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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아이들은 놀기 위해 학교에 와요” 시간표에 ‘빈칸’ 만들어 둔 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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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입장에서는 학교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으면 좋지 않겠어요?”

아이들의 시선에서, 무엇이 재미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초등학교 교사가 있다. 이미 ‘어린이 기본소득제’ 시행으로 이름을 알린 강환욱 판동초등학교 교사(39)를 지난 5일 충북 보은군에 위치한 판동초에서 만났다.

산속 작은 마을에 있는 판동초는 서울은 물론, 청주 시내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2시간 넘게 달리면 청주를 경유해 보은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 앞에 줄지어 대기하는 택시를 타고 굽이진 시골길을 15분간 더 따라가면 알록달록한 판동초 건물을 볼 수 있다.

정문으로 들어서자 미니 포켓볼대와 에어하키대가 눈길을 끌었다. 역시나, 강 교사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판동초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2019년, 어느 학교 로비에나 있는 트로피 장식장을 치우고 아이들의 놀 공간으로 탈바꿈하자고 학교에 제안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교는 아이들이 주인이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오니까요”

판동초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매점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
판동초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매점을 이용하고 있는 모습.ⓒ강환욱 교사

형편이 어려운 친구를 끌어올려 주고자 하는 학생들

로비를 지나 1층 복도로 들어서면 기본소득 시행으로 유명해진 판동초 매점 ‘빛들마루’ 간판이 보인다.

“학교 주변에 편의시설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충북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협동조합을 설립해 2019년 9월 매점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매점을 오는 아이들만 오는 거예요. 매주 하는 자치회의 시간에 매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을 손을 들어보게 했고 그 이유를 들어봤죠. 아이들은 솔직하니까 배가 안 고프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용돈이 없어서였어요. ‘팩트체크’를 하고선 뭔가 해야겠다 싶어 어린이 기본소득을 하게 됐죠.”

때마침 그의 취지에 공감한다며 학교로 기부금이 들어왔다. 학교 매점을 생협의 간식들로 채우면서 알게 된 청주YWCA아이쿱생협의 최종예 이사장이 기부의 다리를 놓았다. 기부금 100만원으로 지난해 10월26일 기본소득제를 시작했다.

강환욱 교사 교실 앞 쪽 벽면에 ‘기본소득 수령 게시판’이 붙어 있다.
강환욱 교사 교실 앞 쪽 벽면에 ‘기본소득 수령 게시판’이 붙어 있다.ⓒ민중의소리

학생들은 매주 월요일 ‘기본소득 수령 게시판’에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봉투에서 천원짜리 매점 화폐 2장을 챙긴다. 방학 중에는 돌봄교실과 겨울 교육프로그램을 신청한 학생들에게만 지급된다.

매점은 오전에는 1~2교시와 3~4교시 사이 쉬는 시간을 합쳐 2~3교시 사이에 30분간 이용할 수 있다. 좀 더 놀 수 있도록 쉬는 시간을 조정했다고 한다. 6학년 7명 중 희망자 5명이 요일별로 돌아가며 ‘매니저’ 역할을 한다. 매니저는 2교시가 끝나면 비밀번호를 눌러 매점 문을 열고 포스기를 켜고 판매를 시작한다. 이들은 월급으로 매점 화폐 2장을 받는다. 오후에는 협동조합의 학부모 이사가 매니저 역할을 맡아준다.

기본소득제 도입의 긍정적 효과는 풍부했다. 강 교사는 “우선, 아이들도 저도 이제 돈이 없어서 오지 못 하는 아이는 없다는 것을 가장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학교가 전교생 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번의 설문조사는 이를 수치로 보여줬다. 지난 11월 초 진행된 1차 조사에서 응답자 72%가 전보다 매점을 자주 이용한다고 답했다. 또 기본소득 시행 후 학교생활이 더 즐거워졌다고 답한 이의 비율은 94%나 됐다.

12월 초 실시한 2차 조사에서도 85%가 ‘학교에 오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고 답했다. 또 ‘친구에게 무언가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에 70%가 ‘그렇다’고 했다.

“제일 초점을 두고 지켜보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보다 형편이 좋지 않은 친구를 끌어올려 주고 싶어 했다는 거예요. 용돈이 풍족한 아이들 또한 자주 못 오는 친구들의 서러움을 본인들도 어떻게든 해결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거죠.”

그는 심층 취재하고 싶은 학생이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4학년이었던 한 학생은 용돈이 무한정 있었어요. 카드도 있었고 하루에 매점 한 번씩은 꼭 와서 먹고 싶은 것 다 사는 친구였죠. 그런데 기본소득이 시행되고 나서 그 학생이 자발적으로 부모님한테 용돈을 안 받겠다고 했다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처럼 기본소득으로만 생활해보겠다고요. 자기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내 생활을 거기에 한번 맞춰보겠다는 건데 앞으로 더 살펴보고 싶은 친구예요.”

강 교사는 그러면서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려면 이런 아이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으로 기본소득제가 시행되면, 상위 1% 수준의 부를 누리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 받는 것보다 추가로 내는 게 더 많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아마 기본소득제 도입에 반대하는 경향이 크겠죠. 그런데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처럼, ‘나의 조그만 희생으로 여러 사람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어려운 사람들의 처지가 좋아진다면 나의 희생을 조금은 감수할 수 있겠다’는 연대의 마음이 공유된다면 기본소득이 통과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강환욱 판동초 교사가 지난 5일 판동초 교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환욱 판동초 교사가 지난 5일 판동초 교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옛날엔 공무원 같은 교사였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강 교사는 예상과 달리, 학창 시절부터 교사를 꿈꾼 건 아니었다.

