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판문에 머리가 끼임’, ‘아르곤 가스에 의한 질식’, ‘블록 내부 개구부로 떨어짐’, ‘도장 작업 중 화재 폭발’
2020년 5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조선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사망 관련 안전보건공단의 게시판 제목이다. 그 후로도 현재까지 2명이 더 추락과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 조선업은 작년에 중국에 빼앗긴 수주 물량 1위 자리를 되찾아왔다. 이 같은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명성 뒤에는, 머리가 끼이고, 쇠로 된 바닥에 떨어지고, 폭발에 몸이 찢긴, 노동자의 희생이 함께 있었다.
사실 조선 수주 물량과 관계없이 매년 조선소에선 수십 명의 노동자가 생을 달리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또 사망사고... 올해만 6번째’. 이 기사는 2016년 7월에 보도됐다. 그 해 현대중공업 사망 노동자는 11명이었다. 그런데 이 제목이 2020년에도 똑같이 등장했다. 작년에 다섯 명의 노동자가 현대중공업 작업장에서 사망했으며 올해 2월에도 사망사고가 또 발생했다.
사고 직후 정부는 중대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현대중공업을 특별 관리하고, 회사는 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발표했다. 미안하지만 정부와 회사의 재발 방지 노력에 거는 기대가 크지 않다. 중대 재해의 구조적 원인을 없애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7년 말 조선업 중대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2017년 STX조선 폭발 사고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고 같은 해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로 6명의 노동자가 숨진 직후였다.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의외로 단순했다. 안전보다 생산이 우선 시 되는 관행과 다단계 하도급 생산 방식이 주요 원인이었다.
조선소의 생산성은 주어진 기한 내에 최대한 빨리 작업을 마치는 것이다. 배나 플랜트 건설은 많은 작업 인력이 필요하므로 하루라도 빨리 만들수록 비용이 줄어든다. 납기도 빠듯하다. 말로는 안전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해진 납기를 맞추기 위해 현장에선 생산이 우선이다. 안전 도구를 다 챙겨서 일을 하면 이리 저리 옮겨 다니면서 빨리 작업할 수 없어 생략하고, 도장과 용접을 같이 하면 폭발의 위험이 있지만 공정을 동시에 진행해야 효율적이므로 혼재 작업도 서슴지 않는다. 안전을 위해선 적정 공간을 확보하고 절차를 따라야 하지만 그것도 무시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추락하고, 불길에 휩싸이고, 끼여서 죽는다.
조선소는 생산의 대부분을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으며 원청은 하청업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독립적 기술을 가진 전문업체가 아닌 영세한 하청업체는 원청이 제시한 낮은 단가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재하도급을 관행처럼 쓴다. 원청도 알고 있지만 더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고 특별히 제재하지도 않는다. 2차 재하도급만이 아니라 3차, 4차 재재하도급도 흔하다.
잘 알려진 물량팀도 그 중 하나이다. 물량팀은 90년대 까지만 해도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고난이도 작업을 하는 외부의 임시직 인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숙련 노동자만이 아니라 저숙련 노동자까지 섞여 있는 하도급 팀으로 전락해 사내 하청 업체들로부터 물량을 수주받고 있다. 물량팀에 속한 저숙련 노동자는 현장 경험이 부족하고 사전 교육도 거의 받지 않는다.
원청과 하청업체 모두 현장 안전 관리자를 두고 있지만 이들이 직접 물량팀 노동자에 대한 안전 교육을 실시하거나 관리·감독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대재해의 희생자는 대부분 하청업체 노동자이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발생한 조선소의 사고 사망자 수는 총 324명인데, 이 중 79.3%인 257명이 하청업체 노동자였다.

조선소가 지금의 생산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어렵다. 유감스러운 것은 조선소 경영진이 생산제일주의와 다단계 하도급 생산방식을 개선할 생각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주노동자 인력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건의하고 있다. 물론, 경영진도 안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가 불가피하게 희생되더라고 납기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비용 측면에서도 사내하청의 활용은 매력적이다. 인건비는 원청에 비해 60% 수준이고 물량이 없을 땐 인원 조정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내 하청업체엔 노동조합도 거의 없어 노사갈등이 생산을 방해하지도 않으므로 하청노동의 활용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이런 이유로 다단계 하청구조는 오늘도 굳건하고 조선소 중대재해는 반복된다
조선소에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선 사내하청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안전을 우선시 하면 된다. 그러나 조선소 경영진은 그럴 의사가 없고, 정부도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그렇다고 데칼코마니처럼 반복되는 사망사고를 이대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다단계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것이다. 「건설업법」을 참조하여 재하도급을 금지하고 위험한 공정은 원청이 직접 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공정거래법」 등을 통해 무리한 공정을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중도에 공사 기간을 임의로 단축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인건비가 대부분인 기성금을 계약 이후 삭감해서도 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노조법」을 개정하여 원청 사용자에게 공동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여 하청업체 노동조합이 교섭을 요구할 때 원·하청 사용자가 함께 교섭에 참가하도록 하여 안전에 대한 노동자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조선소에서 생을 달리 한 노동자들은 일을 하다 갑자기 세상과 이별하리라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일터에 있는 당신이 어느 날 가족과 예고 없이 헤어지고 세상과 준비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면, 그러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가벼울 수 없는 이유이다.

정흥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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