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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아메리칸 팩토리 : 노동의 과거, 현재, 미래를 말하다

해외 한국 기업에 대한 복잡한 마음

나의 첫 해외여행지는 태국이었다. 처음으로 발 딛은 해외 땅, 방콕 공항에서 한국기업 광고판을 봤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친구로부터 해외에서 우리나라 기업 광고만 봐도 뿌듯해지면서 애국심이 생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름 노동운동에 발을 담갔던 나였기 때문에 기업 중심의 애국주의에 헛웃음이 났었다. 그런데 막상 그 광고판을 보니 뿌듯해져서 낯이 뜨거워졌다. 애국주의적 감정이라고 붙일 수는 없으나, 반가운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90년대 말, 홍콩에서 국제노동운동단체 활동을 할 때, 무수히 들은 것이 해외 투자 한국기업의 문제들이었다. 당시 한국 기업은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규모의 공장들이 해외로 공장 이전을 가속화하고 있었다. 더 싼 노동력을 위한, 해외 시장 확보를 위하여 해외투자가 이어졌다. 이들의 문제점에는 투자지의 노동법이나 노동조합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인격과 문화를 폄하하는 관행, 전근대적 노무관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아가 한국인은 폭력적, 가부장적, 군대문화에 젖은 민족이란 오명을 얻고 있었다. 한 중국공장에서는 한국관리자가 노동자를 무릎 꿇게 하는 일까지 있었다. 거기서 파업이 일어났고, 그들의 구호는 ‘우리는 무릎 꿇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소식에 얼굴이 붉어졌다.

국력으로 상징화되는 기업의 이미지 뒤에는 각종 폭력이 가려져 있다. 해외 공항에서 보는 한국 기업의 간판에 우쭐하는 것도, 기업의 폭력적 태도에 민족성과 문화의 오염으로 생각하는 것도 자본 대 노동의 성격으로 문제를 올바르게 접근하는 것을 방해한다. 그럼에도 나를 비롯한 시민들은 종종 그런 늪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020년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아메리칸 팩토리’는 그런 딜레마를 보여준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홍보 포스터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홍보 포스터ⓒ넷플릭스

노사갈등인가, 문화적 갈등인가

21세기 들어서 세계 다국적 기업, 자본의 목적지였던 중국이 바뀌고 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면서 중국 자본이 한국뿐 아니라 해외로 급격히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일을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는 자세히 보여준다. ‘아메리칸 팩토리’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 중국의 무역분쟁이 심화되던 때에 넷플렉스에서 개봉되었다. 아메리칸 팩토리는 중국자본이 운영하는 미국 공장에서 일어나는 노사 갈등을 통하여, 자본과 국적 그리고 노동자와 국적이란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영화는 2008년 12월, 미국 GM 공장이 오하이오, 데이턴에서 문을 닫는 날로 시작한다. 기자들이 몰려들고, 지역 목사가 기도를 하고, 노동자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GM의 철수는 지역에서 커다란 뉴스였다. GM이 떠나간 뒤 데이턴 지역은 일자리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도 죽어가고 있었다. 8년이 지난 2016년 황폐화된 공장과 지역에 새로운 투자를 시작한 것은 중국의 자동차유리 제조공장인 푸야오다. 데이턴의 주민은 이 공장을 환영한다. 오하이오주는 푸야오 기업에 막대한 자금 지원을 하고, 데이턴에는 ‘푸야오 애버뉴’라는 거리명이 생긴다. 데이턴의 주민들은 공장의 가동으로 예전처럼 블루컬러 중산층의 위치로 회복되리라 희망한다. 그러나 이런 환영과 낙관은 곧 사라진다. 그들은 달랐다. 노동자의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상명하복식의 관리, ‘국가와 기업 그리고 나’는 하나라는 집단주의적 문화는 미국노동자에게는 버거운 것이었다. 중국 관리 측에서는 생산성이 낮은 미국 노동자에 대한 불만이 많다.