“그냥 공부만 하고 살았어요. ‘대학 이후에 뭐하지’라는 생각을 하기보다 ‘어느 대학을 가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직업 자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그런데 수능에서 평소 실력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어요. 그때 젊었을 때 잠깐 교직 생활을 했던 어머니가 제 점수에 맞춰 교대를 추천해줬죠. 교대가 뭐 하는 곳인지도 잘 몰랐어요.(웃음)”

2005년 교사가 된 그는 10년간 ‘공무원 같은 교사’였다고 말했다.

“청주시에 살면서 보은군에 위치한 학교에 왔다 갔다 했어요. 퇴근하면 청주에 가니까 아이들 삶과 저랑은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7년 전 보은에 들어와 살면서 달라졌어요. 아이들과 한마을에 살면서 아이들한테 좀 더 관심이 가고, 내가 이 마을에 살면서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생각하게 됐죠.”

그때부터 그는 “아이들의 자유와 놀이를 지켜주는” 교사를 꿈꾸고 있다고 고백했다.

강환욱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5학년 1반의 ‘살림표’. 빈칸으로 보이는 시간에는 과목 중심이 아닌 주제 중심의 수업이 이뤄진다.
강환욱 교사가 담임을 맡았던 5학년 1반의 ‘살림표’. 빈칸으로 보이는 시간에는 과목 중심이 아닌 주제 중심의 수업이 이뤄진다.ⓒ강환욱 교사

‘빈칸’ 있는 학교생활

강 교사가 담임을 맡은 교실에는 ‘살림표’가 붙어 있다. 그는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표라는 ‘시간표’가 별로 와닿지 않아서 살림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살림표를 보면, 빈칸들이 눈에 띈다.

“빈칸은, 제가 그나마 담임이니까 ‘우리는 교과 순서대로 살지 말자’며 만들어 놓은 거예요. 원래 과목들이 빽빽이 고정돼 있죠. 그럼 그 시간에는 그 과목 책을 펴야 해요. 가장 큰 단점은 과목 간, 학년 간 단절이에요. 근데 우리 삶은 모든 게 융합돼 있잖아요.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는 수학처럼 살고, 10시부터 11시까지는 사회처럼 살고, 하지 않잖아요.(웃음) 이걸 조금이라도 깨고 싶어 빈칸을 뒀어요.”

비워둔 시간엔 ‘과목’ 중심이 아닌, ‘주제’ 중심으로 수업이 이뤄진다. 주제는 미리 계획하기도 하고 학생들이 원하는 거나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즉흥적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지난해 여름 장마가 길었을 때 강 교사는 ‘선생님도 이렇게 장마가 긴 적은 처음이야. 왜 이렇게 긴지 알아보자’며 한 달간 기후위기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주제 중심으로 수업해도 과목별 시간 수를 결과적으로 맞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관련 그래프를 그리면서 수학을, 최종적으로 포스터를 꾸미면서 미술을 하게 되는 식이다.

그는 목공과 재봉틀, 제과제빵 등 노작 교육도 빈칸 시간에 주로 다룬다. 강 교사는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는데 할 줄 아는 게 문제풀이 밖에 없더라. 이런 것에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판동초등학교 2층 화장실 앞에는 농구대가 설치돼 있다. 농구대는 지난해 11월 강환욱 교사가 4~6학년 학생들과 목공 수업을 하며 만들었다. ‘고학년이 만들어 저학년에게 선물해주는 프로젝트’였다.
판동초등학교 2층 화장실 앞에는 농구대가 설치돼 있다. 농구대는 지난해 11월 강환욱 교사가 4~6학년 학생들과 목공 수업을 하며 만들었다. ‘고학년이 만들어 저학년에게 선물해주는 프로젝트’였다.ⓒ강환욱 교사
재봉틀을 배우고 있는 판동초 학생들.
재봉틀을 배우고 있는 판동초 학생들.ⓒ강환욱 교사

“철학이 유지되는 대안학교 만들 것”

강 교사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교직 생활의 꿈을 묻자, “새로운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안학교는 제도교육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율적인 프로그램을 통한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는 학교를 뜻한다.

그는 관심 있는 교사들과 함께 지난해 ‘초등대안교육연구회’를 꾸려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3년 뒤에는 가칭 ‘자유학교’ 1호가 설립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 모집을 어느 정도 수월하게 하기 위해 1호는 시골이 아닌 자연환경이 좋은 근교를 생각해봤다. 2호, 3호부터는 시골에 지어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유학교’의 핵심은 교사와 학부모, 학생, 시민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학교가 추구하는 철학을 지탱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좋은 학교라도 열심히 운영했던 선생님들이 빠지면 학교가 휘청거릴 수 있어요. 현재 대부분 일반 학교가 그렇죠. 그런 걸 막기 위해 협동조합 조직이 나무 기둥처럼 버티고 있게 할 거예요. 누군가 학교를 떠나더라도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남아 있으면 학교에 가치가 명확히 남아있게 되죠.”

3시간 가량의 인터뷰가 끝난 뒤 강 교사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직접 짓고 있는 목공방을 보여줬다. 그는 방학 중에도 매일 학교에 나와 한땀 한땀 못을 박고 벽을 붙인다. 개인 SNS에 ‘학교공방 건축일지’도 올린다. 이번 달에 완공할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아이들과 여기서 목공과 재봉틀 수업을 할 거예요.” 강 교사는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말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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