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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기고]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한 50년, 고맙고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우리 선생님. 백기완 선생님. 각종 거악에 대해 포효하며 호통치시던 늠름한 기상, 또 담대하고도 맛깔나는 수많은 시와 노래들, 호방한 웃음과 따뜻한 목소리, 그리고 핍박 받아 울고 있는 노동자·민중과 함께 흘리시던 따뜻한 공감의 눈물과 절대적 연대.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이 땅의 민초들은 민중 권리의 옹호자, 노동자·민중의 호민관, 백기완 선생님을 잃은 슬픔으로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는 백범사상연구소 소장으로 일하시면서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의 파쇼적 만행에 대해 앞장서 저항하며 반독재민주화 투쟁을 조직하실 때였습니다. 1973년 12월, 선생님께서는 유신독재 체제를 끝장내기 위해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개헌 청원 100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셨었지요. 그러자 박정희 독재정권은 화들짝 놀라 ‘듣보잡’ 수준의 폭거를 저지릅니다. 그들은 개헌논의 자체를 금지시키는 내용의 대통령 긴급조치 제1호를 발령하는 무리수를 둡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는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첫 번째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구속자가 되셨지요.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선생님께서 장준하 선생님과 함께 군법회의에서 재판 받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각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렸었지요. 저들은 두 분 선생님께서 재판 받는 사진을 크게 실어 대학생들과 국민들에게 고도의 공포심을 조장하려 했지만, 이를 본 대학생들과 국민들은 도리어 더욱 거센 저항의 길로 나섰지요.

1974년, 마흔두 살의 백기완. 박정희 정권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함께 선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박정희 타도 싸움을 맹세한 독립군 출신 장준하 선생
1974년, 마흔두 살의 백기완. 박정희 정권에서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함께 선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박정희 타도 싸움을 맹세한 독립군 출신 장준하 선생ⓒ사진 = 통일문제연구소

두 분 선생님의 저항으로부터 촉발된 대통령 긴급조치는 이후 민주화 투쟁 세력과 유신 독재 세력 간에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쟁투 속에 각종 무리수와 파행을 거듭한 끝에,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결국 6년 뒤 1979년 부마민중항쟁으로 발전되고, 독재자 박정희가 심복의 총에 암살당하게 되면서 유신독재체제는 종말을 고하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는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대해서도 최초의 저항을 조직하셨었지요. 박정희 암살 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인 1979년 11월 24일, 비상계엄 하에서 서울 명동 YWCA 강당에서 결혼식을 치른다는 명분으로 사람들을 모은 다음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시위를 감행하셨지요.

이 시위로 선생님께서는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로 끌려가, 실로 잔인무도한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평소 82kg이던 몸무게가 38kg으로 줄어들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셨지요. 그 때 선생님께서 옥중에서 광주민중항쟁 소식을 듣고 만드신 절창 ‘묏비나리’는 절실한 민중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을 넘어 아시아 각 지역에서 절실한 저항의 노래, 투쟁의 노래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987년, 쉰다섯 살의 백기완. 제13대 대통령선거 출마 당시 벽보, 민중후보 백기완.
1987년, 쉰다섯 살의 백기완. 제13대 대통령선거 출마 당시 벽보, 민중후보 백기완.ⓒ사진 = 통일문제 연구소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8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열린 대선 공간에서, 그리고 1992년 대선 공간에서 선생님께서는 독자적 민중후보로 나서셔서 노동자·민중 중심의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애쓰셨지요. 당시 선거 공보에 담긴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라는 핵심 구호가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해일처럼 밀어닥치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광풍 앞에 풍전등화같은 처지였던 이 땅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을 지지·엄호하는 활동에도 앞장서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힘없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리고 농민과 도시 빈민 등 기층 민중들의 삶에 깊은 애정을 쏟으셨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께서는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셨습니다. 통일문제연구소의 이름판을 내걸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그리고 핍박받는 민중들의 투쟁에, 실로 든든하고 품이 너른 크나큰 ‘기댈 언덕’으로 역할 하셨지요.

재벌 앞잡이 이명박과 독재자 박정희의 후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민중들의 삶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자, 선생님께서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마지막 투쟁의 불꽃을 불사르셨습니다.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저지 투쟁, 용산 참사 규탄 투쟁, 쌍용차 정리해고 저지 투쟁, 한미FTA 비준 저지 투쟁, 국정원 등 국가기관에 의한 부정 선거 규탄 투쟁,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투쟁,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살인 규탄 투쟁, 그리고 박근혜 퇴진 민중 총궐기 투쟁과 범국민 촛불대항쟁 등 숨가쁘게 진행되던 민주화 투쟁과 민중대항쟁의 큰 전선 맨 앞줄에서, 투쟁의 상징으로 우뚝 서셨지요. 이것이 선생님께서 병상에 눕기 전 마지막 활동들이 아니셨나 생각됩니다.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촉구 1차 총파업 및 시민불복종 광화문 촛불에 참가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6.11.30
30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촉구 1차 총파업 및 시민불복종 광화문 촛불에 참가한 민주노총 지도부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이 행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2016.11.30ⓒ양지웅 기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22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불법 무노조 삼성 이재용은 감옥으로! 김용희는 일터로! 사회원로 및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과거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다 해고당한 김용희 씨는 이날로 단식 50일째, 철탑 고공농성 43일째를 맞았다. 2019.07.22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22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불법 무노조 삼성 이재용은 감옥으로! 김용희는 일터로! 사회원로 및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과거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조직하려다 해고당한 김용희 씨는 이날로 단식 50일째, 철탑 고공농성 43일째를 맞았다. 2019.07.22ⓒ김철수 기자

민중총궐기 투쟁과 촛불 항쟁으로 저 무도한 박근혜 일당의 국정농단과 헌정유린을 끝장내는 거대한 승리를 쟁취하고서도, 민중정치, 진보정치의 미욱함으로 투쟁의 성과는 유실되고, 지금 이 땅의 민초들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만, 감염병 피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사회 주변부 계층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자산 불평등, 소득 불평등, 교육 불평등, 직업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불평등 상황은 거의 폭발 직전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는 그 해결의 고리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선생님께서 병상에서도 간절히 기원하셨던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세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겨레의 큰 어른이신 선생님께서는 이 땅의 민주화와 노동자·민중의 해방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하셨습니다. 함석헌, 장준하, 문익환, 계훈제, 백기완으로 이어지는 ‘재야 어른 ’들 중 마지막이셨지요. 선생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이제 한 시대가 저물어 갑니다.

이제 저희 후진들이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적폐 청산과 진정한 민주화, 그리고 사회 불평등 혁파와 노동자·민중 해방의 길로 전진해 나가야 할 과제가 남겨졌습니다.

선생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며,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살되, 올바로 함께 잘 사는 행복한 노나메기 세상”, 평등·평화·통일 세상, 민중세상에서 부활하셔서 저희들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의 고단하셨던 온갖 헌신 모두 내려 놓으시고, 이제 부디 편안히 지내시길 기원합니다. 저희들이 좀 더 힘을 합쳐 간절하게 노력하겠습니다.

창경궁, 늙고 마른 백기완. 그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
창경궁, 늙고 마른 백기완. 그가 손을 흔들어 인사한다.ⓒ사진 = 채원희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민중공동행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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