이 영화를 보면서, 미국이 세계 중심이라고 믿는 많은 미국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자본의 투자만이 아니라, 관리자들도 모두 중국인이다. 직접적으로 중국인으로부터 명령을 받는다. 이 영화를 통하여 미국인은 중국에 대하여 분노하고, 노사갈등을 민족적·문화적 갈등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실제로 한 언론의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왜 미국 노동자들이 중국 자본 밑에서 일하는가. 노동자들이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민족자본, 일국의 자본이란 프레임은 깨졌다. 다국적 자본, 기업이 된 지 오래다. 러스트 벨트를 이루던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 미국 노동자를 버리고 떠났다. GM도 그 하나이다. 한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기업들도 해외로 이전했다. 한국, 일본의 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중서부 지역, 자동차 제조업이 번성하던 지역은 해외 투자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아메리칸 팩토리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푸야오에서 노사문제를 문화적 갈등으로 접근을 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주이다. 푸야오는 ‘한 지붕, 하나의 문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미국인들은 중국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인들의 중국에 대한 시각을 바꾸자”며 데이턴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노동자들을 교육한다. 그러면서 미국인들을 다루는 방식을 가르치기도 한다. 중국인 노동자가 미국 노동자보다 나으니까 그들을 잘 교육해야 한다며 중국인의 자긍심을 강조한다. 실제로 문화의 차이는 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우열로 나눌 수 없다. 영화 속 간간히 보이는 미국과 중국 노동자들 간의 유대는 그런 점을 증명한다.

노동조합 일자리인가. 비노동조합 일자리인가

미국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GM 일과 푸야오의 일을 비교한다. 노동자들은 중산층이라는 자긍심이 있었다. GM에서 8시간 노동제와 시간당 29달러 일자리를 통하여 집을 샀고,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GM이 떠난 후 중산층 생활은 무너진다. 은행담보가 있던 집은 빼앗기고, 차를 잃고, 자녀는 학업을 지속할 수 없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일자리는 유통회사의 창고일, 판매일 등 비정규직 일이 대부분이었다. 복지혜택도 없는 시간당 9달러짜리뿐이었다.

푸야오 유리공장이 노동자에게 제시된 임금은 10년 전의 임금수준보다 낮은 시간당 12.84달러였다. 4인 가족이 좋은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실업 상태, 비정규직 일자리에 있던 노동자들은 기꺼이 공장을 환영했다. 다른 일자리와 달리 최소한 복지혜택이 있었다. 또한 노동조건이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노동자는 푸야오 회장에게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일을 하게 되어 고맙다고 하느님께 기도한다.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장면 캡처
넷플릭스 ‘아메리칸 팩토리’ 장면 캡처ⓒ넷플릭스

그러나 산재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안전대책이 미비하고, 해고가 속출한다. 휴게공간이 없어진다. 그리고 휴게 시간 동안에는 끊임없이 중국 푸야오 공장의 노동자들이 기계처럼 일하는 모습, 홍보영상이 보인다. 서서히 희망은 불만으로 바뀌고, UAW(미국자동차노동조합) 노동조합 캠페인이 시작된다. 푸야오 기업은 기업 초창기부터 노동조합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푸야오 회장은 노동조합이 생기면 기업은 문을 닫는다고 말해왔다. 노동조합 설립 추진 움직임에 대항하여 기업은 노사관리 전문가를 고용한다. 이들은 미국인들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반노조 교육을 하고, 공장 곳곳에 노동조합에 반대하라는 표지판이 붙는다. 교육은 아주 단순했다. 파업을 하면 회사는 문을 닫을 것이라는 점, 경영진은 노동자를 해고할 수는 없지만 영구적으로 불리한 자리로 교체할 수 있다는 위협이었다. 임금이 2달러씩 인상되었다. 시간당 임금이 14달러가 된 것이다. 이 인상에는 중국 공장의 노동자와 동일한 장시간 근로와 노동강도가 포함되었다. 미국의 노동운동의 위대한 결실인 8시간 노동제는 공장에서 사라졌다.

GM의 철수로 쓰라린 생활경험을 한 노동자들 대다수는 노동조합 설립에 반대표를 던진다. 2018년 창업 2년 만에 푸야오는 흑자를 기록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초임은 시간당 14달러 그대로이다. 10년 전, 노동자들에게 양질이 일자리를 제공한 최대의 공로자는 GM이 아니라 노동조합이었음을, 노동자들을 중산층으로 만든 것은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 단결이라는 점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이후 푸야오 공장은 기계화를 본격화한다. 생산 현장에서 AI를 보면서 담당자는 회장에게 기계화로 노동자가 몇 명 해고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영화 초반에 생산 현장에서 보이던 노동자들이 모습이 부쩍 줄어들어 있다. 영화는 중국과 미국 공장 양쪽에서의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영화는 미국 노동자와 중국 노동자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동일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의 노동자들은 동일하게 노동의 미래, 기계화에 직면해 있다. 이들은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UAW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오하이오 주 하원의원이 푸야오 노동자들에게 한 연설에 그 메시지가 있다. “노동자와 노동운동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사회는 변하지 않습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상류층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규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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