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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모든 일이 가능해진 오늘의 대중음악

음악을 듣는 방법은 계속 바뀌었다. 음악을 듣는 방식이 바뀔 때마다 음악을 듣는 감각과 음악을 대하는 태도, 제작의 방식, 시장의 규모도 바뀌었다. 전기 기술에 기반한 녹음/재생 장치를 발명하기 전에는 라이브로 보고 듣는 방법 뿐이었다. 음악은 재생할 수 없었다. 오직 한 번 뿐이었다. 지역 아니 동네의 경계조차 넘어서기 어려웠다. 최대한 집중해서 들어야 했다. 그 때 음악은 특별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혼자 흥얼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음악은 상품이 되기 어려웠다.

19세기 중반부터 레코드 테크놀로지를 찾아내면서 비로소 음악은 재생 가능해졌다. 음반에 고정된 음악은 대량 생산, 대량 소비하는 대중문화 상품이 되었다. 음반은 지역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섰고, 음악인은 세계를 넘나드는 스타가 되었다. 당연히 시장이 형성되었고, 전문 업체가 등장했다. 라디오와 영화가 도왔다. 곡의 길이와 형식은 규격화되었고, 바이닐 음반과 턴테이블은 특유의 번거로움으로 음악 듣는 취미를 혼자 즐기는 고상한 취미의 영역에 안착시키기도 했다. 음반 덕분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었다. 음악 감상은 대중적인 취미이자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는 행위가 되기 시작했다. 음악은 다른 지역과 세계를 만나는 문을 열어주기도 했다.

카세트 테이프 (자료사진)
카세트 테이프 (자료사진)ⓒ사진 = pixabay

그 후 등장한 카세트 테이프와 워크맨은 음악을 듣는 연령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 시장은 더 커졌다. 음악의 개인화에도 불이 붙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이동하면서 혼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가 만나면서 음악을 더 쉽게 소장하고 편집할 수 있는 개인 저장/재생 창고가 탄생했다. 바이닐 음반의 시대에는 싱글을 이어 들어야 해 번거로웠지만, 카세트테이프의 시대에는 히트곡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곡만 모아 듣기 쉬웠다. 불법 복제한 길보드 차트의 카세트 테이프를 사서 듣거나, 동네 음반 가게에 부탁해 편집 음반을 만드는 방식,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공테이프에 녹음하는 방식이 대중화 되면서 취향대로 골라 듣는 패턴이 확산되었다.


생각해보면 지금 온라인 음악 서비스에서 각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듣는 방식은 40여 년 전부터 보편적이었다. 특별히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반은 구입하지만, 그렇지 않은 히트곡은 자신이 녹음해서 듣거나 녹음해서 파는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 될 일이었다. 편집 음반의 인기는 CD의 시대, mp3와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로도 이어졌다. 저렴한 카세트 테이프 제작 비용 덕분에 음악을 만들고 알리기도 쉬워졌다.

한편 칼라 텔레비전은 음악을 ‘듣는 시대’에서 ‘보는 시대’로 완전히 바꾸었다. 귀를 주로 사용하게 감각은 시각과 청각을 함께 활용하는 방식으로 변모했다. 뮤지션들에게는 음악 만큼 외모나 스타일, 춤이 중요해졌다. 뮤지션들은 대중예술인에 더 가까워졌다.

그 후에는 CD가 만든 변화보다 mp3가 만든 변화가 훨씬 컸다. 더 이상 음반을 구입하거나 소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음악은 아우라를 잃었다. 대신 지역을 초월해 쉽게 전송하고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소유권과 저작권에 대한 논쟁에 불이 붙었고, 음악 산업의 판도가 바뀌었다. 통신사업자들이 음악 산업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음악의 순환주기는 짧아졌지만, 어떤 음악이든 과거와 현재의 구별 없이 손쉽게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은 게임/웹툰/영상을 비롯한 콘텐츠와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BGM의 자리로 위치를 옮겼다. 특정 뮤지션을 경애하는 이들은 여전히 설레며 음반을 사고, LP를 구입하는 이들이 늘었음에도 더 이상 음악 감상이 취미라는 사람은 없다.

