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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1968년 베트남서 벌어진 한국군의 학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책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과 ‘기억의 전쟁’
책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과 ‘기억의 전쟁’ⓒ기타

지난 2018년 4월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선 ‘베트남 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이 열렸다. 재판에서 김영란 재판장은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 제 3조에 정한 배상 기준에 따른 배상금을 지급하고, 원고들의 존엄과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 등에 관하여 공식 인정하라”고 판결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시민평화재판이지만 원고로 참여한 1968년 베트남 퐁니·퐁넛 마을과 하미 마을 집단 학살 사건의 생존자인 두 명의 응우옌 티 탄(생존자의 이름은 응우옌 티 탄으로 같다)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이 증언한 한국군에 의한 집단학살 사건은 끔찍하다. 노인과 아이 가리지 않고 학살이 자행됐으며 각각 74명과 13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미군은 학살 현장을 조사했고, 학살 현장을 사진으로 남겼다. 퐁니·퐁넛 학살 관련 미군 조사보고서는 극비문서로 분류되어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가 32년 만인 지난 2000년 6월 1일 기밀 해제가 돼 세상에 알려졌다. 고경태 당시 한겨레21 기자는 미 국립문서보관소 기밀해제 문건을 통해 스무 장의 사진을 만났다. 1968년 미 해병 제3상륙전부대 소속 본(J. Vaughn) 상병이 촬영한 ‘그날’의 기록은 32년만인 2000년 6월1일 빛을 보게 됐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보도해 온 ‘한겨레21’은 2000년 11월23일 자에 이 사진들과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고경태 기자를 통해 이 사실이 세계 최초로 보도하면서 잔혹한 비극은 세상에 알려졌다. 2004년에는 퐁니·퐁넛 학살이 벌어진 곳 가운데 하나인 야유나무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음에도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정부와 군은 베트남 민중들에게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이 베트남 정부에 유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아직 정식 사과와 배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공식 사과와 배상이 미뤄지는 동안 한쪽에선 오히려 학살의 과거를 지우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1987년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대한민국월남참전자회’의 전신인 ‘따이한 클럽’을 만들어 1992년 5월 충북 옥천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월남전참전기념비 건립 운동을 벌였고, 수십 개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베트남 민중들을 향한 진정한 사죄와 보상으로 가는 길이 여전히 험하고 어려울 것이란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1968년 2월 12일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학살을 고발하고, 베트남 민중들을 향한 진정한 사죄와 보상으로 가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 지 보여주는 책이 최근 잇따라 출간됐다. 바로 퐁닛·퐁넛 학살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보도하며 알렸던 한겨레신문 고경태 기자가 출간한 책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과 해당 학살 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 등을 담은 영화 ‘기억의 전쟁’을 만든 이길보라 감독 등 제작진이 펴낸 책 ‘기억의 전쟁’이다.

그날 퐁니·퐁넛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

‘베트남전쟁 1968년 2월 12일’은 ‘1968년 2월 12일’의 전면 개정판으로 1968년 2월 12일에 일어난 퐁니·퐁넛 마을 학살을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다. 1968년 2월 12일의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세밀화처럼 그려내려고 한 저자의 시도는, 피해자의 증언을 꼼꼼히 담는 인터뷰 작업에 그치지 않고 1968년 2월 12일을 통과한 세계사의 주요 장면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1968년 1월에는 북한 무장특수부대원 31명이 서울에 침투했고, 일본의 평화운동가들이 도쿄 앞 바다에서 미군 병사들을 향해 탈영을 선동했으며, 2월에 미국 정부의 특사가 방한해 화가 난 한국 대통령을 달랬다.

20여 년의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1968년의 세계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은 물론, 생존자의 현재 모습까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낸다. 1968년 2월 12일의 현장 지도, 1960년부터 2020년까지 주요 사건을 기록한 연표, 사진 도판 152점을 수록해 신뢰성과 현장감을 더한다.

1968년 2월12일, 해병 제2여단 1대대 1중대원들이 퐁니·퐁넛 마을을 다녀간 뒤 발견된 주검들을 미군 병사가 수습하고 있다. 당시 마을에 진입한 미군 상병 본이 촬영한 것이다.
1968년 2월12일, 해병 제2여단 1대대 1중대원들이 퐁니·퐁넛 마을을 다녀간 뒤 발견된 주검들을 미군 병사가 수습하고 있다. 당시 마을에 진입한 미군 상병 본이 촬영한 것이다.ⓒ기타

저자는 말한다. “퐁니·퐁넛 사건에 관한 대한민국 군 당국의 공식 결론은 ‘위장용 군복을 입은 베트콩의 소행’이다. 규모와 최고 책임자의 연루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4월, 폴란드 카틴 숲에서 폴란드군 장교 등 2만 5천 여 명을 학살하고 이를 나치의 소행으로 몬 소련 비밀경찰을 연상시킨다. (…) 한국군이 개입된 전체 사건들의 규모와 잔인성은 소련의 카틴 숲 학살을 못 따라갈 이유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영원히 이 문제를 뭉갤 수 있을까.”

