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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프랑스 임신중지 역사 통해 오늘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 연극 ‘344명의 썅년들’
연극 '344명의 썅년들' 초연 당시 한 장면.
연극 '344명의 썅년들' 초연 당시 한 장면.ⓒ극단Y

1971년 4월 5일, 프랑스 진보잡지 ‘누벨 옵세르바퇴르’ 표지에 한 선언문이 실렸다. 당시 낙태가 불법화되어 처벌받던 프랑스에서 시몬느 드 보봐르 등 여성 명사 343명이 서명한 ‘343 호소문(un appel de 343 femmes)이었다. 이들은 자신의 얼굴 사진을 싣고 ‘나는 낙태했다’고 선언했다. 1972년 10월 경, 또래 남학생의 성폭행으로 임신을 한 16살 여학생 보비니가 임신중지를 한 죄로 형사사건에 기소된다.

연극 ‘344명의 썅년들’은 두 실화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헌법 불일치 결정이 난 2019년에 초연된 작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임신중지 비범죄화 첫 해인 2021년 다시 관객과 만나는 ‘344명의 썅년들’은 새로운 과제와 질문을 던지며 막을 올렸다.

이야기는 196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의사 마리 끌레르와 함께 일하는 디안은 평소와 같은 하루를 시작한다. 임신중지 수술을 문의하는 전화가 계속해서 오고 디안은 그때마다 이 병원은 그런 수술을 하지 않는다며 전화를 끊는다. 마침 예약하지 않은 한 여성이 찾아와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말한다. 의사 마리를 만난 여자는 임신중지 수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고 사정해 보지만 의사 마리는 거절을 한다. 다시 오면 고발을 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와 함께. 그렇게 병원을 나간 여자는 아이를 낳고 결국 자살을 하게 된다.

프랑스 잡지에 ‘344 선언’이 실리고 프랑스와 세계 각지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그런 세상과 달리 프랑스 의사협회의 임신중지 수술에 대한 지침은 전혀 바뀐 것이 없었다. 의사 마리와 디안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때 한 부인과 딸이 의사 마리를 찾아 온다. 엄마 미셀은 16살 딸 마리가 성폭행으로 임신을 하게 되었다며 의사 마리에게 임신중지 수술을 부탁한다. 의사 마리가 수술을 해주지 않으면 소녀 마리는 길거리에서 불법수술을 받게 될 것이다. 무수히 많은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때마침 의사 마리는 가족과 같은 디안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다. 디안 역시 아이를 낳을 것인지, 수술을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의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의사 마리와 디안, 그리고 소녀 마리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이야기는 중반이 지나자 연극적인 전개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전환된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여성들의 낙태죄 폐지 운동 과정이 숨가쁘게 브리핑된다. 이 연극은 감정적이고 드라마틱한 전개를 포기하고 사실을 전달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애써 여성을 비극의 여주인공으로 만든다거나 시대의 희생양으로 만들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비극적인 여성의 운명이 아니라 잘못된 사회제도와 법으로 여성이란 인간의 권리가 왜곡되었음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나는 당신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은 왜 내 질문에 하나도 대답을 해주지 않는거죠?”
“태아의 권리는 있는데 우리 아이의 권리는 없는 건가요?”
엄마 미셀의 질문에 검사는 도돌이표처럼 미셀을 향해 ‘임신중지가 불법임’을 반복한다. 이 장면은 오랜 시간 여성들의 절규에 가까운 질문에 보내 온 국가와 사회의 반응과 너무나 닮아있다.

“나는 살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한거에요.”
“나는 죽고 싶지 않아요.”
연극은 등장인물들의 절제된 행동과 대사를 통해 지나치리만큼 차분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연대와 지지를 위해 내민 손은 관객을 넘어 세상을 향한다. 연극 ‘344명의 썅년들’은 ‘썅년들’이란 조롱과 비난을 감수하며 걸러 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넘치지 않는 감정으로 담아냈으로써 이야기에 진정성을 더한다. 또한 감동에 앞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숙연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연극 ‘344명의 썅년들’

공연날짜:2021년 2월 19일(금)∼20201년 2월 28일(일)
공연장소:알과핵 소극장
공연시간:월-금 20시/토, 일 16시
관람연령:만 14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90분
제작진:작,연출 강윤지/조연출 이수림/기획 최샘이/조명 홍유진/음양 목소/그래픽,사진 박태양
출연진:강서희, 강주희, 김소영, 변승록, 백혜경, 이산, 이청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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