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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 불려 나와 ‘산업재해는 노동자 때문’이라는 CEO들
지난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지난해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매년 반복되는 산업재해에 이례적으로 국회 청문회까지 열렸지만, 산재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기업 대표들의 왜곡된 인식은 여전했다. 잇따른 산재 사고에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않은 채 사고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산업재해 관련 청문회'에서는 건설·택배·제조업 분야에서 최근 산재가 자주 발생한 9개 기업의 대표들을 증인으로 불렀다. 산재가 발생하는 핵심 원인을 짚어보고, 앞으로 산재 사고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청문회였지만 일부 증인의 무책임한 언행이 빛을 바래게 만들었다.

'노동자들 불안전한 행동으로 산재 많이 일어나'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이사 주장에 민주당 의원들 비판
"제대로 된 진단해야", "정말 잘못된 방향"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대표이사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 공동취재사진

우선 현대중공업 한영석 대표이사는 '산재 사고와 관련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떤 대책을 세울 것이냐"는 취지의 무소속 박덕흠 의원의 질문에 "중대사고가 많이 발생한 데 대해 국민께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고인이 된 산재 사고로 고인이 된 분들에게 매우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사과했다.

문제성 발언은 사과를 마치자마자 나왔다. 한 대표는 "저희들이 사고가 일어나는 유형을 보니까 실질적으로 불안전한 상태와 작업자 행동에 의해 많이 일어난다"며 "불안전한 상태는 저희들이 안전에 투자해 많이 바꿀 수 있지만 (노동자들의) 불안전한 행동은 상당히 (바꾸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저희 작업장은 직원이 약 3만명이 있고, 중량물을 취급하는 작업장"이라며 "정형화돼 있는 것보다 상당히 비정상적으로 작업하는 부분이 많이 이뤄져 저희들은 항상 표준작업에 의한 작업을 유도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불안전한 행동을 하는 작업자가 많아 그런 부분은 더 세심하게 관리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산재 사고 책임의 상당 부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발언으로 읽혀 논란이 됐다. 회사는 적절한 투자를 통해 안전한 환경을 만들려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불안전한 행동으로 산재가 많이 일어난다는 취지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당장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한 대표의 부적절한 발언을 지적했다.

이 의원은 "산재의 주원인 중 하나가 불안전한 행동이라고 하면서 작업자들이 무엇을 지키지 않아 행동을 잘못한다는데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앞으로 실시될) 중대재해법 처벌에서 피하지 못할 것"이라며 "제대로 된 현장 진단을 다시 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어 "(이러한 발언은) 노동자들의 불안전한 행동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처럼 (책임을) 전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장철민 의원도 미리 준비했던 질의 대신 한 대표의 발언에 대해 따져 물었다.

장 의원은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 가운데 최근 발생한 3건의 재해보고서를 직접 읽어봤다며 "이 세 가지 경우 중 노동자들이 어떤 불안전 행동 때문에 돌아가시게 된 건지 말할 수 있나"라고 집중 추궁했다.

이어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을 없애겠다는 것을 (산재 대책의) 하나의 방향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냐"라며 "노동자의 불안전 행동만으로 (산재 원인을) 보는 건 정말 잘못됐다"고 날을 세웠다.

한 대표는 자신의 발언 취지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한 대표는 "불안전 작업이라는 건 비정형화돼 있는 작업이라는 의미였다"며 사업장을 관리할 때 비합리적 요소를 없애겠다는 의미였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장 의원의 지적이 계속되자 "저희들이 불안전한 작업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표준작업을 바꾸고, 비정형화돼 있는 작업을 정형화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만들어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만성적 과중 업무"로 인한 과로사 인정됐는데
'업무강도 낮았다' 주장 고수한 쿠팡 대표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노트먼 조셉 네이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가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 공동취재사진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노트먼 조셉 네이든 대표이사는 최근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과로사를 인정받은 쿠팡 물류센터 28세 청년 노동자 고 장덕준 씨의 업무 강도가 낮은 수준이었다는 주장을 고수해 빈축을 샀다.

장 씨는 입사 후 16개월간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심야 노동을 이어왔으며, 고된 노동으로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장 씨의 체중은 15kg이나 빠졌다. 장씨의 산재가 인정된 업무상 질병 판정서에 따르면 고인은 "만성적으로 과중한 업무"를 이어왔다는 게 인정됐다. 또한 의학적 소견상 근육의 과다 사용으로 고인의 근육이 급성으로 파괴됐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고인의 과로사를 부인해왔던 쿠팡 측은 이 같은 결과가 나오고 난 뒤에야 유족에 유감을 표하는 사과문을 냈다.

네이든 대표는 이날 청문회에서 '쿠팡 측에서는 고인이 근무한 7층의 업무강도가 낮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정의당 강은미 의원의 질문에 "직책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하지만 물동량과 관련해, 아웃풋에 있어서는 (업무강도가 낮은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참고로 네이든 대표와의 질답은 동시통역을 거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강 의원은 "쿠팡 측의 주장은 장덕준이라는 노동자의 업무가 힘들지 않다고 이야기한 것"이라며 "이게 사실이라면 가장 업무 강도가 낮은 사람이 과로로 죽은 것이다. 더욱이 (낮은 강도의 업무로 인해) 27살 젊은 노동자가 근육이 파괴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의원의 거듭된 질문에도 네이든 대표는 동문서답식 답변을 내놨다. 네이든 대표는 "이해하기로 고인께서는 '워터 스파이더' 업무를 진행한 것으로 안다"며 장 씨가 일명 '스파이더'로 불리는 현장 지원 업무를 했다고 설명했다.

강 의원은 "워터 스파이더 업무를 모르는 게 아니다. (고인의) 판정서를 보기는 했나"라며 "판정서에는 일일 중량물이 470kg 이상이고, 주 평균 58.7시간 일했고, 12주 동안은 58.3시간 일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과로사했다는데 이 판정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제야 네이든 대표는 "그 조사 결과를 부인하는 건 아니다. 해당 조사에 대해 저희도 존중한다"며 "조사 결과를 통해 나온 정보들을 바탕으로 근로환경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강 의원은 또한 고인이 일한 작업장 등 쿠팡의 일부 작업장의 냉난방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네이든 대표는 "저희는 온도 조작뿐 아니라 근로 관련 모든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저희가 대처해왔다"고 주장했다.

한편, '허리 지병'을 이유로 불출석하려 했던 포스코 최정우 대표이사 회장도 이날 산재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앞서 최 회장은 '요추부 염좌상'이라는 진단서를 내고 청문회를 피하려 했는데, 이러한 '꼼수'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거센 질타를 받았다.

국민의힘 김웅 의원은 "요추부 염좌상 2주 진단서를 제출했던데 그 진단서를 내라고 한 사람은 아마 증인의 친구라기보다 적일 것"이라며 "왜냐면 요추부 염좌상, 경추부 염좌상은 주로 '보험 사기꾼'들이 내는 건데 포스코 대표이사께서 낼 만한 진단서는 아니라고 보인다"고 직격했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도 "지금 멀쩡한데 진단서 2주 나온 건 낯뜨겁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여야 의원들의 잇따른 질타에 최 회장은 "제 생각이 짧았던 것 같다"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관련 청문회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시스 / 공동취재사진

남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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