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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또 어떤 도전을 보여줄까,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림책 작가 박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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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는 십여 페이지, 길게는 백여 페이지 분량인 그의 그림책들을 보면 다양한 감정이 든다.

어떤 책은 깔깔 웃게 되다가도 또 어떤 책은 눈물이 찔끔 난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책도 있는가 하면 죽비를 맞은 듯 뜨끔하게 만드는 책도 있다. 억지로 교훈을 심으려 하지 않고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독려하는 그림책, 박정섭 작가가 그리고 쓴 그림책의 특징이다.

박 작가는 그림책 작가이면서도 동시에 음악도 만들고, 노래도 하고, 그림책 내용을 담아 영상도 만든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아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를 써 내려갈지, 그 이야기는 또 어떤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낼지, '그다음'이 궁금해지는 박 작가를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그림책식당'에서 만났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으로 편 가르고 분열하는
우리 사회 모습 그려낸 '감기 걸린 물고기'

박정섭 작가. 자료사진.
박정섭 작가. 자료사진.ⓒ박정섭 작가 제공

박 작가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감기 걸린 물고기(2016)'다. 배고픈 아귀가 물고기들을 쉽게 잡아먹기 위해 "빨간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대"라는 소문을 퍼트리자, 한데 뭉쳐있던 색색깔의 물고기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하다 결국 아귀한테 잡아먹힌다는 얘기다.

결말에서는 배부른 아귀가 기침하면서 배 속에 있던 물고기들이 다시 밖으로 나왔지만, 아귀는 바다 한쪽 구석에서 여전히 촉을 세우고 숨어있다. 마치 언젠가 또 다른 소문을 퍼트릴 수 있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듯이.

이 책은 2016년에 출간됐지만, 코로나19 상황과 맞물리면서 최근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누군가의 공포심을 파고드는 가짜뉴스가 돌면 그 진위를 확인하지 않은 채 나와 다른 대상을 혐오하고, 급기야 배제하는 모습은 우리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 소문이 어떻게 전파가 되는지, 그 소문을 통해 공동체는 어떻게 와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게 박 작가의 설명이다.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 중.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 중.ⓒ출판사 '사계절'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 중.
그림책 '감기 걸린 물고기' 중.ⓒ출판사 '사계절'

'감기 걸린 물고기'를 처음 구상하게 된 계기도 어느 한 뉴스 때문이었다. 진위가 불분명한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이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져 싸우게 되고, 이런 씁쓸한 모습을 그림으로 짚어줘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고기는 사람처럼 '에취에취'하는 감기에 걸리지 않아요. 수족관을 옮기다가 온도 차이가 나면 껍질이 벗겨지는 백점병이라는 병은 있지만, 열이 나는 감기에는 안 걸리죠. 그런데 '물고기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문을 믿어버리면, 그게 현실이 돼서 정신적인 감기에 걸리게 되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오히려 더 맹렬한 것 같기도 하고요."

책에는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등장하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마냥 밝지만은 않다. 박 작가는 그림책 작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이 이 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어두운 현실도 그림책의 소재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저는 '감기 걸린 물고기' 작업을 하면서 내가 어떤 작가구나라는 걸 느꼈죠. 그림책에서는 보통 읽으면 유쾌해지는 것을 그리려고 하지 사회적인 사건들, 어두운 사건들을 잘 보여주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요. 편식하지 말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요. 그림책을 통해 여러 감정을 골고루 맞닥뜨리는 게 중요하죠."

세상 모든 것을 존중하는 따스한 시선 담긴 '똥시집'
동시집 속엔 음악과 애니메이션, 간단한 게임도
"하고 싶은 걸 그때그때 하며 삽니다"

박정섭 작가의 '똥시집' 중 한 페이지.
박정섭 작가의 '똥시집' 중 한 페이지.ⓒ출판사 '사계절'

'감기 걸린 물고기'가 그림책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면, 가장 최근에 낸 똥시집(2019)은 박 작가가 "모든 걸 갈아 넣은 책"이다. 동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하고, 뮤직비디오도 홀로 만들었는데 박 작가의 야심찬 실험이면서도, 또 다른 도전기였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동시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발현된 것이었다.

'똥시집'은 그의 설명처럼 "자유롭게 쓰고 그리고 노래"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씨앗이 모두 날아간 민들레는 자식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이 되고, 콧물을 훌쩍이는 모습은 버스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이 된다.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단절의 시선이 아닌 연결의 시선으로 바라보려 하는 삶의 태도가 작품에 반영됐다고 한다.

