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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눈물에 젖은 파리

올해도 여전히 여행을 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행동 범위가 제한되다 보니 이런저런 작품들을 보면서 떠나지 못하는 몸을 달래고 있는데, 프랑스 화가 페르낭 쁠리(Fernand Pelez/1843~1913)가 남긴 그림 ‘눈물에 젖은 파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집 없는 사람 Homeless 1883 oil on canvas 77.5cm x 136cm
집 없는 사람 Homeless 1883 oil on canvas 77.5cm x 136cmⓒMusée des Beaux-Arts de la Ville de Paris

담벼락 앞에 어머니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퀭한 눈의 어머니는 가슴을 열고 아이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초점을 잃은 어머니의 눈은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마지막 힘도 사라진 듯 합니다. 주위에 있는 아이 가운데 그에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가장 큰 아이만 신발을 신었고 나머지 세 남자아이는 맨발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온기가 사라진 지 오래되어 보이는 난로와 빈 그릇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도 먹은 것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큰 축제를 알리는 벽보가 붙어 있어 어머니와 아이들의 모습이 더욱 아프게 다가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식구들을 버리고 간 아버지일까요? 아니면 대책 없는 어머니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이런 사람들을 못 본 채 지나치고 있는 우리일까요? 지금 우리 사는 곳은 어떤가요?

쁠리의 집안은 스페인에서 건너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화가였는데, 그를 지도한 미술 선생님 중 한 명이었지요. 화가가 되기 이전의 쁠리에 대한 자료는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미술과 관련된 첫 정보는 쁠리가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그의 스승이 아카데미즘의 거장 알렉상드르 카바넬이었다는 정도입니다.

스승의 영향을 받은 쁠리의 초기 작품은 역사화였습니다. 아카데미즘 미술의 특징은 당시 가장 선호하는 화풍을 가르친다는 것에 있습니다. 때문에 고정적이진 않지만, 변화의 속도가 아주 느립니다. 쁠리가 미술 공부를 할 때 주류는 신고전주의 화풍이었고 많은 역사화가 제작되었지요.

잠든 세탁부 Sleeping Laundress  c.1880 oil on canvas
잠든 세탁부 Sleeping Laundress c.1880 oil on canvasⓒ개인소장

엄청난 크기의 세탁물 보따리를 베개 삼아 세탁부는 잠이 들었습니다. 한 손을 머리에 올려 놓고 또 한 손이 아래로 꺾인 모습을 보면, 잠깐 몸을 기댄다고 누웠다가 자신도 모르게 잠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고단한 노동의 흔적과 쉽지 않은 삶의 무게가 그녀의 온 몸과 옷에 그대로 배어 있습니다. 얼굴을 매만질 시간도 없었던 듯 그녀의 얼굴 이곳저곳엔 상처도 보입니다. 그러나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걸린 듯 합니다. 좋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요? 삶은 이렇게 팍팍하지만, 꿈속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할 권리가 충분히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꿈이 실제 삶이 될 수도 있지요. 그렇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쁠리의 화풍은 1880년대 초반에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때까지의 아카데미즘 화법을 버리고 사실주의 화법으로 돌아선 것이지요. 특히 작품 주제에 큰 변화가 왔는데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했습니다. 거지나 집이 없는 사람들이 마치 사진처럼 정교한 모습으로 묘사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유였을까요? 그것에 대한 설명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쁠리의 작품 주제는 당시 화가들의 주제와는 확실히 구별되는 것이었고 작품에 묘사된 인물들은 전례가 없는 진정한 연민을 사람들에게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작품들을 살롱 전에 출품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인상파가 파리 화단의 대세로 자리를 잡던 때였지요.

바이올렛 파는 아이 The Violet Vendor 1885 oil on canvas 89.5x104
바이올렛 파는 아이 The Violet Vendor 1885 oil on canvas 89.5x104ⓒPetit Palais, Paris

바이올렛을 팔던 아이가 건물 기둥에 몸을 기대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니 ‘잠이 들었다’고 보고 싶습니다.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던 맨발은 까맣게 되었고 입은 가볍게 열렸습니다.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던 바이올렛 한 송이, 바닥에 뒹굴고 있습니다. 목에 걸고 있는 작은 좌판의 끈이 눈을 감고 있는 어린 소년의 작은 휴식마저 옭아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된 쁠리의 작품은 근대 프랑스 화가들 작품 가운데 가장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미술 기준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장벽을 허물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1896년 쁠리는 공식적으로 마지막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 이후 그의 화실에서 은둔자처럼 살아갑니다. 관객들과 비평가들로부터 나름 성공을 거두었던 그였는데, 대부분의 관계를 끊은 것이지요. 어떤 자료에는 이 해 살롱 전의 실패가 원인이었다고 되어 있는데, 과연 그것이 원인이었을까요?

어린 거지 Little Beggar c.1886 oil on canvas 156.2cm x 78.7cm
어린 거지 Little Beggar c.1886 oil on canvas 156.2cm x 78.7cmⓒ기타

몸보다 훨씬 큰 옷을 입은 맨발의 소년이 문 앞에 서 있습니다. 발은 며칠을 못 씻은 듯 먼지로 검게 그을렸습니다. 그렇다면 집과 가족이 없이 거리를 떠도는 아이겠군요. 손에 든 모자는 구걸할 때 그릇을 대신하는 것일까요? 눈빛은 아직 살아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아이가 이겨내야 할 세상을 생각하면 아이는 너무 작고 어립니다. 혹시 아이의 뒤에 있는 큰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나온 사람이 아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맞지요?

1901년 쁠리는 파리시에 파리의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묘사한 책과 자신의 작품을 전부를 보존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작품을 모두 기증한 것이지요. 1913년 그는 자신의 화실에서 일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1981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로버트 로셈블럼은 19세기 미술사를 훗날 다시 재구성할 때 쁠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한 전문가들은 많았습니다. 참 많은 의문점을 남겨 놓은 쁠리 때문에 오늘은 끝없이 의문 부호를 달게 됩니다. 이렇게 보니 파리가 늘 낭만의 도시였던 것은 아니었군요!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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