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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나무 리포트] 다른 말을 참지 못하는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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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뉴시스

개신교계 방송사에 근무했을 당시의 얘기다. 내가 재직하던 방송사의 이야기로 추정되는 보도가 교계 한 언론 기사를 통해 터져 나왔다. 기사에는 그 회사 퇴사자들의 경험담이 담겨 있었다. 해당 방송사의 불합리한 구조와 부당한 헌신에 대한 이야기가 폭로됐던 것이다.

방송사 명칭은 이니셜로 표기돼 있었다. 같은 이니셜을 사용하는 개신교계 방송사가 한둘이 아니니 사실상 어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노릇일 텐데, 그 기사가 나간 후 몇몇 국장들이 내게 떠보듯 물어보았다.

“팀장님은 이 기사가 우리 회사 얘기라고 생각하세요?”

이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수년이 흘렀지만, 당시 국장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이유의 저변에는 ‘네가 우리 회사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인지를 보겠다’는 일종의 검열이 깔려 있다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우리가 신앙이라 생각해 행하는 일들이
전체주의적 강요나 심지어
폭력이 되어선 안 될 터다.

사실 앞서 ‘추정’이라고 했지만, 해당 기사는 내가 몸 담고 있던 회사에 대한 기사가 맞았다.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일들도 포함돼 있어서 모든 것을 팩트라고 증언할 수는 없지만, 기사의 내용에는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충분히 검토하고 고민해볼 지점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순종’이 강요되는 분위기라는 증언들은 곱씹어 볼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던 차였기 때문이다. 아주 소소하게는 회사가 전통으로 여기는 매일 아침 예배 시간이 내게는 입사 당시 감동이었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제 갓 입사한 신입 직원들은 예배를 강요받는 듯한 분위기를 힘들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전 직원이 후원에 동참하자’는 것을 캠페인처럼 벌이던 회사의 분위기를 매우 불편해하는 직원들도 존재했다. 물론 좋은 뜻에서 회사를 많이 사랑하는 운영진이 주축이 됐던 일이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신앙이라 생각해 행하는 일들이 전체주의적 강요나 심지어 폭력이 되어선 안 될 터다. 이런저런 분위기를 느끼며 그렇지않아도 관련 고민을 하던 차였기에 나는 그 기사를 본 후, 직원들의 다양한 생각을 청취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서 가치가 무너지지 않도록 회사를 운영해 나가려는 리더십들의 노력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미래를 향한 의견 개진조차도 회사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여겨지던 기억을 나 역시 가지고 있다. 사실상 교회 공동체로 이름 지어진 대부분의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사람도 드물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을 그 공동체 혹은 회사 또는 조직에 대한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순종과 침묵은 정말 조직을 사랑해서일까? 문제점이 보이거나 리스크가 감지될 때마다 입바른 소리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른다. 문제점을 제시하면 대안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회사에는 불만이 많은 직원으로 찍히게 되니 승진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여러모로 삶도 피곤해진다. 다른 일로는 관계가 어려울 일 없는 상사와 얼굴을 붉히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마흔을 넘긴 후에는 입에 재갈을 물리고 적당히 회사가 요구하는 일만 하는 직장인으로 살까 하는 고민을 해보았다. 물론 그게 맘처럼 되지 않아 퇴사를 결정했지만 말이다.

다른 사람들까지 어떻다고 내가 감히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순종과 침묵은 어쩌면 나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이었지, 조직에 대한 사랑이 강화했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사회 법정으로 끌고 가지 말라는 말인 즉,
교회와 목사의 말에 토를 달지 말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나만의 고민은 아닌 듯하다. 아니, 나는 떠나기라도 했다. 떠나지도 못한 채 아픔을 끌어안고 투쟁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한 예로 부산의 한 교회가 최근 공동의회를 통해 장로 9명의 시무를 정지하기로 결의했다. 교회가 목사와 장로 등 항존직 임기를 75세로 연장하는 공동의회를 열기로 했는데, 이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 탄원서에 서명한 것이 문제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교회의 문제를 사회 법정으로 끌고 간 교인들이 있었고, 교회는 그 자체가 문제라고 여긴 것이다.

이 교회의 항존직 임기 연장은 겉보기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교회가 소속된 총회가 앞서 항존직 임기를 연장하는 안을 통과시켰으므로 교회는 총회 헌법을 따르는 절차를 밟아 실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막을 살펴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교회는 불투명한 재정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가 복지형 교회를 꿈꾸며 사들인 2만3000여평 규모의 땅을 담보로 받은 대출금 약 170억원의 사용처, 2010년부터 2016년까지 ‘교역자 연수비’로 책정한 연4천만원의 실제 사용처, 양산소재 성전 헌금의 불투명성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몇몇 장로들은 2017년 윤성진 목사에게 70세가 되면 사임할 것으로 요구했고, 윤 목사도 그 약속을 지키겠다며 공증까지 받았으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문제를 사회 법정으로 끌고 간 것이 죄’라는 교회 측의 문제해결 방식은 한국교회의 모순을 그대로 보여준다. 애초에 교회 내부에서 자정을 기대할 수 있었다면, 사회 법정에 기대는 교인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교회 문제를 사회 법정에 기대 호소한 들, 종교문제는 수사기관이든 사법기관이든 유난히 달갑지 않아 하는 경향이 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라도 법의 정의에 기대어보는 교인들이 나오는 이유는, 노회나 총회에서 그 어떤 정의로운 판결도 제대로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아는 탓이다. 그러니 사회 법정으로 끌고 가지 말라는 말인 즉, 교회와 목사의 말에 토를 달지 말라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앞서 내 경험담도 언급했듯, 이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화나무가 설립된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교회 또는 목사의 재정 비리 의혹 또는 설교표절 문제를 공론화했다가 아예 교회에서 쫓겨난 교인들의 모습도 여럿 지켜봐야 했다. 그야말로 숙청이다. 우리 조직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입 닥치고 있지 않으려거든 함께할 수 없다는 것.

상황이 이러한데도 곳곳에서 신앙 양심에 비추어 정의를 세워보겠다면서 투쟁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일도 아니고, 떠나면 그만일 것도 같은데 각종 음해를 받아가면서까지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교인들을 볼 때마다 코끝이 찡해진다.

설 연휴 기간에도 이런 투쟁 소식은 이어졌다. 누군가는 1인 시위를 이어갔고, 또 어떤 이들은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 음력으로도 완벽한 새해가 밝았지만, 어제와 똑같이 암울한 현실의 벽에 가로막힌 채 신음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이어가는 교인들이 있다. 그야말로 사랑하지 않으면 못 할 짓이다. 보고 듣고, 혹은 체험한 불의를 외면하지 못해 투쟁하는 삶을 살게 된 한국교회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하심이 있기를.

권지연 평화나무 뉴스진실성검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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