음악 감상 (자료 사진)
음악 감상 (자료 사진)ⓒ사진 = PIXABAY

무엇보다 음반의 시대에서 mp3를 거쳐 스트리밍의 시대로 건너오면서 히트곡만 모아 듣거나, 자신이 듣고 싶은 곡만 듣는 일이 ‘누워서 떡 먹기’ 보다 쉬워졌다. 헤비 리스너들은 여전히 음반을 사고 누군가의 팬임을 자처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트 1위부터 100위까지를 듣는 일만으로 충분했다. 실시간 차트는 계속 바뀌었고, 보통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좋아하는 곡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음악을 듣고 음악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나는 이들은 소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음악은 노동요일 뿐 이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기를 쓰고 차트에 올라야 했다. 온갖 편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강력한 팬덤을 가진 이들의 생존력이 높아졌다. 모르는 음악이 차트에 끼어들기는 더 어려워졌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 비용이 낮아지고 수많은 음악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음악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공급이 늘어난데다, 리모콘으로 채널을 넘기듯 손가락 터치로 음악을 넘길 수 있게 되면서 듣자마자 사로잡지 못하는 음악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되었다. 전주는 짧아졌고 노래의 훅은 앞으로 튀어나왔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부풀리고 과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히트곡만 듣는 패턴은 전 세계의 공통 현상이 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이닐 음반의 시대부터 히트곡만 듣거나 자신의 한정된 취향대로 들어왔다.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이용자의 경우 90%가 최상위 1%의 곡만 듣고, 99.9%의 이용자는 상위 10%의 곡만 듣는다고 하지 않나.

스포티파이 한국 미디어데이 이미지.
스포티파이 한국 미디어데이 이미지.ⓒ스포티파이

빅데이터를 구축하면서, 취향대로 듣기는 더 쉬워졌다. 스포티파이에서는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계속 연결해준다. 유튜브 뮤직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번 곡을 고르면 그 곡을 좋아하는 이가 좋아할만한 곡들을 계속 이어서 들려준다. 굳이 찾아 들을 필요가 없다. 빅데이터와 AI의 시대에는 플랫폼 서비스의 시스템이 DJ의 역할을 대신한다. 앨범 단위로 듣지 않고 싱글을 이어듣는 패턴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아는 온라인 음악서비스 업체들은 헤비 리스너나 음악평론가 등이 골라준 큐레이션으로 수많은 믹스 테잎을 만들고, 음악 듣는 스타일을 파악해 끌릴만한 플레이리스트를 제시한다. 상황이나 장르, 트렌드를 감안한 플레이리스트들은 듣는 이의 수고를 줄여준다.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이용자들이 더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이용자들 역시 편리한 방식에 끌리기 마련이다. 실시간 차트라는 단일 상품에서 다양한 큐레이션 상품으로 메뉴가 늘어나면서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의 힘은 더 강력해졌다. 의도적으로 곡을 넣거나 뺄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음악 서비스들도 대동소이한 차트만으로는 차별성을 드러낼 수 없었기 때문에 더 매혹적인 플레이리스트로 호객행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음악 서비스에서 제시한 큐레이션을 묵묵히 듣지는 않는다.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을 만나면 음반을 찾아가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경로로 활용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곡으로 넘겨버리는 일이 허다하다. 손가락 터치 한 두 번으로 음악을 고르고 들을 수 있는 스마트폰과 스트리밍 서비스의 결합은 너무 간편해서 굳이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게다가 이렇게 듣고 저렇게 들으면 된다고 알려주기까지 하지 않나.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세상의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온라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는 돈이 많지 않아도, 음악을 잘 몰라도 음악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음악의 대중화와 음악 시장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 BE 앨범 'Essential Edition'
방탄소년단(BTS) BE 앨범 'Essential Edition'ⓒ사진 =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이런 상황에서 정규 음반을 만드는 일이 부질없게 느껴질 수 있다. 어차피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히트곡만 듣는다면, 폭넓고 적극적인 음악 소비자가 소수라면, 한 곡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규 음반이라는 포맷이 등장하면서 뮤지션의 세계관과 음악을 드라마틱하게 구성해 내놓게 되었고 대중음악을 더 진지하게 듣게 되었지만, 음반 단위로 듣는 사람은 소수였고 갈수록 더 소수가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레이블이나 기획사에서 정규 음반을 대충 만들 수는 없다. 팬덤을 구축하는데 있어 앨범은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며, 공연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전략 상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방탄소년단, 빌리 아일리쉬, 포스트 말론 등의 인기에 있어 음반의 완성도와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사람들이 항상 싱글 단위로 듣고 차트와 큐레이션 목록대로 듣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싱글을 잘 만들고, 매혹적인 뮤직비디오로 음악 팬들을 잡아 끌어야 했다. 호감을 가진 이들을 앨범을 통해 팬으로 만들어 버리고, 공연으로 팬덤을 완성해야 했다. 각 단계 마다의 전략이 중요해졌고, 모든 과정에 공을 들여야 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라는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음악을 만들고 듣는 패턴을 바꾸고, 전 세계의 경계를 허물었을 뿐 아니라 더 강력한 월드 스타가 나올 수 있게 했다. 더 적은 돈을 쓰고 더 간편하게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시장이 성장하지 않을 리 없다. 케이 팝 뿐만 아니라 한국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이 서구권 이외 나라의 차트에서 발견되는 일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음악 시장은 통합되었고, 계속 성장한다. 어디에서 살 길이 열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늘은 변화무쌍하고 모든 일이 가능하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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