이 책은 총 7부로 구성되며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과 사건을 모아 1968년 2월 12일의 사건을 추적한다. ‘1부 두 개의 시선’에서는 베트남전쟁 현장, 남과 북이 삼엄한 경계 태세를 높이던 보이지 않는 전쟁의 현장을 오간다. ‘2부 따이한의 군화’에서는 초판에서 다루지 않은 다른 학살 현장들을 찾아 생존자들의 사연과 목소리를 담았다. ‘3부 야유나무 학살’에서는 1968년 2월 12일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응우옌티탄과 쩐지예읍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생존자의 입장에서 투명하게 전한다. ‘4부 복수의 꿈’에서는 서로 죽여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베트남 사람들의 복수에 찬 이야기를 담았고, ‘5부 해병의 나날’에서는 1968년 2월 12일의 학살을 만들어낸 한국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6부 조작과 특명’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던 미국과 베트남, 한국군의 관계 속에서 1968년 2월 12일 학살의 진실을 말하고 있다. 끝으로 ‘7부 체 게바라처럼’에서는 그날의 학살 이후 변명하는 자와 묻는 자, 도망치는 자와 추적하는 자, 다시 일어서는 자들이 만들어내는 세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날의 전쟁과 학살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
‘기억의 전쟁’

책 ‘기억의 전쟁’은 지난해 개봉했던 동명의 영화의 제작기다. 이길보라 감독은 2018년 열린 시민평화재판에 참여한 1968년 베트남 퐁니·퐁넛마을과 하미마을 집단 학살 사건 생존자인 두 명의 응우옌 티 탄(생존자의 이름은 응우옌 티 탄으로 같다)의 증언과 한국 내에서의 다양한 연대 활동, 그리고 베트남 현지 취재를 통해 학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담아 영화 ‘기억의 전쟁’을 만들었다. 아울러 이 영화는 그동안 남성 중심의 영웅 이야기로 기록되고 기억된 전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성찰하고자 하는 의도로 메인 스텝 모두를 20대 여성으로 구성했다.

영화 ‘기억의 전쟁’
영화 ‘기억의 전쟁’ⓒ영화사 고래

지난해 개봉을 앞두고 민중의소리와 한 인터뷰에서 이길보라 감독은 영화를 만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억의 전쟁’은 개인적 질문으로 시작된 영화다. 우리 할아버지는 자신을 ‘베트남전 참전용사’라고 부르던 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집에 가면 월남전 참전 고엽제 후유증과 함께 얻은 훈장과 표창장이 자랑스럽게 걸려있었다. 그런데 20대 초반에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됐다. 할아버지가 말하던 그 베트남과 이 베트남은 너무나 달랐다. 그래서 의문을 가지고 베트남에 찾아갔다. 잔혹한 학살이 있었음을 직접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탄 아주머니가 제가 베트남 참전 군인의 손녀인 것을 알고도, 한국에서 온 사람임을 알고도 ‘따뜻한 밥 한술 뜨고, 자고 가라’고 하셨다. 이런 관용과 환대의 태도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생각하게 됐고,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해 베트남 중부의 수많은 증오비와 위령비를 지나 비석 너머의 이야기에 닿기까지, 그리고 50년 넘게 그 이야기를 품어온 ‘사람’을 만나기까지 영화 ‘기억의 전쟁’ 제작팀이 걸어온 5년 여의 여정이 이 책에 담겼다. 영화 ‘기억의 전쟁’이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베트남 중부 마을의 ‘따이한 제사’와 한국의 베트남전쟁 전몰 장병 위령제, 베트남 전쟁증적박물관과 월남파병용사 만남의 장, “내가 똑똑히 봤어. 한국군이었어”라는 피해자의 증언과 “양민 학살은 없었다”라고 외치는 참전군인의 증언을 오가며 서로 충돌하는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책 ‘기억의 전쟁’은 그 충돌 지점에서 카메라를 든 이들이 매순간 직면해야 했던 고민들을 보여준다.

이길보라 감독이 ‘기억의 전쟁’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서로 다른 침묵을 이해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도, ‘이혼비’를 벌기 위해 베트남에 간 남편 대신 전장에서 보내온 돈으로 가족을 건사한 할머니로부터도 전쟁에 대해 들을 말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길보라 감독은 스스로 베트남의 기억에 다가서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국가적으로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한강의 기적으로, 가족들에게는 초콜렛과 산요 카세트로, ‘풍요와 발전’의 서사 안에 매끄럽게 통합되는 베트남전쟁을 둘러싼 기억 자체에 의문을 품는다. 그의 “1968년에 일어났던 학살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지 궁리했던 과정은 이십 대에서 삼십 대로 건너오며 부딪쳤던 부조리와 불합리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라는 그의 고백은 개인의 서사에서부터 출발해 전쟁과 학살, 국가 폭력의 문제에 다가서려는 긴 여정의 방향을 짐작하게 한다.

이 책은 우리가 베트남전쟁을 과연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지 보여준다. 그날의 학살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전승의 역사로 기억되고 전국엔 수십 개의 베트남전 참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훈련을 받았던 강원도 화천군엔 월남 파병용사만남의장이라는 시설이 세워졌다. 그곳에 있는 월남 참전기념관에선 디오라마로 당시 전투 상황을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디오라마에선 전투 종료 이후 상황을 보고하며 “현재 확인된 전과를 보고하겠다. 베트콩 사살 32명”이라고 외치는 파병 군인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전시장엔 베트남 전장에 걸려있던 ‘100명의 베트콩을 놓쳐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구호가 걸려있다.

참전 군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학살은 없었다며 사죄를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베트콩과 민간인을 구분하는 건 어려웠다. 이길보라 감독은 “베트콩 사살이라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또 옳은 것일까? 그것 자체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하고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전쟁과 학살에 관한 기억을 두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영화 제목과 이 책의 제목이 ‘기억의 전쟁’이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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