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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 교회의 직분 제도, 이대로 좋은가?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2020.04.26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신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2020.04.26ⓒ김철수 기자

영화 ‘설국열차’와 닮은 꼴, 교회의 직분 제도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낸 한국교회의 민낯으로 교회의 이미지가 추락한 이때, 교회의 가부장성에 대한 비판까지 보태는 글을 써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피로감만 안겨주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었다. 도대체 무얼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다가, 교회의 직분 제도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작금의 교회의 직분 제도는 영화 ‘설국열차’나 ‘기생충’ 영화에서 보여준 것처럼, 교인들 간에 계급이 존재하며, 첫째 칸에 타고 있는 목사들의 말대로 무조건 따르면서 ‘계급의 선’을 넘지 않고 살도록 정해 놓은 ‘몹쓸 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의 직분 제도는 “서로 사랑하라”(요 14:34)는 그리스도의 새 계명과 “모든 사람과 평화하라”(롬 12:18)는 바울의 가르침과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작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회 직분 제도를 보면, 물론 교단의 교리(장로, 감독, 회중)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성별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과 단절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 이는 대체로 60대 남성들이 ‘항존직’의 직분을 독점하면서, 교회 구성원을 위한 의견수렴이나 정책 결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상식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오히려 ‘인본주의’라 단정하면서, 목사 개인의 결정을 ‘신본주의’로 포장하며, 교회를 비상식적이고 괴상한 집단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교회의 직분 제도는 마치 남성들에겐 ‘항존직’을 부여하여 ‘권력’과 ‘대표성’을 마구 남발하는 반면에, 여성들에겐 ‘임시직’을 부여하여 ‘일과 헌신’을 강요하는 제도로서 장착되었다. 권력과 대표성을 갖는 남성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명분으로 교인에게 훈계와 갑질을 행사하면서, 차별과 불통을 일으키고 있다. 해서 요즘 젊은 여성들과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결국, 현재 교회는 노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전 교인의 직분화’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같은 직분 안에도 ‘성골’, ‘진골’과 같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목사 직급에는 당회장 목사, 원로 목사, 은퇴 목사, 부목사, 협동 목사 등이 있으며, 장로라는 직급에도 시무 장로, 원로 장로, 은퇴 장로, 협동 장로 등이 있고, 권사라는 직분에도 시무 권사, 은퇴 권사, 명예 권사라는 서열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늬는 ‘섬김’, 실제는 ‘군림’

내가 교회 안의 직분적 계급의식에 대해 민감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홀로 예수를 믿으면서, 직분에 대한 의식과 감각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교회 안에 깊숙이 들어와 봉사하면 할수록, 직분의 서열과 경계선은 마치 높이 쌓아놓은 벽처럼 느껴졌다. 교회주보에 “섬기는 자들”에 적힌 담임 목사- 시무 장로- 원로 장로- 은퇴 장로- 부목사- 교육목사- 강도사- 시무 전도사- 교육 전도사라는 직분 서열을 보노라면, 속으로는 ‘군림하는 자들’로서 읽힌다. 우스꽝스럽게도 모 대형교회 목사는 지게 지는 머슴 흉내까지 내면서, 아들에게 당회장 자리를 버젓이 세습하면서도 “십자가 지는 것”이라고 우기는 형국이 돼버린 것이다. 교회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성서의 말씀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고, 실제는 직분 제도로 인해 성별 간, 세대 간, 계층 간의 계급화를 당연시하는 집단이 돼버린 것 같다. 누군가는 교회(敎會)를 ‘교회’(交會)로 말하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직분의 서열화를 확고히 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인 사랑과 평화, 친교와 연합을 외친다는 건 넌센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의 권위는 ‘섬김’과 ‘희생’이다

