 대륙에 수출했다. 반면 산업이 낙후됐던 유럽 대륙은 주로 농산물을 영국에 팔았다.

무역이 중단되자 영국산(産) 제품을 쓸 기회를 잃은 유럽인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에도 막대한 지장이 생겼다. 리스트는 후진국 국민들이 이 불편을 이겨내고 스스로 발전할 것이라 믿었지만, 슬프게도 그러기에는 국민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컸다.

공산품 수출로 큰돈을 벌었던 영국도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대륙으로부터 식량 수입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면서 영국인들은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양쪽 모두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탓에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은 유럽에서 지독히 인기가 없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아예 공식적으로 대륙봉쇄령을 거부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는 나폴레옹은 결국 스웨덴을 침공했다. 전체적으로 볼 때 1806년 이후 대륙에서 발생한 전쟁의 대부분은 나폴레옹이 대륙봉쇄령에 반대하는 국가들을 제압하기 위해 벌인 것이었다.

여기에 경제학의 딜레마가 있다. 분업을 기반으로 한 자유무역은 효율적이지만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커지거나 고착화되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고 선진국의 횡포를 막기 위해 보호무역을 선택하면, 분업으로 얻는 막대한 효율성을 포기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정답은 이미 나와 있다. 전 세계가 자유롭게 무역을 하되, 호혜와 평등의 정신에 입각해 상생의 자유무역을 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유무역은 말만 자유무역이지 실상은 착취의 과정이었다.

진정한 자유무역은 상품이나 서비스뿐 아니라 기술도 자유롭게 이전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자유무역은 선진국이 만든 고부가가치 상품을 자유롭게(혹은 비싸게) 팔 선진국만의 권리를 뜻했다. 그들은 기술을 절대로 후진국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특허 등을 통해 후진국이 기술을 개발할 권리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자유무역이라는 이름 아래 선진국의 착취가 계속된다면 후진국들은 자유무역 자체에 반기를 들 것이다. 당장은 선진국의 힘으로 약소국의 분노를 억제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런 원한이 쌓이면 언젠가 큰 전쟁이 벌어진다.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대륙봉쇄령이 실시되기 한참 전인 1651년, 영국도 보호무역의 기치를 높이 든 적이 있었다. 당시 영국은 새로운 항해법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 “오직 영국 혹은 영국 식민지의 선박만이 영국과 영국 식민지로 상품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 배들이 영국과 무역을 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이 조치는 당시 무역으로 국가 경제를 유지하던 네덜란드에 큰 타격을 입혔고 결국 두 나라는 전쟁을 벌였다. 이것이 영국-네덜란드 전쟁, 즉 영란전쟁(英蘭戰爭)이다.

그래서 남을 착취하는 자유무역도, 남을 죽이면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려는 보호무역도 정답이 아니다. 서로를 죽이지 않는 자유무역, 호혜와 평등을 기반으로 한 상생의 자유무역만이 불필요한 분쟁을 막고 분업의 효율을 높이는 유일한 길이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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