"타인이나 다른 사물을 볼 때 완전히 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세상을 바라볼 때 지구에 모든 것들에는 다 영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존중해주는 것이죠. 예로 들면, 지나가는 개미를 보고 '길을 잃었구나' 생각하면서 나도 길을 잃었을 때를 떠올리고 밖에 내보내 주는 것이에요."

'똥시집'이 독특한 이유는 작가만의 따스한 세계관도 있지만, 동시를 즐기는 색다른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똥시집'에는 동시의 내용을 담은 노래와 이를 바탕으로 한 짧은 애니메이션이 있고, 미로찾기나 숨은그림찾기 등의 소소한 게임도 있다.

박정섭 작가의 '똥시집' 중 한 페이지.
박정섭 작가의 '똥시집' 중 한 페이지.ⓒ출판사 '사계절'

이런 시도는 '똥시집' 외에도 박 작가의 첫 책인 '도둑을 잡아라', '검은 강아지'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림책과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접목하는 것은 박 작가만이 지니고 있는 특색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다양한 작업을 하느냐'는 질문에 박 작가는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산만하게만 보였던 모습이 사실은 시야가 넓다는 것이었고, 보이는 게 많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는 것이다.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한테 산만하단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림책 작가가 되고 보니, 이 산만함이란 게 상상력을 산만큼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직업은 그림책 작가 한가지가 아니에요. 그림책 작가이면서도 동시도 쓰고, 음악도 만들고, 보드게임도 만들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걸 그때그때 하면서 살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박 작가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단은 뛰어들어 봐야죠"라는 그의 답변에서는 자유로움이 그대로 느껴졌다.

일러스트 학원에서 처음 접한 그림책
"그림책의 매력?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어"
"다음이 궁금한 작가"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아이들과 그림책 수업을 하고 있는 박정섭 작가.
아이들과 그림책 수업을 하고 있는 박정섭 작가.ⓒ박정섭 작가 제공

지금은 여러 권의 대표작이 있는 작가로 분류되지만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마냥 순탄한 과정만 거쳤던 것은 아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박 작가는 다니던 대학교를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주유소, 초밥집, 주차장, 고속도로 휴게소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처럼 웹툰이 있던 시기가 아니어서 만화책 공모전에 수차례 지원하지만 결실을 맺진 못했다.

'돈이나 모으자'는 생각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와중에도 낙서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악몽을 꾸게 된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다시 되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사람들의 낯빛은 모두 회색빛이고 창밖에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악몽을 꾼 후 평소와 같이 삼겹살집에서 고기를 써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내가 서른 살, 마흔 살이 되어도 아르바이트하면서 고기를 썰면 행복할까." 아닐 것 같다'는 확신이 서자 다시 그림에 매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내가 하고 있는 게 뭘까 생각해보니 낙서가 떠올랐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가 무엇을 잘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니, '너는 매일 낙서를 하니 책에 그림을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워볼까 마음을 먹게 된 거죠."

곧장 일러스트 학원에 등록했다. 그러던 중 학원 선생님이 우연히 그림책을 소개해줬고, 이때 박 작가는 처음으로 그림책에 매료됐다고 한다.

"'지각대장 존'이라는 그림책이었는데, 그전에 가지고 있던 그림책에 대한 고정관념이 다 깨지게 됐죠. 그림책은 몇 장 되지 않은 굉장히 짧은 페이지 안에 글과 그림으로 작가의 철학을 녹여내서 전달하는 게 너무 좋았어요. 저는 긴 글을 잘 못 읽어요. 졸거든요. (웃음) 그런데 그림책은 짧은데도 임팩트가 있어서 그림책 작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박정섭'이라는 그림책 작가가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그림책은 '도둑을 잡아라(2010)'였다. 대략적인 내용을 물으니 "말 그대로 도둑을 잡는 책"이라는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여기에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이 당시에만 해도 그림책을 만들 때 교훈이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약간 반항적인 기질이 있어서 교훈이 하나도 없어도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죠. 그래서 독자가 주인공이 돼서 도둑을 잡으면서 추리하는 즐거움을 주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이 책은 오히려 성인들은 도둑 잡기가 어렵고요, 오히려 나이가 어릴수록 도둑을 쉽게 잡을 수 있답니다."

요즘 박 작가는 '똥시집' 이후 약 2년여 만에 내는 신간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저금통'을 소재로 자본주의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저금통 안에서 돈들이 치열하게 싸우는데, 나중에는 이 다툼이 부질없어지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올해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끝으로 박 작가는 어떤 그림책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똑같은 것들을 보여주기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하는, 독특한, 재밌는 작가구나라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음에는 이 사람이 또 무엇을 할까 궁금한 작가요." 박 작가의 그림책다운 소망이었다.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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