교회 직분 제도에 대한 성서적, 교회사적, 신학적, 선교학적, 실천신학적인 논문들을 살펴보니, 가장 눈에 띄는 근거는 장로교 교회 정치의 원조인 칼빈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주되심과 삼중직(왕, 선지자, 제사장)인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초하여, 교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교회의 권징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근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다. 그러나 교회의 직분 제도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권위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권위가 어떤 성격의 권위를 말하는 것인지,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교회는 위아래 없이 모두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연결된 유기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이뤄갈 것인지에 대해선 물을 필요가 있다. 목사가 교인에게 행사하는 권위의 근거가 ‘그리스도의 권위’에 있다면, 그리스도의 권위는 ‘섬김’과 ‘희생’의 권위로부터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권위를 부여하실 때는 ‘사람을 세우며, 사람을 위해 섬기며 희생하는 권위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준 권위는 섬김을 받는 권위가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을 섬기며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내어준 권위이기 때문이다(막 10:45).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세상의 통치자들처럼 군림하는 자들이 아니라, 마치 식탁에서 주인의 필요를 챙기는 종처럼, 자신을 낮추며 섬기는 자들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삼중적 권위는 우월의식이나 특권이 아니라, 섬김의 지도력으로 나타나야 하며, 인간과 세상을 돌보아 하나님의 평화를 실현하며 모범이 되는 교회 정치 지도력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자료사진
자료사진ⓒ뉴시스

그런데 현재 목사들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권위’를 맘껏 누리려는 반면에, ‘섬김과 희생’은 교인들의 몫으로 생각하고 있다. 나는 교회의 직분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목사의 ‘항존직’에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단지 목사 개인의 소명에만 의지하여,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 무조건 목사가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선출직이 아닌 항존직 목사는 ‘자질 검증’ 시스템과 윤리적, 목회적 책임을 지는 일 없이도 70세까지 시무 연한이 보장되면서, 교회 대표와 의사결정 구조에서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니, 목사 개인의 신앙 양심에 의존할 도리밖에 없는 교회구조다. 이쯤 되면, 교회의 직분 제도는 남성 목사를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설상가상, 대부분 남성 중심의 항존직은 ‘원로’, ‘은퇴’, ‘명예’, ‘증경’이라는 명분으로 남성 항존직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교회 안의 여성과 약자들의 인권과 자율,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고 있다. 올 4월에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있다. 4년직 시장 후보가 되기 위해서도 다양한 방식의 검증이 이뤄지게 된다. 하물며 ‘항존직’으로 정해 놓은 목사의 자질과 자격을 검증을 할 수 있는 시스템과 견제 장치조차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자질 검증과 견제 장치가 없는 목사의 ‘항존직’은 영원히 ‘고인 물’이 되도록 방치하는 제도가 아니던가!

교회의 직분 제도의 변화를 기대한다

필자는 ‘항존직과 임시직’으로 나누는 교회의 직분 제도가 오히려 교회를 폐쇄적이며 비민주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교회의 항존직은 대부분 ‘장년 남성’들이 차지하고, 여성은 ‘임시직’에 쏠려있다. 명분상으로는 ‘교회의 질서’ 또는 ‘그리스도의 권위’를 갖는 목사들이 교회를 운영한다며, 성서적, 교회사적으로 엄청난 논리를 대면서 근거를 제시한다지만, 결국, 교회는 장년 남성을 신의 대리자로 세워, 그 밑으로 줄 서게 만드는 ‘설국열차’일 뿐이다. 종교개혁의 ‘만인사제설’과 사도신경에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오며”를 외치며, 교회를 ‘공동체’라고 말하고 싶다면, 남녀 간, 세대 간 갈등과 위계를 조장하는 ‘항존직과 임시직’의 구분은 옳지 않다. 또한, 목사직도 자질 검증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개인 소명에 의존하지 말고, 선출직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 이런 와중에서, 담임 목사의 재신임 투표를 하는 교회가 있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바로 예인 교회(경기도 부천시)이다. 예인 교회는 2021년에 정성규 목사를 세 번째로 담임 목사로 재신임하였다. 예인 교회처럼, 기득권을 내려놓고 교인들로부터 재신임을 받는 교회와 목사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교회의 직분 제도가 교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며, 그리스도의 몸 된 기능을 감당하기 위해선, 항존직과 임시직의 구분을 없애고, 모든 직분자에게 재신임 투표를 하여 주님 앞에서 청지기 자세로 직임을 감당하도록 해야 하며, 지금까지 남성만이 대표자로 취했던 교회 직분 구조는 남녀 모두가 대표자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교인 세대별 수에 따라 대표자를 선임하여,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정책결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민주적인 방식의 직분 제도로 전환해주길 바란다. 교회의 직분 제도의 변화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는 가장 복음적이며 혁신적인 대안이 아닐까!

강호숙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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